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에 가을이 온 느낌이 드는 것은 아침저녁으로 부는 선선한 바람이다. 제주의 여름은 특히 제주의 주택에 살면 참 짧게만 느껴진다. 그래도 여름이라고 한참 실내도 참 더웠는데 요즘은 딱 선선하고 좋다. 그래도 아직은긴팔을 입기엔 덥고, 반팔을 정리하기엔 이르다. 그렇지만가을이다가오고 있으니 여름옷은조금씩정리하고 가을 옷을 정리해 넣기로 했다.
옷장을 열어 쭉 살펴보다가 여름에 자주 입었던 실내복을 꺼냈다. 분명 보기엔 멀쩡해 보여서 입었는데 입고 나서 보니 군데군데 얇은 것 같은 얼룩이 져있다. 자세히 보니 얼룩이 아니라 옷감에 해졌다. 옷감이 해졌다라... 요즘에도 옷을 이렇게 끝까지, 닳도록 입는 사람이 있나?
얼마나 입었느니 생각해 보니 적어도 5년은 지난 옷이었다. 그것도 내가 산 옷이 아닌 어머님 집에서 발견해 가져와서 집에서 입게 된 실내복. 한창 집에서만 지내던 시절에는 잠옷으로도 입기도 했었다.작년부터 버릴까 하다가 올 한 해만 더 입을까 하며 여름 내내 더 열심히 입었던 참이었다. 그런데 이제는 도저히 안 되겠다 싶은 상태이다. 당장 걸레각이다.
요즘 다시 미니멀리스트로 다시 노력하며 살아볼까 싶어서 책을 빌려다 봤었다. 최근에도 물건을 계속 사들인 건 아니지만 그 감각이 헤이 해진 것은 사실이다. 그러니 자꾸만 쇼핑몰을 검색하고 쳐다보고 암튼 여러모로 물건에 정신이 팔렸던 까닭이다.
그러나 옷감이 해질 때까지 옷을 입는다는 건 미니멀리스트인 나의 입장으로는 아주 잘한 일이기는 했지만,이 실내복의 상태를 보니약간 과한 것 같다. 이제 그만 잘 보내줘야 할 때가 온 것 같았다. 군데군데 몸이 비쳐 보이는 것이 아주 흉했기 때문이다.
그래도 잘했다, 참 잘했어.
많이 낡고 지저분한 여름옷을 몇 벌 정리하고 위층에 있던 옷장에서 가을 옷을 꺼냈다. 옷을 꺼내며 살펴보니 작년 가을, 겨울 잘 입던 아이의 내복이 있었다. 근데 사이즈를 보니 작아졌다. 아무래도 새롭게 넉넉한 사이즈로 구매해야 할 것 같다. 실내복 겸 잠옷으로 입고, 세탁을 자주 하던 옷이라 누구를 물려줄 수도 없고, 낡아 재활용 함에도 넣을 수도 없는 옷이다.
그러나 그냥 버리려니 아깝다. 요즘은 그런 옷은 걸레로 쓰고 있다. 특히나 장마인 계절, 혹은 이렇게 습한 계절 그래서 물에 적신 걸레로 바닥을 닦을 수 없는 시기에 너무 유용하다. 제주 집은 거의 늘 습하니까 내복을 사이즈에 맞게 잘 잘라서 걸레대에 끼운 후 바닥을 닦는 용도로 쓰고 있다.
내복 중에 바지만 잘라도 5개 정도의 걸레가 나온다. 그런데 내복이 몇 벌이나 되니 만들어지는 걸레양만도 상당하다. 앞으로 한참은 걸레를 사지 않아도 쓸 수 있다.
이렇게 우리 집에서 나온 옷은 끝까지 할 일을 하고 떠난다.그럼에도 재활용품장에 마구잡이로 버려지는 옷들을 보면, 쓰레기가 넘쳐나는 것 같아마음이 편치 않다.
나부터 잘하자...
오랜만에 창고를 정리하다가 더 이상 쓰지 않는 청소기를 발견했다. 이 청소기는 무려 10년이 되었지만 실 사용은 5~6년 정도밖에 되지 않았는데, 저 머나먼 미국에서 사서 서울로 그리고 다시 제주까지 온 민족대이동에 참여한 가전기기이다. 청소기에 큰 욕심이 없어서 그럭저럭 이것을 잘 사용하고 있었는데, 올해 초부터 머리카락 외의 쓰레기를 흡입하지 못하기 시작했다. 청소기를 돌리긴 하는데 다시 물걸레질을 한번 반드시 해야 청소가 끝나는 것이었다. 그래도 그냥 버티며 썼는데 어느 순간 청소를 두 번 하는 기분이 들어 불편해졌다.
다행히도 기존에 가지고 있었던 로봇청소기가 있어서 꺼냈다. 오랜만에 로봇청소기를 사용하니 신세계였다. 그것을 사용하기 전에는 편리함을 모르다가 다시 사용하기 시작하니 큰 기쁨이 있다. 전원만 작동하면 알아서 자동으로 집을 청소해 주니 얼마나 편한지 모른다. 로봇청소기와 건조기는 가정에 꼭 필요한 일꾼 같다.
어쨌든 짱짱한 로봇청소기가 돌아가니 고장 난 청소기는 다시 쓸 일이 없었다. 사실 진작에 버릴까 고민했지만홈페이지에 가보니 구형 청소기를 반납하면 신형 청소기를 살 때 혜택이 있다고 해서 보관해 두었다. 그런데 새 청소기를 대체 언제 사게 될지 몰라서 자리만 차지중이라 처치곤란이다.
결단을 내려야 했다. '언젠가' 필요하니까 조금의 이익을 위해서 공간을 차지하더라고 계속 둘 것인가 아니면 이제 그만 정리해야 할 것인가!
다음에 정리해야지, 조금만 더 써볼까? 언제 가는 쓸 텐데... 이러한 마음들이 모여 집안 곳곳 쓰레기가 쌓이는 것 같다.
물건을 버리고 정리하는 일, 어떤 물건을 버려야 하는 것인지, 어떠한 물건은 이제 내게 필요하지 않은 것인지 그것을 분류하는 것은 모두 개개인의 몫일 것이다.
그리고 잘 쓸 수 있는 물건은 최대한으로 쓰고 정리해 보자! 그리고 그 외의 것들은 조금만 더 부지런하게, 빠른 결단력으로 처리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