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카페에 갔다가 작은 유리컵을 발견했다. 투명한 브라운 유리재질의, 적당히 물을 담기에 딱 알맞은 사이즈였다.첫눈에 보고 반한 컵은 아니고 몇 년 전부터 갖고 싶다 생각만 해온 그 컵이었다. 언젠가 기회가 되면 인터넷에서 사려고 주문을 염두에 뒀는데, 오늘 본 카페에서 파는 오프라인 가격도 나쁘지 않았다. 게다가 딱 2개가 전시되어 있었다.
살까 말까...?이번엔 그냥 사버릴까? 아니야 아직 쓰고 있는 컵이 많잖아... 아무도 모르는 내적갈등. 수없이 고민을 했다. 그러나 궁극적으로는 시간에 쫓겨 카페를 서둘러 나오며 컵을 사지 못하고 말았다. '다음엔 꼭 사야지...!' 하고 생각했다. 오히려 다행이었다.
늘 욕심나는 것들이 있다(어쩌면 내게 물건이라는 대한 욕심은 죽어야 없어질 것 같다는 생각도 한다).그중에 그릇과 컵은 늘 탐나는 것들이다. 그래서 조금이라도 예쁜 그릇이나 컵을 보면 눈이 반짝거리고, 심장이 두근거린다.
'견물생심' 특히나 직접 보면 더 욕심난다. 그래서 일부러라도 그런 곳에 구경하러가지 않는 편이다. 그런데 요즘은 너무 못 봐서 뭐든 갖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것 같기도 하다. 그나마 컵이나 그릇은 일상생활에서도 자주 볼 수 있다. 특히 카페에 가서 마음에 드는 컵을 보면 음료를 다 마시고 꼭 뒷면을 들어 브랜드를 확인하게 된다.늘 찻잔의 뒷면을 보고 있는 내 모습이 좀 웃기기도 하다
지난번 남편이 밥그릇을 깼다. 우리 집 설거지를 담당하는 남편은 가끔 그릇을 깬다. 처음엔 깨는 것이 당연하다 생각했는데 뭔가 자주 깨버리니 잠시나마 '의도된 것일까?'하고 생각했던 적도 있다. 어쨌든 최근에는 밥그릇을 한번, 국그릇을 한번, 그렇게 두 개나 깼는데(물론 다른 것도 한 번씩) 하필(?) 그 그릇세트가 모두 친정에서 갖고 온 것이라 친정집에 또 몇 세트가 남아있기 때문에 그때마다 하나씩 가져와서 채워뒀다.
그런데 이번에 친정에 방문했을 때 깨진 밥그릇을 교체하려고 하나를 가지고 가려는데 그 그릇의 개수가 얼마 남지 않은 것을 알았다. 이제 더 이상 그릇을 깼다가는 교체하지 못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엔 깨는 그릇이 아까웠는데 그 후로는'그래 계속 깨... 차라리 나중에 아예 새로운 밥그릇과 국그릇으로 싹 바꿔버리자'라는긍정마인드로 바뀌었다.그랬더니. 남편이 그릇을 깰 때 좀 덜 화가 났다.
지금 쓰고 있는 식기 세트는 두 세트가 있다. 데일리로 쓰는 것이 화이트 컬러들이 한 세트가 있고, 일주일에 한두번 나오는 초록, 베이지 컬러의 세트가 하나 있다. 그중에 데일리로 쓰는 것은 한 10년을 말 그대로 데일리로 쓰다 보니 조금 지겹다. 물론 쓰기 편하긴 한데 매일 쓰는 그릇이 예뻐 보여야 하는 법이라 언제고라도 기회가 조금 더 욕심부리고 싶어 진다. 여기서 욕심부린다는 말은 언젠가 새로 싹 사겠다는 의미이다.
그래도 아직은 너무도 멀쩡한 데일리식기니까 남편이 다 깨트릴 때까지 열심히 써야 한다.
어제는 남편이 설거지를 끝내고 그릇을 하나 들었나 놓았다 한다.
"이거 그릇이 너무 지저분한데?"
"응~ 김치국물이 베어서 그래 다음에 햇빛에 내놓으면 사라질 거야~"
"이 정도면 버리는 것이 좋을 것 같은데... 그릇도 한 번씩 바꿔줘야지!"
본투비 미니멀리스트인 남편은 조금 지저분하고 낡으면 버리고 싶어 한다. 중요한 것은 버리긴 자주 하나 버렸다고 새로 사지는 않는다. 나는 물건 욕심은 많지만 버리는 것은 잘 못하고, 아니 사실은 조금 더 쓸 수 있다는 생각에 갖고 있으면서, 또 새것을 좋아해 물건을 사들이는 스타일이다.
정확히 반대인 부부가 만났다.
그래도 남편이 그릇을 새로 사자는 소리를 하다니... 분명 낡고 지저분하긴 한 거다. 덕분에 쇼핑의 기회가 생기다니! 나의 욕심이 남편 덕분에 채워지게 생겼으니 왠지 더 기쁘다.
"내가 사고 싶어 사는 게 아냐~ 남편이 새로 사야 한다잖아~~ 호호호"
정갈한 접시들, 너무 예쁘다
인간의 욕심은 아니 나의 욕심은 어디까지 인가... 가방과 옷 그것도 모질라 컵과 그릇까지... 심장이 뛰고 있는 한 이 욕심을 버릴 수는 있는 것일까...?
그래도 어쩌면 세상엔 예쁘고 귀엽고 마음에 드는, 내 취향인 물건이 많아서 또 삶이 즐겁다는 것.
덜 욕심부리는 삶을 살고 있지만 때로는 그런 것들에 욕심내고, 설레는 이 모습도 좋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