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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lair Sep 03. 2024

블루칼라 아빠와 화이트칼라 남편

어릴 적 아빠는 늘 작업복을 입고 다녔다. 아빠가 집에 오시면 곧바로 아빠에게 안기려 다가갔는데 그때마다 아빠는 '저리 가 땀냄새나~' 하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아빠는 곧바로 씻으러 들어가셨다. 아빠가 양복을 입는 것은 경조사 때뿐이었을 것이다.



아빠는 어릴 적부터 손재주가 기가 막혔다. 게다가 성실하니 스카우트 제의도 많이 받았다고 했다. 결혼 전과 결혼 후 블루 칼라의 아빠는 월급을 받으면 하나도 쓰지 않고 고스란히 저금을 했다고 했다. 



우리가 태어나기도 전부터 아빠는 열심히 일하셨고, 당연히 우리가 태어나고는 더 열심히 일하셨다. 언제나 성실 그 자체인 사람이었다. 그 결과 자연스럽게 우리 아빠는 블루칼라로 성공하셨다. 어느새 아빠는 양복을 입지 않아도 대우받는 그런 사람이 되어있었다.  



종종 아빠의 작업복이 생각난다. 빨래통에 놓여있던 기름때가 묻은 옷들. 빨아도 빨아도 때가 지워지지 않던 옷가지들. 당연히 일반 옷과는 분리해 세탁을 했고, 회사엔 따로 작업복을 위한 세탁기가 있었던 것 같기도 하다.  겨울이면 입었던 두툼한 회사점퍼도 생각난다.



기름진 때가 묻은 아빠의 모습이 싫었던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그때도 지금도 나는 아빠가 자랑스러웠다. 아빠가 흘린 피와 땀은 그가 살았던 삶과 자식인 우리의 삶을 달라지게 해 줬으니까 말이다.









그런데 그의 자식이었던 나는 화이트칼라를 만나 결혼했다. 정확히 말하자면 아빠와는 정반대의 직업을 가진 사람을 만났다. 집안 대대로 배운, 그 시절 부모님께서 모두 대학교를 나오신 그리고 많은 것을 가지고, 갖춘 그래서 그도 너무도 당연하게 박학다식한...  게다가 다정다감까지 가진 서울 남자였다.  마치 이 세상의 모든 것을 알고 있는 듯한 느낌을 가진 그런 스마트한 사람이었다.




블루칼라 아빠와 화이트 컬러 아빠의 같은 점은 성실함과 온화한 성격이다. 다른 면에서 그들은 스스로를 채찍질하며 노력했다. 그러나 그들에게는 언제나 가족이 최우선이었다. 그리고 언제나 나를 최고로 대우해 주었다. 난 아빠의 하나밖에 없는 공주님이었고, 지금의 나는 남편의 하나뿐인 귀요미이다.









화이트칼라의 남편이 좋았다. 매일 정장을 입는 사람은 아니었지만 그에게는 언제나 향긋한 냄새가 났고, 손은 어느 여자보다 보드랍고 깔끔했으며, 어떤 질문을 해도 완벽한 대답을 해줬고, 심지어 아이가 생긴 후로는 태교로 매일매일 책을 읽어줄 만큼 다정했다. 지금도 남편은 아이가 태어난 이후 밤마다 잠자리 책 읽기를 맡아줄 정도로,  게다가 어느 정도 큰 후에는 개인과외 선생님처럼 아이의 교육을 모두 맡아 시켜줄 정도로 좋은 아빠였다.



그런데 그러한 최고의 남편도 가끔은 블루칼라의 아빠가 그리워지게 만들었다.




집안의 보일러가 고장 나거나, 창고의 문이 부서졌을 때, 집에 비가 새거나 에어컨이 더운 바람만 나올 때 혹은 가전제품이 고장 났을 때 혹은 자동차가 고장 났을 때 등등... 삶의 실상은 블루칼라 아빠가 필요한 순간이 많았다. 게다가 남편은 그런 일에 관심조차 두지 않아 모든 일처리는 내 몫이었다.



물론 완벽한 사람은 없다는 것은 알고 있다. 그러나 심각할 정도로 똥손인 남편을 보며... 경악을 금치 않을 수 없었다. 심지어 그런 엔지니어적인 부분에서는 내가 훨씬 위일 정도였다.






최근에도 그런 일이 일어났었다. 제주에서 운전이 늘었던 남편은(이전에는 운전을 잘하지 않았다) 요즘 자신감이 붙었는지 운전이 조금씩 거칠어졌었다(어울리지 않게) 그러다 다른 차와 부딪혀서 사이드미러를 고장 내버렸다.



문제는 고장 난 사이드미러에서 소리가 멈추지 않고 계속 나는 것이었다. 정체 모를 소리를 들으며 한 시간 동안을 계속 운전했다. 만약 나라면 중간에 차를 세우고 그 부분을 뜯어서 (?) 소리를 멈추는 흉내라도 내었을 텐데... 그는 시끄럽다고만 하고는 계속 운전을 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집으로 돌아오는 동안 인터넷을 검색을 했고, 사이드미러의 소리를 멈추는 방법을 알아내었다. 하여 집에 도착하자마자 자동차의 사이드미러 부분을 분리하기 시작했다. 마침내 소리가 멈추었다. 휴...  문제는 사이드미러를 분리하는 동안에 그는 아이와 사라져 있다는 것이었다.



또다시 블루칼라의 아버지가 그리워졌다. 심지어 친오빠(비슷한 류)도 그리워지는 순간이었다.



어쩔 수 없었다. 내가 선택한 것은 화이트칼라의 그였기 때문이었다.




우린 모두 달라요




이런 일들이 계속되다 보니 이제는 내가 블루칼라  되어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릴 적에 방송반에서 엔지니어를 담당할 정도로 손재주가 있었고, 지금도 집안의 여러 면에서 활약 중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내 손으로 못하는 것들 전문가들이 도와주시니 전혀 걱정 없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남편이 전등은 교체할 수 있으니 얼마나 다행인가!!! (포기)



아마 환상의 조합은 화이트칼라 남편과 살며 블루칼라 아버지 옆 집에 산다면 완벽하겠지만...

물론 웃자고 하는 소리다.



부부란 본디 부족한 부분을 채워가며, 노력하며 사는 것이 정답일 테니, 서로가 잘하는 것을 하며 잘 살아야 봐야겠다.



앞으로도 우리 부부 파이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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