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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혜 Jul 13. 2022

달팽이 part 2

02. 저희 집에 달팽이가 있어요

“저희 집에 달팽이가 있어요.”


“어머나…”


그건 분명히 안타까움의 탄식이었다.


“저도 누가 준대서 받아오려고 했었는데, 어마어마하게 자라서, 식용 달팽이만큼 커진다는 걸 인터넷에서 보고, 그냥 안 받기로 했어요”


“개체수가 무섭게 늘어 난대요.”


“생태계 파괴 문제 때문에 아파트 단지나 산 같은 야생에 풀어주면 안 된 대요.”  


지인들의 말에 슬슬 겁이 나기 시작했고, '이왕 이리된 거 잘 키워보지 뭐'라는 생각을 했던 내게 스트레스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문득 예전에 제주에서 만났던 그 달팽이가 떠올랐다.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내 기억 속에는 그리 나쁘게 자리 잡고 있지 않았기에 어쩌면 나는 커다란 달팽이는 참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개체 수는 문제가 될 수 있었다.

끔찍한 바퀴벌레나 모기 같은 해충이 아닌 이상, 아무래도 무언가를 살생한다는 게 내게도 부담이었지만, 집에 들어온 나방이나 개미를 물리칠(?) 때마다 “엄마, 그냥 문 밖으로 풀어줄 걸, 얘네 가족이 기다리고 있을 텐데” 라며 눈물을 흘리는-오열을 한 적도 몇 번 있었다-우리 집 꼬맹이는 그런 '감성쟁이'이기 때문이다. 


그 사이, 얻어올 때 흙 속에 알이 하나 딸려 왔는지, 며칠 만에 달팽이는 네 마리가 되어있었고, 나는 살짝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달팽이는 여러 마리 함께 있을 때에도 개체수가 잘 늘어나지만, 성장과정에 문제가 생기면 혼자도 새끼를 낳는다는 어마 무시한 글을 보게 되었다. 방생도 못하는데 마구 늘어나면 어쩌지? 걱정이 태산이었고, 꿈에 달팽이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나의 무의식 속에서는 개체수보다는 크기가 더 문제였는지, 손바닥 만하게 자란 달팽이가 나오기도 했다.


근심 걱정 속에 시간은 계속 흘렀고, 정을 주진 못했지만, 그렇다고 신경마저 쓰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상추 말고 특식으로 당근도 넣어주니-그 딱딱한 걸 먹을 수 있나 했는데 잘도 먹더라-주황색 똥을 누기도 했다. 그래도 상추가 더 좋은지 두 가지를 넣어주면 상추부터 없어지곤 했다. 사육통 안의 흙은 격주에 한 번씩 갈아주었다. 흙을 갈아줄 때마다 여기저기 들러붙은 검은 달팽이의 똥들은 정말 비위가 상해서 흙 갈이를 해줘야 하는 주말이 되면 사육통을 보며 한숨을 쉬기 일쑤였다. 자기들도 지 똥은 싫은 지, 꼭 사육통 천장 쪽으로 기어올라와 그야말로 벽에 똥칠을 한 뒤 흙으로 내려갔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우려했던 만큼 개체 수는 늘어나지 않았다. 대신 들었던 내용대로 그들의 크기는 눈에 띄게 커지고 있었다. 나는 애써 내 자신을 달래고 있었다. 크기가 좀 크면 어떠리, 많아지는 것보다는 낫지 않은가.




꼬맹이의 친구가 놀러 왔다.

“이모, 달팽이가 여섯 마리가 되면 저 꼭 세 마리 주세요”

친구는 집에 가기 위해 신발을 신으면서 망울망울한 눈빛으로 달팽이 분양을 다짐하고 갔다. 꼬맹이의 친구가 구원 투수처럼 나타나 다행이다 싶은 생각에 자꾸만 주책맞게 입가에서 웃음이 흘러나왔다. 가만히 그때를 돌아보면 그 말을 들은 그 친구 엄마의 얼굴에 슬픔과 당황이 교차했었던가 싶다.


구원투수와 더불어, 자고 나면 쑥쑥 커지는 달팽이의 크기는, 개체수에 대한 나의 걱정을 빠르게 잠재우기에 충분했다. 뭘 어떻게 먹고 있는지, 1등부터 4등까지 순위를 매길 수 있게 각기 다른 크기로 자라고 있었는데, 유독 한 마리가 성장 호르몬이라도 맞은 것처럼 폭풍 성장 궤도를 걷고 있었고, 그에 비해 뒤늦게 나타났던 4번 달팽이는 도무지 자라지 않는 것 같아 보였다.



흙 갈이를 해주는 날은 꼬박꼬박 찾아왔다. 

자주 갈아주지 않으면 안에 벌레가 생긴다는 글을 보고 더 강박적이 되었던 것도 있었다. 그때까진 달팽이보다 벌레가 더 무서웠으니까. 때마다 스트레스를 받아하는 내 모습을 본 남편은 고맙게도 어느 날 이후부터 흙 갈이와 통 씻는 것을 혼자 조용히 하기 시작했고, 깨끗해진 사육통에 새 흙과 새 상추를 넣어 주는 일은 내가 하면서 자연스럽게 달팽이에 관련된 일을 분담하게 되었다.


“에? 한 마리가 없네. 쪼끄만 녀석이 없어.” 


혼잣말처럼 조용히 중얼거리던 남편의 그 말을 들은 내가 기겁을 하자, 남편은 흙을 버린 봉투를 다시 꺼내어 이리저리 뒤져 보았다. 4번 달팽이는 보이지 않았다. 

달팽이들은 낮엔 흙 속에 있는 시간이 많았고, 나도 사육통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지 않으니, 사라진 그 한 마리가 언제부터 없었는지조차 알 수가 없었다. 


“지난번 흙 갈이 할 때 딸려갔나 보네. 할 수없지 뭐.”

남편이 중얼거렸다. 그때 내 등 쪽으로 서늘한 소름이 슬그머니 올라왔다. 


“설마… 내가 생각하는 그런 일이 일어난 건 아니겠지?”

샅샅이 뒤진 흙 속에 달팽이가 없으니 본능적으로 가장 무서운 생각부터 떠올라 알 수 없는 원망의 눈빛을 하며 남편을 쳐다보았다. 내 물음에 남편이 휴대폰을 집어 들었다. 


“아니야, 찾지 마! 절대 절대 찾지 마!!” 

나는 다급했다. 소름 끼치는 그 진위는 절대로 확인하고 싶지 않았다. 생각하고 싶지 않은 그 일이 진짜 일까 봐 나는 너무 무서웠다. 


사람을 문 것도 아닌데, 우리 집에 있는 식용 크기의 달팽이가 식인 달팽이가 된 느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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