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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케이 스토리텔링 Apr 08. 2023

제대로 망쳐 버린 2023  LA마라톤

제2편: 캘리포니아에서 버지니아까지 비운의 로드트립 삼천 마일

넌 미쳤거나 그게 아님 인생을 제대로 즐기는 듯…
근데 정확히 뭔진 모르겠지만 네가 LA 마라톤 뛰지 말고 그냥 집에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
그래도 이미 떠났다니까 조심해… LA 마라톤 뛰러 가는데 비행기대신 로드 트립을 하며 이동하고 있다는 문자에 친구가 보내온 문자다. 친구의 문자에 그게 뭔 소리야, 도대체 그런 게 어딨어 어쨌든 고마워- 그렇게 무심코 답장을 했다. 나중에서야 친구의 예민한 촉에 좀 더 귀 기울여야 했음을 깨닫고 가슴을 쳤다. 


올해 캘리포니아의 날씨는 유난히 짖궂었다. 34년 만에 눈폭풍이 LA를 강타했고 유례없는 홍수로 도시가 잠기고 로드트립내내 샌프란시스코에는 비가 내렸다. 베이커필드에서 샌프로시스코로 가는 길도 홍수여파로 군데군데 잠겨있어서 돌아가야 했다.(환경파괴로 인한 기후변화가 정말 걱정된다). 다행히 우리가 샌프란시스코에 머물기로 한 이틀 동안은 기적같이 날이 맑았고 그 절묘한 행운에 고마워하며 3월 16일. 아침 일찍 일어나 금문교로 향했다. 금문교 근처 주자창에 차를 세우고 배터리팩에 물을 끓여 일단 믹스커피를 타마셨다. 계획대로 링컨 공원을 돌아 금문교를 건너기로하고 스트라바에 경로를 찍었다. 비 온 뒤의 푸른 하늘은 더할 나위 없이 청량했고 콧등을 스치는 샌프란시스코의 봄바람은 새콤달콤했다. 아- 저 태평양바다!!! 대서양보다 한국과 가까운 태평양 바다엔 괜히 흥분하는 경향이 있다. ^^ 그렇게 금문교를 끼고 펼쳐져 있는 마샬 해변에 내려 모래 위를 잠시 걷고 해변가 주변언덕에 핀 봄꽃사진을 찍고 다시 자전거를 타고 산책용 나무계단을 덜컹거리며 내려가고 골프장을 거쳐서 비단길 같은 내리막을 달음질쳤다. 


그런데 순간…

꽝-챙!! 아니 챙-쾅--이었나. 


있는 대로 속도가 붙은 내리막코너에서 풀 속에 가려 미처 발견하지 못한 커다란 금속 파이프와 자전거 페달이 부딪히는 소리였다. 이백으로 치솟던 행복지수가 1초도 안 돼 마이너스 이백으로 곤두박질치는 순간이기도 했다. 가까스로 잃었던 정신을 차리고 눈을 뜨자 새파랗게 질린 남편은 911에 전화를 걸고 있었다. 난 기억에 없는데 자전거에서 떨어지면서 해변 낭떠러지 바로옆까지 굴렀다고 했다. 낭떠러지로 떨어졌다면 아마 브런치에 이 글을 영영 못 올렸을지도. 911까지 부를 거 없다고 남편을 안심시키고 일어서려는 순간 찌르는듯한 오른쪽 어깨의 통증과 두통으로 다시 픽 쓰러졌고 숨을 쉴 수가 없었다. 본능적으로 무언가 하나 부러졌다는 느낌이 들었고 순간 LA 마라톤을 달릴 수 없게 됐다는 자각이 왔다. 그대로 누운 채 아- LA 마라톤 또 날아갔어하며 엉엉엉 울었다. 부모님이 돌아가셨을 때도 그토록 서럽게 울었을까 쩝-


남편은 어이가 없다는 듯… 지금 자기 몸이 중요해 마라톤이 중요해-한다.

그렇게 한참을 엉엉거리다…

자전거… 자전거는 괜찮아…

하-참, 이 사람이… 자전거가 중요해 자기 몸이 중요해, 다 늙은 아줌마가 왜 이렇게 철이 없지.

나중에 확인해 보니 나만 박살 난 게 아니었다. 강하디 강한 페달이 휘어졌고 바퀴의 휠과 핸들이 뒤틀리고 30년간 정들었던 헬멧도 두 조각이 났다. 몇 년 전 마라톤 뛰기 일주일 전에 책상다리에 걸려 넘어지면서 발목을 삐어 포기하고 2020년 코로나 바이러스로 포기하고 LA 마라톤은 이번이 세 번째 시도였다. 달리기를 사랑하는 러너들은 안다. 몇 년을 준비하고 다짐한 마라톤을 예기치 못한 사고로 그것도 세 번이나- 달릴 수없게 되었을 때의 그 처절한 실망과 비통함을. 그러나 운동 중에 유독 달리기만 싫어하는 남편은 그 마음을 모른다. 거금(마라톤 등록비를 그렇게 말한다)을 내면서까지 스스로를 고문하는 나를 이해할 수 없다고 말한다. 달리고 나서 종종 앓아눕는 나를 보곤 마라톤을 못되먹은 중독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 그렇게 다음날 LA 컨벤션센터대신 호텔 근처 병원으로 갔다(미국은 bib number를 메일로 보내주지 않고 마라톤 전날 컨벤션 센터에서 각자 픽업 해야 함).


