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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효경 Jul 18. 2024

말하는 말이 말을 걸 때 친절히 대해야 하는 이유

호들갑 독일문학

호들갑 독일문학 57

   - 말하는 말이 말을 걸 때 친절히 대해야 하는 이유가 궁금하다면      



    오 백년만에 소개팅을 나갔다. 어색한 정적이 드문드문 생길 때마다 어쩌지 못하다 결국 MBTI를 꺼내고야 말았다. S인지 N인지를 감별하는 질문에 너무나도 S스러운 답을 했는데, 도저히 N의 답이 이해가 되지 않았던 나는 소개팅을 일찌감치 끝마치고 친구 A를 만나 수다를 떨다가 똑같은 질문을 던졌다. 돌아온 극N인 친구 A의 답에 기겁을 했는데...      



    “아니 만약이라잖아. 뭐든 상상할 수 있는 거 아니야? 상상으로는 말이 말을 할 수도 있지! 말이 먹고 싶은 맥주를 고를 수도 있고. 그 허허벌판을 달려와서 얼마나 목이 마르겠어. 갈기를 휘날리며 흑맥주를 원샷하는 게 왜 상상이 안 간다는 거야? 그나저나 말하는 말이 말을 걸면 잘해줘야 해. 왜냐고? 자다가도 떡이 생긴다니깐. 너 에리히 캐스트너의 <하늘을 나는 교실>알아? 한국에선 그걸로 유명한 작가거든. 맞다. 영화 <페어런트 랩>의 원작 <로테와 루이제>도 있네. 아, 내가 말하려는 책은 <5월 35일>이야.



<5월 35일> 표지, Walter Trier


벌써 흥미롭지 않니? 35일이라니! 주인공 콘라트는 목요일마다 아빠의 형인 링겔후트 삼촌과 함께 오후를 보내는데, 삼촌은 약사고, 결혼하지 않은 싱글이야. 그날도 둘은 삼촌네 집이었지. 콘라트는 숙제 때문에 고민에 빠져있었어. 수학을 잘하니 상상력이 부족하다며 선생님이 특별히 ‘남태평양’에 대한 글쓰기 숙제를 낸 거야. 그때에 검은 말이 삼촌네 문을 두드렸고, 삼촌은 환대하며 검은 말을 집 안으로 안내해.



<5월 35일> 만화 각색, 그림 이사벨 크라이츠


 셋은 카드놀이를 하며 보내다가 콘라트가 숙제 고민을 털어놓자 검은 말은 자신이 당장 남태평양으로 여행을 떠날 수 있게 해주겠다는 거야. 네그로 카발로라는 이름의 검은 말은 문학적으로 조예가 깊고, 재주가 많은데, 지금은 서커스단에서 일하다 정리해고되어 쉬는 중이었던 거 같아. 서커스단 인맥으로 오래된 장롱을 통해 남태평양으로 향하는 여행을 떠나게 돼.


튀빙엔에 위치한 극장 ThOP에서 공연한 <5월 35일>, 출처 : https://www.theater-im-op.de/produktion/der-35-mai/

여행길에서 셋은 침대에 누워서 일상을 보내는 ‘게으름뱅이 나라’, 아이를 괴롭히는 어른을 혼내주는 ‘거꾸로 나라’, 모든 것이 자동기계로 돌아가는 ‘엘렉트로폴리스’ 등 상상을 초월하는 나라를 거쳐. 갠적으로 침대와 혼연일체하는 게으름뱅이 나라가 가장 좋았어. 거기는 사과나무에 버튼만 누르면 다양한 버전의 사과요리가 나오고, 비가 오면 저절로 우산이 나타나 펼쳐져. 침대에만 누워서 손만 까딱하면 모든 것이 해결되는 게 부럽더라고. 그래도 가장 부러웠던 거는 여행을 삼촌과 함께 했다는 거야. 매주 목요일마다 조카를 챙겨주고, 고민을 들어주고, 내가 추구했던 그런 조카와의 관계성이었는데, 나는 쉽지가 않더라. 아무튼 이런 특별한 여행이 가능했던건 뭐다? 말하는 말에게 다정하게 대해줬기 때문이지. 어디 가다가 말이 말을 걸면 친절하게 해줘야해...”



   허허 말하는 말이 있으면 일단 유튜브를 시작할 거 같은데, 남태평양 여행을? 글쎄...     


    <5월 35일/ 에리히 캐스트너(김서정 옮김)/ 시공주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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