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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lair Mar 12. 2024

다 잘 해내고 싶어서

 

요즘의 나는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을 하고 있다. 수년 전 같은 일을 할 때를 기억해 보면 마치 직업병처럼 3월 초부터는 목이 점점 잠기기 시작하고 긴장이 풀린 3월 말 즈음에는 목감기를 한참을 달고 지내기도 했었다. 그러나 지금의 나는 파트타임으로 출근하므로 일을 하지 않는 날에는 체력을 다시 충전하고 다시 나가는 기분이라 그 정도로 몸에 무리가 가지 않는다.  



이 일은 조금씩은 계속해오던 일이지만, 이제는 어딘가에 소속되어하는 일인 만큼 책임감 있어야 했고 그만큼의 준비가 필요했다. 수업은 없지만 지난주 내내 출근은 물론 집에서도 계속 앞으로 가르칠 교재를 연구해야 했고, 수업자료도 준비해야 했다. 무슨 일이든 그렇듯 내가 신경 쓰고 들여다보는 만큼 수업 준비가 잘되었고 다행히도 기존에 준비된 수업자료가 많아 잘 관리해서 잘 가르치기만 하면 되었다. 그럼에도 숙제, 평가 등등이 차질 없게 하려고 열심히 준비했다.



그러나 멀티플레이를 못하는 사람. 심지어 노래를 들으면서도 다른 것을 못하는 사람, 게다가 영화를 보며 무엇을 하는 그런 것들에는 잼병인 인간. 그게 바로 나인 것이다.



그러다 보니 당연히 다른 것들은 뒷전으로 밀리게 되었다.






새로운 글감을 찾고 싶었다. 제주에 와서는 새로운 주제가 생겨서 한참을 열심히 썼는데, 시간이 지나며 더 이상 새로운 글감이 떠오르지 않아 고민이었다. 게다가 평상시에 너무도 조용하게 지내고 일상에 큰 변화가 없다 보니 늘 쓰는 주제가 같았다. 제일 관심사인 미니멀, 제주라이프, 지극히 평범한 하루의 이야기...



아주 오래전부터 글을 쓰고 싶었다. 글을 쓰고 싶었던 시작은 스무 살 즈음이었고 실천한 것은 그 후로 10년이 흐르고도 한참이 지난 후였다. 그렇게 간직만 하고 있던 생각을 실천해 본  몇 년이 되지 않았다. 집중해서 쓰게 된 기간은 3,4년간 정도이다.  그중에 2년 정도는 몰래 글을 썼고 지금은 브런치에 보이는 글을 쓰고 있다. 그래도 한참을 꾸준히 글을 올리는 기쁨으로 살았다.



그러나 일을 시작하고 보니 그리고 준비하고 열심히 하다 보니 당연히 글쓰기는 2위로 밀렸다. 매주 글을 올리는 연재날이 와도 올리기가 쉽지 않았고, 결국 지난주에는 놓쳐버리기도 했다. 상대적으로 시간이 많은 주말에도 글을 쓰다가 흐지부지 되기도 하고, 이전보다 글에 투자하는 시간이 적다 보니 완성하기도 쉽지 않았다. 초고는 쉽게 쓰지만 그래도 마무리까지 최선을 다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1위는 일 , 2위는 글쓰기 그러면 3순위는 뭘까? 0순위 었다가 3순위로 순식간에 밀린 우리 아이이다.


 

지난 10년여간 나는 자발적인 '경단녀'였다. 그 누구도 나보고 일하러 가라고 하지 않았고, 나조차 아이를 돌보는 일에 집중해야 했으므로 정해진 시간에 출퇴근을 하며 일을 하러 가는 것을 생각해보지도 않았다(아니... 생각은 많이 했다...) 그러나 점점 아이가 커가고 나의 손길이 덜해져 갈수록 내가 계속 , 여전히 지금도 '육아'에 집중하는 것이 만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결국 나는 나의 길로 가기로 했다. 엄마와 아내가 아닌 나로서 다시 시작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교 후 혼자 집에 있는 아이, 그보다 늦게 퇴근하는 나. 그 모습을 보며 얼마동안은 자괴감에 빠졌던 것이 사실이다. 태어나서 초등학교 입학까지 한 번도 눈에서 떼지 않고 돌본 아이다. 물론 덕분에 아이는 인간다운 면모를 지니고 있었다. 게다가 언젠가는 부모의 곁을 떠날 것이고 이제 혼자서도 조금씩 해나가야 하는 나이가 되었으므로 조금은 모르는 척하기로 한다.



매일 엄마와 함께 하던 하굣길은 이제 학원 버스가 대신한다. 학교가 마치면 돌봄 교실에 가서 친구들과 어울리고 학원으로 갔다가 집으로 돌아온다.







위의 내용을 1순위, 2순위, 3순위로 표기했지만

사실 나에겐 모두 0순위로 중요한 일이다.



오늘의 글을 생각하며 제일 먼저 든 생각은 '다 잘하고 싶다'다. 정말로 나는 세 가지 다 놓치고 싶다. 모든 면에서 잘 해내고 싶다. 이제야 다시 시작하게 된 일도 열심히 해내고 싶고, 글도 계속 꾸준히 써서 나의 꿈도 이뤄보고 싶고, 오랜 경력단절에 아쉬움이 남지 않게 아이도 잘 키웠다는 이야기도 듣고 싶다.











어제 아이는 학교에서 부회장이 되었다. 1학년때는 반장, 부반장 선거가 없어서 몰랐는데, 2학년이 되자 자신감이 넘쳐서 회장, 부회장 선거(우리 때는 반장, 부반장이었는데 말입니다)에 나가겠다는 아이를 진심으로 응원했다. 그러더니 정말로 부반장이 되어 돌아왔다. 아이가 2학년에 적응한 것도 모자라 자리까지 생겼다고 생각하니, 왠지 모르게 아이를 잘 키웠다는 느낌이 드는 것을 막을 수가 없다 물론 겨우 부회장 가지고? 선배맘들이 보면 웃을 노릇이다).



그리고 오늘은 일은 쉬는 날이지만 아침 일찍 카페로 나와 글을 쓰고 있는 나를 보니 대견하다. 끝까지 멈추지 않고 글을 쓰는 나 스스로를  칭찬해주고 싶은 것이다.



이제 오후에는 집으로 돌아가 수업 준비를 시작할 것이다. 그리고 늦은 오후 아이가 돌아오는 시간에 맞춰서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 놓고 좋은 엄마로 변신하는 것이 목표이다.




아마도 지난 수년간 모아놨던 에너지를 지금 쓸 때가 아닌가 싶다.



난 분명 잘 해낼 수 있을 것이다.  




모두를 응원합니다




*사진 출처 :  pintere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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