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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lair Jun 02. 2024

젤리가 필요한 순간이 있다

잇몸이 아파 치과에 갔었다. 다행히도 큰일은 아니었지만 그 최초의 원인은 질겼던 쫀드기와 더불어 요새 매일같이 먹었던 젤리가 아닐까 추측할 수밖에 없었다. 물론 그게 전부인 이유는 아니지만 아마도 촉발시킨 요인이 아니었을까?



"치과 선생님 이제 젤리 먹으면 안 돼요?"

"아예 먹을 수 없는 것은 아니지만, 이제부터는 조금씩 조심해서 드셔야 해요."



치과를 다녀와 곰곰이 생각해 보니, 내 나이 아직 마흔도 되지 않았는데, 벌써 젤리를 조심해서 먹어야 한다고? 



왠지 억울했다.







젤리의 최초 기억은 외갓집 제사에서였다. 어릴 적 외갓집은 매년 몇 번씩의 제사를 지내고는 했는데 그때 제사상에는 늘 동그란 알록달록 무늬 사탕과 설탕이 가득 묻힌 젤리가 올라가 있었다. 물론 그때도 과자가 귀한 시절은 아니었지만 그때는 지금처럼 젤리나 사탕이 이토록 다양하지 않았다. 그런데도 그 제사상의 젤리는 생긴 모양과 달리 맛이 별로 없었다. 그래서 먹지 않았다. 심지어 알록달록 예쁜 사탕에서는 박하맛이 났다.




제사상에 올라가던 젤리와 사탕




그러다 세월이 흘러 젤리의 맛을 알았던 것은 외국에서 들어온 곰돌이 모양 제품이었던 것 같다.



그 후로 젤리를 참 좋아했다. 요즘같이 이렇게 다양한 과일맛의 젤리가 유행하기 전부터 젤리를 좋아했다. 그때는 자주 먹었던 젤리의 대표적인 것이 하리보제품 이었다. 곰돌이 모양, 과일모양, 하트모양, 반지모양 등등 다양한 맛과 모양의 젤리는 참 달고 맛있었다. 특히 소포장된 젤리는 아이들 주기도 편해 구입해 놓고 간식으로 먹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베트남에 다녀온 지인의 선물을 받게 되었는데 그것이 망고젤리였다. 부드럽고, 적당하게 끈적거리고 진한 맛의 망고젤리가 정말 내 취향이었다. 세상에나 이렇게 맛있는 젤리가 있다니!! 정말 환상적이었다. 아마도 내가 젤리에 눈을 뜬 것은 질기고 질긴 하리보가 아니라 진하고 맛있는 망고젤리가 시작이었던 것 같다.



그 후에 방콕 여행을 가게 되었는데 이번에는 설탕이 묻힌 작은 젤리를 발견하게 되었다.  베트남 젤리랑 같은 망고 맛인데 식감이나 모양이 비슷하고도 또 다른 맛이었다. 망고젤리를 선물용으로 또 내가 먹을 용으로 한가득 사 왔다. 요즘은 여행에 가서 좀처럼 뭘 사지 않는 편인데, 젤리만큼은 인심을 팍팍 썼다.  



암튼 망고 젤리가 정말 최고였다. 먹고 또 먹어도 계속 먹고 싶은 망고 젤리였다.








그러나 망고 젤리도 계속 먹으니 색다르지 않았고 진부해졌다.


그런데 얼마 전 지인이 부산에 여행을 다녀오며 젤리를 한 봉지 가득 사다 주었다. 요즘 sns에서 유행한다는 젤리가 한가득 담겨있었다. 부산의 깡통시장에 가면 젤리를 종류별로 골라 살 수 있다고 했다. 그 얘길 듣고 부산 깡통시장의 젤리를 인터넷으로 검색해 봤다. 그곳엔 다양한 가게들이 있었는데 특히 젤리가 가판대 가득 쌓여있는데 어마어마한 종류의 젤리가 있었다. 내가 직접 가서 살 수 있었더라면 좋았을 텐데 아쉬웠다.




그래도 이미 선물 받은 젤리가 있으니 정말 신나게 먹었다. 한 봉지 가득 담긴 젤리의 핵심은 요즘 유행이라는 '까먹는 젤리'였는데 겉과 속이 맛이 다른 젤리가 먹는 재미도 있고, 다양한 맛별로 들어 있어서 더욱 좋았다. 게다가 주로 망고맛 젤리만 먹다가 새롭게 먹어보는 리치 맛, 복숭아 맛, 사과맛, 청포도 맛, 딸기맛, 요구르트 맛 젤리라 색달랐다.




그렇게 자주 먹다 보니 봉지 가득 담긴 젤리의 양이 점점 줄었다. 젤리가 점점 줄어들어보니 불안해졌다.  물론 인터넷에 젤리가 팔고 있지만 내 마음대로 다양하게 살 수 있는 젤리를 원했기 때문이다. 제주에서는 젤리 파는 곳이 없을까 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던  오랜만에 '서귀포 올레시장'에 들렀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딱 들어가는 입구에 젤리 가게가 새로 생겨 있었다.  역시 요즘 대세인 만큼 젤리가 가득가득 팔고 있었다. 참새가 방앗간을 그냥 지나칠 수가 없었다. 한가득 젤리를 고르고 골랐다. 얼마나 다양한 맛의 젤리가 팔던지 먹고 싶은 젤리를 고르는데 힘들었다.




파인애플, 바나나, 키위, 요구르트, 망고, 사과, 리치, 복숭아 심지어 옥수수맛의 젤리가 있었다. 다양한 젤리를 골라 돌아왔다. 마치 세상을 가진 듯 행복한 시간이었다.



다양한 맛의 젤리 득템








질기고 질긴 하리보 젤리만 먹고살다가 망고젤리를 시작으로 온갖 다양한 맛의 부드러운 젤리를 먹고 있으니 세상 참 좋아졌다 생각이 든다.



어쩜 내가 좋아하는 젤리가 유행이 되어 이렇게 다양하고 맛있는 젤리를 실컷 먹을 수 있다니 행복하고 말이다.


 

역시 젤리가 필요한 순간은 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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