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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혜 Jul 13. 2022

달팽이 part 3

03. 달팽이는 미개하다

시간은 계속 흘렀다.

달팽이의 개체 수는 더 늘지 않고 세 마리였다. 


차이가 제법 나던 2번 달팽이는 곧 1번 달팽이를 따라잡아 두 녀석 크기가 비슷해졌다. 3번도 작은 편은 아니라 셋이 사는 소형 사육통이 이젠 좀 좁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1번 달팽이의 사이즈는 어른 엄지 손가락 정도 되었다. 예전의 손톱 만하던 달팽이의 모습은 기억조차 나지 않았고, 지난번 사라진 한 녀석 때문에 더 이상 귀엽다는 생각이 드는 때는 없었다. 대신, 예전과 다르게 낮시간에도 흙 위로 자주 출몰하는 녀석들이 은근히 신경 쓰이지 시작했다. 


벽에 붙어 흐물흐물 기어 다니는데, 얘네들의 하얗고 매끄러운 배는 해변가에 밀려오는 파도처럼 물결을 쳤고 그 모습은, 신기했지만 징그러웠다. 솔직히 그렇게 빠른 속도로 움직일 수 있음에 놀랍기도 했다. 내 머릿속의 달팽이는 어쩌면 굼벵이와 동일시되어있었는지, 나는 그동안 달팽이는 매우 느린 동물인 줄 알고 있었다. 뭐 그렇다고 엄청 빨라서 휘리릭 달려가는 정도는 아니다. 어른 손 한 뼘 남짓한 사육통 끝쪽에 있던 녀석이, 잠깐 뒤돌아 본 사이에 반대편 끝으로 가있는 속도.



요즘은 장마철이라 날이 습하고 덥다. 

맞벌이에 유치원생 꼬맹이가 한 명 있는 우리 집은 낮 시간 동안은 아마 꽤 더울 것이다. 그 시간 달팽이들은 주로 흙 속에 들어가 있으므로, 나는 어느 순간부터 사육통에 흙을 더 많이 넣어주었다. 과일도 잘 먹는다는 이야기에 사과 껍질 같은 걸 넣어줘 볼까 했다가 날벌레가 생기지 않을까 라는 남편의 말에 바로 수긍, 그냥 주야장천 상추만 주었다. 당근도 딱딱한 건지 맛이 없는 건지 처음엔 좀 먹고 주황색 똥을 누며 돌아다니더니, 잘 안 먹어 그만두었다. 그래 너네는 그냥 상추나 먹어라.  


어김없이 흙갈이를 해야 하는 주말은 찾아왔고, 여느 때와는 다른 막연한 불안감이 느껴졌다.


일요일 오후, 퉁퉁 싱크대 벽을 치는 소리가 나길래 뒤를 돌아보니, 남편이 사육통을 위생봉투 안에 통째로 넣고 거꾸로 세우고 싱크대 벽에 통을 쳐서 붙어있는 흙을 털어내고 있었다. 지난번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거대한 소름이 전기처럼 등줄기를 쭉 타고 올라와, 머리털까지 쭈뼛 서는 듯한, 딱 공포영화를 보고 있는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얼마 전부터 큰 놈 한 마리가 보이지 않는 것을 나는 눈치채고 있었다 아니 눈치채고 있었던 것 같다. 

(더 이상 '달팽이들'이라 부를 수 있지 않다는 걸  그때의 내가 알고 있었는지 아닌지 조차 헷갈린다.)

기억을 더듬어 보면, 3번 달팽이도 안보인지 꽤 된 듯했다. 

어느 정도 덩치가 커진 이후, 흙 밖으로 세 녀석 모두가 나와있는 경우는 그리 많지 않았기 때문에, 흙 속 어딘가에 있겠지 라며 나는 달팽이가 보이지 않음을 애써 아무 일도 없는 양 입 밖으로 꺼내지 않았다. 


그러면 그 무서운 일이 ‘일어나지 않은 일’이 될 것 같았다.