오른쪽 어깨뼈가 부러지고 갈비뼈에 금이가고 다행히 머리엔 이상이 없고… 블라~블라~블라~


마라톤은 물론 모든 일정이 무산되고 애드빌(소염 진통제)을 한 움큼씩 삼키며 캘리포니아서 버지니아까지 그렇게 비운의 로드트립 삼천 마일을 다시 시작했다. LA시내를 지날 땐 다음날 있을 마라톤을 위해 mileage banner를 세우는 걸 보고 또 울컥.. 순간.. 칼날 같은 통증이 세포 마디마디를 잔인하게 찔러댄다. 그냥 눈을 감고 다시 애드빌 한주먹을 꿀꺽 삼켰다. 그런 나를 보고 있던 남편은 꼭 신파 드라마 속에서 죽을병으로 아파하는 불쌍한 아줌마 같아- 하더니 자전거로만 돌아야 맛이냐고 차 타고 보는 게 더 멋있다고 원래 일정을 취소하며 그냥 지나치기로 했던 그랜드 캐년으로 차를 돌렸다. 그렇게 예정에 없던 애리조나에서 하루를 묶으며 그나마 그랜드 캐년과 눈물로(?) 조우를 하고 오클라호마까지 오자 아침부터 강한 바람을 동반한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바람과 함께 이틀간 계속되는 비로 고속도로는 커다란 트럭들이 뿌려대는 물안개로 앞이 보이질 않았다. 빗속에서 이틀연속 천마일(되돌아올 땐 삼천마일 전부 남편이 운전) 곡예줄을 타고 드디어 버니지아에 들어서자 노을에 부서지는 삼월의 햇살이 너무도 아프다. 집에 도착하니 배나무 가지마다 눈송이처럼 내려앉은 배꽃들이 활짝 웃으며 반겨주었고 은은한 향기가 온몸 검게 멍든 패잔병의 상처를 살며시 감싸 앉는다. 


그래… 순간의 비운으로 모든 걸 망쳤지만 그래도 즐거웠어… 숨조차 쉴 수 없는 이 통증마저 감사해…. 


이야기를 마치고 나니 문득  이 말이 생각난다. 

아주 치열한 갈등이 극복되면 쉽게 깨어지지 않을 안정과 평온의 감정이 생긴다. 

-칼 구스타프 융의 정신의 본질에 대하여 중에서-


풀 마라톤 26마일을 달리는 것은 달리는 매 순간마다 포기하고 싶은 마음과 달려야 한다는 마음사이의 갈등이다. 사실 그건 정신적 육체적으로 몹시 견디기 힘든 고통인데 그저 고통이라고 치부하고 외면하기엔 말로는 설명할 수 없는 어떤 기쁨이 있다. 그렇게 내 자신과의 갈등을 이겨내고 26마일을 완주하고 났을 때 얻을 수 있는 그 내밀한 안정과 평온의 감정. 거기서 오는 행복이 어쩌면 내 존재에 대한 의미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고 보니 마라톤도 우리의 삶과 똑같이 닮았다. 


달리기를 사랑하는 이 세상 모든 러너들을 응원하고 나의 LA마라톤을 지지하고 응원해 준 남편과 친구들에게 깊은 감사와 애정을 보내며... 




여기서부터는 사고 나기 직전까지 자전거를 타며 찍은 금문교의 풍경입니다. 

근처 주차장에서 본 금문교
다리 밑으로 갔더니 누군가를 기억하기 위한 것인지 이렇게 꽃을 꽂아 놓았다
링컨 파크로 가기 위해 Fort Point를 지나고
해변 언덕에 이렇게 벙커가 있었는데 세계 2차 대전당시 쓰였던 거라고 한다
Marshall해변으로 내려가는 길
해변에서 본 금문교
해변 모래사장의 까마귀. 늘 새 사진을 멋지게 찍고 싶은 데 무늬만 포토그래퍼라 가까이 가도 도망가지 않는 까마귀와 비둘기뿐이 못 찍는다 ^^;;
마샬 해변을 둘러싸고 있는 링컨 파크에서 본 금문교
금문교의 태평양 바다
여기부터는 넘어지기 전까지 찍은 Mashall 해변과 링컨 파크에 핀 봄 꽃들
사고가 나곤 부러진 어깨 때문에 사진을 못 찍었고 남편이 불쌍하다며 그랜드 캐년에서 바위 풍경 몇 개 찍어주었다. ^^
저 계곡 물은 콜로라도 강줄기 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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