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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lair Mar 19. 2024

그까짓 바리스타 내가 안 하고 말지!

오랜만에 스타벅스에 왔다. 육지에 있을 때 스타벅스는 내 친구와도 같은 곳이었다. 커피를 좋아하기도 했지만 전 세계 어딜 가도 같은 맛에, 언제나 와도 마음 편한 카페가 이곳이었기 때문이다. 물론 제주에 와서는 이곳은 카페가 워낙 많으니 스타벅스 방문 횟수가 1/10 정도로 떨어지긴 했다. 그래도 가끔 새로운 음료가 나온다고 하면 들러서 마셔보는 열정이 한 5% 정도 남아있긴 했다.



그동안 얼마나 스타벅스에 충성했었을까 생각해 보니, 스타벅스의 머그, 텀블러 등등에 빠져 샀던 것만 최소 30개~50개는 훌쩍 될 것 같고, 때마다 이벤트도 열심히 참석하고, 이벤트 음료도 열심히 찾아 마셨다. 그래서 매년 겨울에 받은 다이어리만 10권 정도가 되고(참고로 10권을 받으려면 최소 커피 150~180잔은 마셔야 한다), 여름에도 남들 다 받는 이벤트 제품에 눈이 멀어서 또 100잔은 먹었을 것이다. 그 외에도 얼마나 많은 커피를 마셨던가!!



아마 내가 지난 10년간 스타벅스에 쓴 돈을 생각하면 소형차 한 대 정도는 사지 않았을까? 그런데 그것은 나뿐만이 아닐 것이다. 나 말고도 수많은 사람들이 이곳을 방문하곤 하니까.









올해 일을 할까 말까... 고민했던 시기가 있었다. 그리고 그날따라 자괴감에 빠져서 이런저런 쓸데없는 생각에 빠져 우울해하고 있는 날이었다. 그러다 우연히 스타벅스에서 바리스타 직원을 모집한다는 공고를 보았다. 호기심이 생겼다. 이왕 일하는 거 그렇게 최선을 다해 좋아했던 스타벅스에서 일하는 게 좋지 않을까?



그래서 스타벅스에 지원했다. 지원한 여러 가지 이유 중에 제일 확실했던 것은 집에서 걸어서 갈 정도로 가까운 거리에 매장이 생겼길래 지원했던 것이 1번이었고. 수년 전 따놨던 바리스타 자격증 1,2급 모두 있었기 때문에 한번 써볼까 하는 마음도 있었다(물론 자격증이 꼭 필요한 것은 아니었다)



그런데 연락도 없다.

한 달이 다 되도록 연락이 없다.

괘씸하다!!!



3개월까지는 다시 스타벅스에 지원할 수 없다고 하던데, 지금 당장이라도 내가 지원한 것을 취소하고 싶을 지경이다. 분명 스타벅스에  바리스타가 많이 필요할 텐데 왜 아직까지 연락이 없는 걸까? 혹시 이력서가 성의 없었나? 그렇다면 나이? 아니면 무엇 때문이야? 이유라도 알고 싶다.








원래는 이 정도로 스타벅스에서 일하지 못한  이유에 대해서 깊게 생각해보지 않았다. 그렇게 깊게 생각해 보기도 전에 운이 좋게도 다른 곳에 먼저 취업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날 스타벅스에 지원했던 것을 시작으로 그다음 날부터 계속 다른 곳에 이력서를 넣었고 결국 올해 일을 시작하게 된 것이다. 특히나 스타벅스 이력서를 쓰는 것에는 그렇게 큰 노력이 들어가지 않았다. 심혈을 기울이거나 스트레스 없이 가볍게 지원을 할 수 있던 것만으로도 나에겐 좋은 자극이었다.



왜냐하면 그 이후로 새로운 일에 지원하는 것이 어렵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실 오랜만에 다시 이력서를 쓰는 일도, 내가 합격할 수 있을지 없을지도 모르고 지원하는 일은 엄청난 스트레스였기 때문에 엄두도 못 내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역시 시작이 반이었다.



그러한 이유만으로도 스타벅스는 내가 일을 하게 것에 좋은 시발점이 되어주었기 때문에 고마운 마음이 든다(물론 여전히 연락한 통 없는 스타벅스가 괘씸하지만 말이다).









오늘은 봄맞이 슈크림 라테가 다시 나왔다길래 스타벅스를 방문했다. 추억의 슈크림라테... 수년 전 슈크림라테가 처음 나왔을 때 너무 맛있어서(극강의 단맛!) 정신을 못 차리며 매일같이 찾아 마셨던 기억이 있다. 그때는 바야흐로 아이가 기어 다니던 시절이었는데 아마도 그때의 나의 육아보상이 커피 한잔이었던 것 같다. 고칼로리 커피(그란데 사이즈 327kcal) 였지만... 달달한 커피 한잔은 그날의 내가 육아스트레스에서 벗어날 수 있게 도와주었다.



그런데 오늘은 주문한 커피가 나왔는데 아무래도 사이즈가 이상하다. 오랜만에 커피를 듬뿍 마시리라 생각하며 그란데 사이즈(Grande- 중간사이즈)로 에스프레소 3 샷을 넣었는데, 아무리 봐도 손에 쏙 들어오는 것이 사이즈가 작아 보였다. 한참을 고민하다 바리스타에게 잔 사이즈를 물어보니 역시 '톨(tall-작은 사이즈)'사이즈였다.



속으로 생각했다. 그래, 내가 그동안 스타벅스에서 마신 짬바가 얼만데 톨이랑 그란데 사이즈 구분을 못할까 봐! 괜히 뿌듯한 마음이었다.



바리스타는 음료를 다시 만들어주며 죄송하다고 말했다. 평소의 나라면 괜찮아요! 하면서 흔쾌히 받아들이고 웃어줬을 텐데 오늘은 그러지 못했다.



그 이유는 내가 미처 모르고 마셨을 작은 사이즈도 아쉬웠고, 솔직한 그 속에 다른 감정은 왜 나 안 뽑았어!!! 왜 아직까지 면접 보라고 연락도 없는 건데!!! 하는 마음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바리스타가 무슨 죄가 있겠는가... 실수로 작은 사이즈를 줄수도 있지. 그나마 반응 없이(그렇다고 화를 낸 건 아니다) 다시 큰 사이즈의 음료를 받았다. 오늘따라 슈크림라테 맛이 다른 것 같은데 기분 탓일 것이다.



솔직히 한 달이 다 되도록 스타벅스에서 연락도 안온 것이 무슨 이유가 있겠는가... 원래 안될 사람은 어떠한 이유로든 안되고, 될 사람은 어떠한 이유로도 되기 마련이다. 그래서 내가 이번 취직할 때 5번의 면접에서 4곳의 오퍼를 받았고 그중에 하나를 선택한 이유이기 때문이다.







확연히 다른 잔의 크기 /  왼쪽)tall 오른쪽) grande








바리스타라는 직업으로 일하지 못하게 되어 아쉽지만 한편으로는 아쉽지 않다. 덕분에 더 좋은 조건으로, 원하는 곳에서 일하게 되었으니 되려 감사해야 할까?



역시 언젠가 한 번쯤 스타벅스가  나에게 도움이 될 줄 알았다. 내가 그동안 했던 충성에 비하면 별것이 아니지만 그래도 이 정도로 충분하다.





메인사진 : 핀터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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