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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lair Oct 02. 2024

적당한 거리의 친구

방금 제주에 도착했다는 친구에게 연락이 왔다. 지난번에 전화통화하며 이맘때쯤 제주에 온다고 연락이 왔었는데 깜박 잊어버렸다. 한참을 뜸 들이다가 미안하다는 연락을 다. 만나지 못할 일이 있기도 했고, 몸이 아프기도 해서 이번엔 못 만나겠다고 대답을 한다. 요즘처럼 몸이 아프고, 컨디션이 좋지 않을 때는 누구를 만나는 게 해롭기 때문이다.




그래도 미안했다. 이 멀리까지 여행 왔는데 정말 만나지 않아도 될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친구가 섭섭하지는 않을까 걱정이 되었다. 그러나 애써 무시했다. 친구는 가족들과 잘 여행하고 있을 테니...




몇 시간 전 다른 친구가 인스타 스토리에 저녁으로 만든 떡볶이 사진을 올렸다. 떡볶이를 좋아하는 나로서는 "나 떡볶이 정말 좋아하는데, 너무 맛있겠다"라고 dm을 보냈더니 친구가 곧바로 대답한다. "우리도 떡볶이 먹으며 얼굴 봤으면 좋겠다"라고 말한다. 마지막으로 친구를 본 게 아이가 한 살 때인가 두 살 때이다. 원래는 서울과 경기도의 1시간 거리였는데 이제는 정말 멀어져서 그런지 보기가 어렵다. 한때는 하루라도 얼굴을 못 보면 큰일 나는 사이였는데 이제는 인스타로 연락을 주고받는 그런 사이가 되었다. 아쉽지만 어쩔 수 없지...









이번 추석 명절에 육지에 갔을 때 시간을 쪼개 친구들을 만나기로 했었다. 한 친구는 임산부였는데 하필 내가 그즈음 목감기에 걸렸다. 말이 목감기이지 코로나일지도 모르고 괜히 임산부 친구를 만났다가 옮을까 걱정돼서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했다. 그런데. 마침 친구가 일정이 생겨서 못 보겠다 얘기해서 차라리 다행이다 싶었다.



대신 다른 친구는 얼굴을 보고 올 수 있었다. 그 친구는 추석이라서 며칠간 명절을 지낼 음식을 준비하는 며느리이다. 그리고 그날도 종일 추석음식을 만들고 몸에서 기름 냄새가 난다며 샤워까지 하고는 나를 보러 왔다. 외국에 사는 것도 아니고 한국에서 사는데 이 정도 멀리 사는 게 뭐라고 날 보러 와주었다. 조금 눈물이 났다.



추석당일날 아침에 가볍게 제사를 지내고 오후에는 절에 가서 제사를 지내야 했다. 아침에 제사를 지내고 커피를 마시러 잠시 나왔는데 왠지 근처에 사는 친한 언니가 카페에 있을 것만 같아서 연락했다. 그런데 놀랍게도 5분 거리에 같은 브랜드 카페에 있다고 했다. 어쩌면 같은 카페에 있을뻔했다. 급작스럽게 언니와 만날 수 있었다. 일 년에 한 번을 겨우 정말 오랜만에 만났는데도 정말 편한 느낌이었다.   









나는 친구들이 많지 않다. 그래도 세상 살아가는데 외롭지 않을 정도만큼의 적당한 만큼의 친구를 가지고 있다.




점점 친구가 많아도 적어도 자주 보지 못하게 된다. 가까이 살아도 자주 못 보지만, 멀리 사니 더 못 보게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볼 기회가 있어도 상황에 따른 여러 가지 이유로 못 만나게 될 때도 있다. 처음엔 속상했지만 이제는 괜찮다.



사실 서울에서도, 제주에서도 친한 친구들보다 더 자주 보는 친구들은 아이 친구들의 엄마였다. 물론 나는 그 관계를 알기도 전에 그런 관계를 끔찍이도 싫어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에게 남아있는 제일 가까운 친구들은 그들이었다.



그런데 아이를 통해서 만나는 친구들은 생각보다 괜찮았다. 인터넷에 언급되던 그 이상한 엄마들은 주위에 없었다. 서울에서도 나는 그렇게 새로운 친구들을 만났고 그래서 더욱 그곳을 떠나오기가 싫었었다. 할 수 없이 그들과 헤어져 제주에 오면서 아무도 만나지 말아야지 생각했다. 누군가를 새롭게 만나고 정들면 또다시 헤어지는 삶이 나에겐 많이 힘들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제주에 와서  좋은 사람들을 만났다.  같은 동네에 살면서, 아파트가 아닌 각각의 집에 살아서 더 적당한 거리에 있기에 좋은 관계일지도 모른다. 그들은 우리 중에 한 명이라도 소외될까 봤는데 혹은 불편할까, 조용히 알뜰살뜰 마음을 써줬다.  결과 마음이 맞는 엄마들과는 종종 만나게 되었고 그렇게 친구가 되었다. 어쩌면 나의 새로운 친구들은 앞으로 10년 정도는 쭈욱 아이 친구들의 부모일지도 모른다.




아줌마들의 우정은...









멀리 있어서 가끔 보는 친구들, 가까이 있어도 가끔 보는 친구들. 결국은 어디에 있든 적당한 관계이다. 게다가 나는 이제 제주에 살게 되며 인간관계까지 협소해지다 보니 이제 이것이 익숙하다. 그게 누구든 가끔 보는 것이 좋다.



지금의 나는 혼자서도 정말 잘 지낼 수 있는 사람이 되었고, 이 정도의 인연으로도 충분히 잘 살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



물론 나도 가끔 외로워질 때가 있다. 그러나 나에겐 가족이라는 좋은 친구가 늘 함께 있고 그리고 가까운 곳에는 엄마친구들이 그리고 먼 곳에는 나의 오래된 친구들이 있다.



어디에 있든, 언제 보아도 우리의 마음은 하나일 테니 참 든든하다.




















이제와 친구라는 관계를 생각해 본다. 당분간 새로 사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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