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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규진 Nov 22. 2021

우산을 잃어버린 꿈

2021년 11월 22일

우산이 아닌 지갑을 잃어버렸다. 퇴근길의 택시에서 내릴 때에야 깨달았다. 주머니와 가방을 아무리 뒤져보아도 보이지 않았다. 평소에 잘 입지도 않는 후드티를 입고 출근한 게 화근이었다. 짐을 아무렇게나 쑤셔 넣고 빗길로 뛰쳐나왔기 때문이다.  문제는 지갑이 없어졌다는 사실을 알고도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는 것이다. 그건 이번에는 쉽게 찾을 수 없을 것 같다는 예감 때문이었다.


어떤 이별이라도 인정하는 건 고역이다. 집에 도착한 나에게 가족들은 불행한 표정을 지었다. 분명 걱정해주는 것일 텐데, 먼저 나온 건 신경질적인 반응이었다. 최근엔 누군가 나를 위로한다는 사실조차 견딜 수가 없나 보다. 아무런 말도 듣고 싶지 않아서 집 밖으로 나섰다. 뒤늦게 지갑을 찾아야겠다는 생각이 든 건 그때였다. 마치 떠밀리듯이 회사로 가는 택시에 다시 올랐다. 창 밖에서 내리는 비는 여전히 그치지 않고 있었다.


우선 할 수 있는 걸 찾아야 했다. 오늘 나의 동선을 모두 복기하는 게 먼저였다. 회사로 돌아가는 택시를 타고 하루를 다시 되돌려 보기 시작했다. 도망치듯이 뛰쳐나온 회사 사무실부터, 택시를 타기 위해 걸었던 6차선 도로까지. 그런데 이상하게도 도무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오늘 내가 아침밥은 먹고 나왔는지, 점심엔 누구를 어디서 만났는지도 몰랐다. 기자라면, 직장인이라면 누구나 일상에 치여 살지만 다소 서글픈 생각이 들었다. 지금은 하루하루를 어떻게든 아무렇게나 살아가는게 분명했기에.


나는 금방 화살 끝을 내게로 겨눴다. 도대체 어떤 정신머리로 사는 것이냐며 스스로를 다그치는 것이다. 문득 선배들에게 새벽까지 혼나던 기자 초년생 시절도 떠올랐다. 이해할 수 없는 이유로 성난 선배들 앞에서 하루의 동선을 시간대별로 읊어야 했던 기억이다. 그땐 넘어가지 않는 쓴 술잔을 강권받으며 목이 막히기도 했다. 나는 어쩌면 지금도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런 목적의식을 잃어버린 삶이란 얼마나 고단하고 처량한 것인가. 어쩌면 가장 남고 싶지 않았던 모습으로 말이다.


기대는 늘 빗나가지만, 걱정은 늘 적중하는 법이다. 너무 실망스럽게도 지갑의 행방은 묘연했다. 퉁명스러운 택시 기사에게 전화를 걸었고, 경계심부터 드러낸 회사 경비원에게도 물었다. 하지만 대답은 한결같았다. 어디서도 환영받지 못한 나는 다시 길거리로 돌아왔다. 수북이 쌓인 낙엽들도 헤쳐가며 떨어진 물건이 있나 살폈다. 이미 밤 9시가 가까워 거리에는 사람이 이미 드물었다. 하지만 미련하게도 한참을 떠나지 못하고 서성거렸다. 별 소득 없이 집에 돌아오는 길은 유난히 길었다.


우리는 불행한 상황을 받아들이지 못할 때, 자신을 넘어서는 일종의 불가항력이라 여기곤 한다. 나 역시 이런 상황에서 가장 쉽게 할 수 있는 건 운명이나 팔자, 재수를 탓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왜 자꾸 주변에 악재가 끊이질 않는 걸까 하고 투덜거렸다. 며칠 뒤 만난 한 심리학자는 내 불만을 듣더니 심리학에서는 이를 ‘동시성’이라고 말한다고 했다. 마음 안의 일과 바깥의 일이 아무런 인과관계가 없는 것은 아니란 거다. 우리는 내적인 사건(꿈, 환상, 예감)이 외부적인 현실에서 상응한 것을 가질 때, 내적인 예감이 진실이라고 받아들인다. 물론 이런 일은 어느 하나도 인과적으로 설명될 수 없다. 다만 마음 안의 일과, 바깥의 일이 하나의 흐름 속에 이해해야 한다는 뜻이다. 이를테면 지갑을 잃어버린 나의 행위가 어떻게든 내 마음과 연결돼있는 것, 그것부터 찾아야 한다는 얘기다.


