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Blair Feb 19. 2024

오면 좋고 가면 더 좋은 그 마음

현재 육지에서 한 달이 넘게 지내고 있다. 원래 이렇게 오랫동안 머물 생각은 없었다. 육지에 오자마자 친정에서 한 주를 보냈다. 그리고 그 나머지를 시댁에서 머물렀다. 시댁에서 2주 정도를 보내다 여행을 다녀와 다시 시댁에 머물렀다. 그 기간이 3주.. 거의 한 달 정도가 된 것 같다.



처음에 시댁에 도착했을 때는 몇 달 만에 본 손녀에게 하루 이틀은 아니 사나흘 정도는 힘이 넘치시던 시부모님이셨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처음의 그 에너지와 체력을 점점 찾아볼 수가 없어졌다.



밤이 되면 아이보고 '어서 자라' '아이고 뉴스 봐야 하는데~" 하면서 아이가 잠들기만 기다렸고, 아침이고 점심, 저녁을 풍성하게 챙겨서 아이를 먹여주셨는데 점점 "오늘은 뭐해먹을까?" 메뉴 고민도 하시고 심지어  "밖에 나가서 먹고 와라" 말씀하시기도 한다. 그리고 매번 집에서 아이와 놀라시던 어른들은 "너희들 어디 안 나가니? 우리 밖에 좀 볼일 보러 나갔다오마" 하며 외출하신다. 그리고 시댁에 오면 늘 할머니랑 자던 아이도 시간이 지나자 아빠엄마를 찾아와 잠들시작했다.



게다가 안 그래도 시댁에  물건이 많은데 우리가 새롭게 가져온 물건과 섞여서 얼마나 집안이 복잡해지던지 사람 물건이 함께 더 정신없어 보였던 것은 덤이다.  



그리고 특히 어머님은 아침저녁으로  요리하시고 내일은 또 뭐를 해 먹어야 하나 걱정하시고, 신경 써 만들어놓아도 먹지 않아 남겨진 재료들도 늘어났다. 그래서 냉장고에는 먹고 남은 재료들로 차고 넘쳐갔다.



무엇보다 화장실에서 화장지를 많이 쓰는 우리 가족 때문에 변기가 불안 불안하더니 결국 거의 막혀버렸다. 아이고야!




미국에 사는 사촌 시누가 가끔 한두 달씩 한국에 오면 친정에 머물지 않고 호텔에 가서 지내길래 의아했는데 이제 겪어보니 알 것 같다. 오랜 시간 어른들과 같이 지내는 것이 서로에게 편하지 않았던 것이다.






시댁에서 한 달여간을 머물면서 내내 편하기만 했던 것은 아니다. 물론 처음엔 정말 편했다. 그전 몇 달을 독박육아했고, 제주에서 배달은커녕 외식도 제대로 못하고 집밥을 해댄 지 거의 몇 달만의 자유였기 때문이다.



오랜만에 친정 시댁을 오가며 밥도 한 끼 안 하고,  아이도 맡기고 잠시 숨통 틔울 수 있는 날이 있어서 좋았다. 조금의 불편함이 있었지만 잠 껀만 참으면 그럭저럭 넘길 수 있었다. 그나마 남편방은 한층 올라가면 있는 옥탑방에 위치하고 있어서 그나마 견딜 수 있었다.



그러나 점점 시댁에서 먹는 것도, 노는 것도, 자는 것도 모든 것이 불편해졌다. 그런데 어른들도 갑자기 아이 겨울방학이라고 와서는 아이돌 보랴, 음식차릴라, 마음껏 외출도 못하시니 얼마나 불편하셨을까?




책 며느라기 중에서








원래 육지에 나와 몇 주씩 시댁에 머무를 생각은 없었다. 그런데 곧 명절이 다가오고 있었고, 제사에 꼭 참석하길 원했고, 어머님의 병원예약이 되어있었으며, 아이의 겨울방학은 끝날 줄을 몰랐기 때문에 쉽사리 제주로 돌아갈 수가 없었다.




시댁에 머무는 기간 나도 도움이 되고 싶었다. 길고 긴 날들을 시댁에 머무르다 보니 곳곳의 먼지가 눈에 띄었다. 그래서 시댁의 곳곳을 정리하고 청소했다. 베란다의 물건도 정리하고, 소파 아래의 백 년 된 먼지도 털고, 화장실 청소도 자주 하고, 냉장고 속도 깨끗하게 청소했다. 마음 같아서는 부모님 방도 청소해 보고 싶었지만 차마 엄두가 나지 않았다. 청소를 한다고 했으나 큰 티는 나지 않았지만 틈틈이 치워서 보탬이 되도록 노력했다.



시간이 흘렀다. 그 사이 어머님 병원도 모시고 다녀 왔고, 절에 가서 제사도 지냈고, 여행도 다녀왔다. 그리고 드디어 집으로 돌아가는 날이 되었다.  



가기 전에 거실에서 짐을 트렁크에 넣고 정리하고 데 어머님이 침대에 누워계셨다. 몇 주 내내 우리들 돌봐주시느라 고생하신 생각이 나서 마음이 무거웠다.



마지막 인사를 드리고 나오는데 왠지 부모님 얼굴이 한결 가벼워 보이는 것을 느껴졌다.   '자식이 집에 오면 좋은데 가면 더 좋다고...'  순간 그 말이 생각났다.



물론 자식, 손녀가 예쁘겠지만 두 분이 조용히 지내던 때가 그리우실 것이다. 우리는 이제 떠나니 다음에 뵐 때까지 두 분이 건강하게 지내시면 좋겠다. 그리고 다음엔 절대 이렇게 오래 머무르며 폐를 끼치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했다.



아버님, 어머님 죄송하고 감사했어요.





작가의 이전글 연락처에서 지워진 사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