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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lair Jun 07. 2024

솟아오르던 물욕을 집주인이 꺾어주다니...


5월부터 이상하리만큼 물욕이 솟았다. 보이는 것은 다 사고 싶고, 보이지 않는 것도 물론 사고 싶었다.

어쩌면 그동안 잠재웠던 물욕이 폭발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장 먼저 액세서리에 눈이 갔다. 더운 여름이 가까워오니 시원한 액세서리가 갖고 싶었다.

처음은 소박했다. 은도 아니고 은빛의 시원해 보이는 귀걸이를 한  샀다. 고작 만원이 넘어가는 아주 저렴한 제품이었는데 아주 만족스러웠다.



너무 만족스러운 나머지 다음 아이템을 찾게 되었다. 이 귀걸이에 어울리는 반지나 혹은 이 귀걸이와 비슷한 느낌의 귀걸이를 또 하나 사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점점 배보다 배꼽이 커졌다.



결국 귀걸이도 아닌 반지를 사게 되었다. 마음에 드는 것을 찾다 보니 귀걸이를 열개도 넘게 살 수 있는 반지를 사버린 것이다. 래도 그 정도에서 끝났으면 좋았을 텐데 물욕은 점점 커져만 갔다.








여름이 가까워오니 쓰던 향수가 답답하게 느껴졌다. 솔직히 말하면 쓰고 있는 향수는 매년 여름마다 답답하게 느껴졌었다. 그래도 나는 미니멀리스 트니까 생각하며 여름마다 꿋꿋하게 참았다.



그러나 한번 터진 물욕은 어쩔 수가 없었나 보다. 힐끔힐끔 향수에 눈이 가기 시작했다. 마침 면세점을 이용할 기회가 와서 구경을 갔다가 그곳에서 운명 같은 향수를 만났다.



여름에 딱 뿌리기 좋은 향수, 몇  전부터 눈여겨보던 향수가 그곳에 있었다. 두근거리는 마음을 애써 누른 채 침착한 척 시향을 한 후 면세점을 한 바퀴를 돌았다.  팔에 뿌린 향수의 남은 향을 계속 킁킁거리며 다녔는데 계속 좋았다. 순간의 끌림이 아니라 무려 몇 년을 고민한 것이니 이제 구매해도 되겠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면세점 향수코너





그 즉시 향수 파는 곳으로 돌아가서 구매를 했다. 요즘 환율이 좋지 않아 그렇게 저렴한 가격은 아니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실은 가지고 있는 향수를 다 쓴 후에 다른 것을 구매할 생각이었는데 생각보다 빨리 구매하게 되었다. 오랫동안 고민했던 것이라 죄책감은 들지 않았다. 다만 향수를 사고도 물욕이 사그라지지 않은 게 이상할 뿐이었다.



그러니까 갑자기 구매 욕구가 폭발해서 귀걸이, 반지, 향수까지 샀다. 최근 몇 년 들어 단기간 가장 많은 쇼핑을 한 것이었다. 그러니 이제 여기서 정말 그만뒀어야 했다.








그러나 그렇게 쉽게 잠재워질 물욕이 아니었나 보다. 이번엔 옷으로 눈길이 갔다. 그래, 귀걸이, 반지, 향수까지 샀으니 예쁜 옷을 사면 딱 완벽했다. 그동안 마음에 드는 옷이 딱히 없어서 계속 사지 않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드디어 마음에 드는 옷을 발견하고 말았다. 심지어 추가 세일기간이라 가격도 마음에 들었다. 마음에 드는 디자인과 가격까지 이런 옷을 발견하는 것은 쉽지 않다.



보통 때 같으면 더 고민해 보자, 조금 더 생각해 보자 라는 마음이 들 텐데 물욕이 넘치는 지금 시점에서는 일단 사야겠다는 마음이 먼저 들었다(정말 위험했군...)



마치 그동안 숨겨진 물욕이 화산폭발하듯이 터지기라도 한 것처럼 보였다. 솔직히 이 정도 소비는 대한민국에 사는 내 비슷한 또래들에게는 별로 많거나 과한 소비가 아니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미니멀을 지향하는 사람이었기에 내 기준에서는 엄청나게 많은 소비였다.



모든 것을 지르고 났는데 기분이 이상했다. 기쁘고 즐거운 마음이라도 들던지, 홀가분한 마음 차라리 죄책감이라도 들었으면 좋겠는데 되려 별 기분이 느껴지지 않았다.



문제는 사면 살수록 물건은 더 갖고 싶어졌다. 다음엔 뭘 사지? 좀처럼 물욕이 사라지지 않았다. 참 이상한 시기였다.

 






그때 집주인에게 연락이 왔다. 제주의 우리 집은 연세로 내는 시스템인데 갑자기 200만 원을  올려야겠다고 했다. 네? 갑자기 이렇게 많이요?



갑자기 많이 올라버린 연세에 놀랐다. 그래도 어찌어찌 협상을 해서 조금은 깎을 수 있었다. 그러나 갑자기 쌩으로 나갈 200만 원을 생각하니 배가 아팠다. 200만 원이면 최근에 내가 산 모든 물건을 합쳐도 남는 돈이다. 차라리 그 200만 원이면 당분간 내가 갖고 싶은 것 정도는 충분히 살 수 는데...



갑자기 그 돈을 낼 생각 하니, 앞으로 당분간 쇼핑은 할 수 없겠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순간 가득 차 있던 물욕이 떠나가는 것이 느껴졌다.



그렇게 강제적으로 물욕이 꺾일 수밖에 없었다.



결국 물욕은 집주인에 의해 꺾이고 말았다. 아쉽게 물욕이 스스로에 의해서가 아닌, 타의에 의해서 다시 수 그러 수밖에 없었다.                                                                                                                                                                                                                       



한편으로는 마치 미래를 예견한 것처럼 쇼핑한 것이 다행인 걸 수도 있겠다 싶었고, 앞으로 당분간 미니멀 생활을 충실히 할 수 있겠다 싶어졌다. 어쩌면 이것 또한 다행인 걸로...



그래도 마음이 아프다... 200만 원...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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