그렇다면 지갑이 내 마음속에선 어떤 의미였는지 살펴본다. 사실 나는 물건을 잘 잃어버리지 않는 편이다. 지갑은 물론이고 그 흔한 우산조차 한 번도 잃어버린 적이 없다. 나는 일단 내 물건에 대해 필요 이상의 애착을 갖는 편이니깐. 정리정돈이라는 것을 모르고 살 정도로, 온갖 잡동사니는 최대한 쌓아두어야 적성이 풀리는 성격이다. 그리고 무언가를 잃어버린 다는 건, 거기 담긴 의미도 모두 송두리째 빼앗아가는 것과 다름없다. 만약 돈으로 똑같은 지갑을 다시 사도, 그건 똑같은 지갑이 아니었다. “그건 내게 소중한 추억이었어요” 머뭇거리는 나의 고백을 듣던 심리학자는 그제야 답이 나왔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랬다. 파란색 지갑은 2년이라는 긴 시간을 거쳐 첫 취업을 한 기념으로 선물 받았던 것이었다. 지갑 안에 들어있는 귀중품들도 저마다 의미가 있었다. 주민등록증과 운전면허증이 있었지. 아버지가 행운의 부적으로 주셨던 2달러 지폐. 어머니가 입대를 할 때 걸어주신 성당의 스카폴라도 넣어뒀다. 그리고 차마 버리지 못한 누군가의 이름이 쓰인 명함이 들어있었다. 모두 다시 돌아오지 않을 추억들이다. 어떻게든 찾지 못하게 되는 걸까. 나는 심리학자와 대화하는 내내 ‘꼭 돌아왔으면 좋겠어요’는 말을 되뇌었다. 그는 ‘그랬으면 좋겠네요’라며 짧게 대답했다. 그때 나는 스스로 마음 안팎을 골고루 이해하는 건 결코 못할 일이라고 생각했다.


다만 내가 왜 껍데기 같은 사람이 되었는지는 알 것 같았다. 어쩌면 추억 이외의 다른 기대는 아무것도 품지 않으면서 살고 있기 때문이겠지. 그래서 진짜로 막이 내려가는 걸 인정하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그 후로도 일주일이 지나도록 지갑의 분실신고를 하지 않은 것처럼 말이다. 어떤 선량한 사람이 모든 걸 돌려줄 거란 막연한 기대감을 품으면서 기다릴 뿐이었다. 마치 그런 기적 같은 행운이 내게 다시 벌어진다면, 다시금 그때처럼 가슴이 뛰기 시작할 거란 일종의 최면을 걸고 있는 게 아닐까. 그래서 거대한 상실감에 파묻혀 사는 사람이 돼버린 것이다.


빈 손으로 출근하는 다음 날에도 빗방울은 그치지 않았다. 문득 윤기타 씨의 <우산을 잃어버린 꿈>이라는 노래가 떠올랐다. "아 그래 꿈에서 잃어버렸었지. 꿈이라서 참 다행이다" 물론 그는 한때 우산 같았던, 사랑하는 이를 그리면서 쓴 곡일 것이다. 나는 아무래도 이 뒤에 쓰인 가사는 차마 옮길 수가 없다. 노래하는 당신처럼 하루 종일 그대로 주저앉을 것만 같다. 그게 인연과의 이별과 닮은 것이라도, 미처 놓을 수 없는 것을 똑같이 부여잡고 있으니 말이다. 헛헛한 마음 한 구석에 추억이라는 이름으로 켜켜이 쌓아두면서. 정말이지, 꿈이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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