얼마 전 1박 2일로 여행을 다녀왔는데, 가면서 남은 상추 양을 보고 이따 더 넣어주고 가야겠다 생각했었다. 그러나 꼬맹이를 데리고 가는 여행은 여느 집과 마찬가지로 내 마음에 들 만큼 집안을 잘 건사하고 떠나기는 어려웠다. 여행지에서 상추 생각이 잠깐 낫지만, 남은 상추의 양이 너무 적지 않았었기에, 하룬데 뭐 어때 싶어 그냥 넘겼다. 솔직히 그냥 넘기지 않으면 뭐 어쩌겠냐, 누구에게 달팽이 먹이를 주러 우리 집에 들러 달라고 할 수도 없고. 

예전에 달팽이들이 너무 커진다고 투덜거리는 나에게, “혹시 물고기처럼 배부른 대도 계속 먹는 애들인가?”라며 남편은 상추 양을 조금 줄이면 어떤가 이야기 한 적 있었다. 이 타이밍에 기막히게 그 생각이 떠오르며 내 마음이 순식간에 편안해졌다. 


다음날 저녁에 돌아왔을 때, 도우미 이모님이 일찍 오셔서 넣어 주신 커다란 상추 2장을 보고, 다행이네 싶었다.

'별일 없었구나'  


그러나 그곳엔 별일이 없었으면 좋겠다는 나의 바람만 있었는지도 모른다.




사육통에서 흙을 꺼내려고 퉁퉁 두드리는 소리는, 귀신이 등장할 때 나오는 영화 속 배경음악처럼 쿵쾅거리며 나의 공포심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 용기를 내어 힘겹게 물었다. 


“있어?” 

“…………., 없어” 

나의 눈치를 살피는 듯한 목소리였다.  


흔적조차 없었다. 껍질도 그 비슷한 어떤 것도.


달팽이는 오늘, 내게 가장 소름 끼치는 종자로 자리매김하며, 이젠 꼬맹이가 울건 말건 내 저 끔찍한 것을 처단하겠노라는 결심이 들었다. 공포와 함께 내 마음 깊은 곳에서는 어떤 알 수 없는 사명감이 활활 타올랐다. '반드시 꼭 처단하겠어. 나는 슈퍼히어로이다. 이 세상에 이렇게 이상한 달팽이 같은 것들은 다 없애 버리겠다!' 그때 나의 눈빛은 분명 비장하였을 것이다. 


'근데 어떻게???' 

힘 빠지는 부분이었다.


방법을 구체적으로 생각을 하면 할수록 소름이 끼쳐, 활활 타오르던 나의 전투력은 슬금슬금 뒷구멍으로 도망을 치고 있었다. 누군가는 냉동실에 넣는다고 했는데, 나는 그 행위를 상상하는 것 만으로 두 다리에 힘이 쫙 빠진 전투력 제로 상태가 되었다.

'차라리 굶길까'라는 생각이 번개처럼 머릿속을 스쳤다. 

그러나 저 끔찍하고 무서운 1번 달팽이는 끼긱끼긱 거리는 괴상한 목소리를 내며 사육통을 깨어 부수고 나와, 아랫배를 출렁이며 미친 듯이 빠른 속도로 내 부엌을 휘젓고 다닐 것만 같았다.


어떻게 그 딱딱한 등껍질까지 흔적도 없이 사라졌을까.

달팽이 두 마리가 서로 붙어 있는 경우를 두어 번 본 적이 있었다. 

그들만의 교감 활동이라고 여겼다.

그러나 그건 내가 생각하는 그런 친근한 활동이 아닌, 사건 현장의 목격이었을까?


걱정과 공포, 그리고 한 풀 꺾인 전투력까지 모두 한데 뒤범벅이 되어 어떤 감정인지 알 수 없는 오후, 나는 오랜만에 글이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극도의 스트레스로 인한 승화 작용인가!  




개체수가 늘어날 까 봐 잔뜩 겁을 먹었었던 우리 집에 온 새끼 달팽이 네 마리는, 더 끔찍하게도 그 개체수가 하나둘씩 줄어들었고, 그때마다 기분 탓인지 남아 있는 달팽이들의 덩치는 점점 더 커지고 있는 듯이 보였다. 


뭐가 어찌 됐든, 난 인터넷이든 어디든 미개한 저 녀석들이 동족상잔을 넘어 동족 포식을 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절대로 찾아보지 않을 것이다. 절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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