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케이 스토리텔링 Dec 09. 2023

서른에 알았으면 좋았을 것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우리는 대부분 시간을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로 이어져 있는 직선적 개념으로 이해하며 살아가고 있다. 그러나 실제로 시간에는 순환적(cyclical)이면서 선형적(liner)인 두 개의 개념이 있다고 한다. 쉽게 말해 순환적 시간이란 무한히 반복되는 일련의 사건들 즉 아침이 오면 해가 뜨고 저녁이 되면 해가 지며 해마다 네 계절이 오고 가는 것 등을 말하고 선형적 시간은 한 생명체의 탄생을 기점으로 과거나 현재처럼 한번 지나온 곳으로는 결코 되돌아갈 수 없는 시간 개념을 말한다고 한다. 행복했던 불행했던 어제나 일년 전 혹은 멀게는 십 년이나 이십 년 전쯤으로 되돌아갈 수 없는 것처럼 직선적인 시간의 흐름은 꽤나 현실적이고 절대적 권위를 지니고 있는 듯 느껴진다. 그렇지만 올해도 어김없이 11월이 가고 12월이 왔듯이 순환적 시간이 반복해서 이루어진다는 것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런데 그 유명한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에 의하면 시간이란 관찰자의 공간적 시점에 따라 상대적으로 흐르는 것이어서 모든 사람에게 똑같이 동시인 지금 이란 절대적 시간은 존재할 수 없다고 한다. 즉 내게는 과거였던 것들이 누군가에는 아직도 미래일 수도 있다는 것인데 실제로 빛의 속도로 운동하는 입자의 무수한 고에너지 물리학 실험을 통해 이런 상대적 시간개념은 확고하게 입증되었다고 한다. 절대적이라고 생각되는 직선적 시간의 개념은 고대 서양 사람들에 의해 우주의 시작이 신의 일회성 창조행위로부터 비롯되었다고 주장하는 기독교의 창세기 이론이 힘을 얻으면서 기독교와 이슬람교 문명의 발달과 함께 세계로 퍼져나갔고 근대에 와서는 시계의 발명까지 이루게 되면서 현대인의 삶은 선형적 시간에 맞춰졌다고 한다. 그러나 그런 서양과는 달리 동양철학에서는 그리스철학이 시작된 그 이전부터 공간을 기술하는 유클리드적 기하학 개념도 지성의 한 구조물이란 인식과 함께 공간과 시간이 마음의 구성물이라 믿었다고 한다. 따라서 고대 동양 사람들은 선형적이고 순환적인 두 가지 속성의 시간개념을 적절히 조합해 믿고 관리했다고 한다. 상대성 이론이 위대한 것은 뉴튼의 고전 역학에서 기술한 대로 시간과 공간이 분리되어 존재하는 절대적 객체가 아니라 동양철학에서 인식한 대로 서로 역동적으로 엮여있다는 것을 수학적으로 증명했다는 것이다.   


Marine Corp 마라톤을 달리고 난 후 몇 주간의 긴 휴식을 끝내고 드디어 다시 동네 공원까지 달리기 시작했다. 불과 한 달 전까지만 해도 울긋불긋했던 공원 속의 나무들은 이젠 벌거벗은 앙상한 가지들만 창공을 향해있고 바닥엔 갈색 낙엽만 수북이 쌓였다. 푸르던 여름빛은 온 데 간데없고 마지막 남은 이파리만 안간힘을 다해 매달려 간간히 바람에 흔들린다. 무심한 초겨울의 저녁 햇살은 싸늘한 공기 속을 헛헛하게 배회하다 바스락대며 낙엽 속을 달음질치는 다람쥐 꽁무니를 잽싸게 따라간다. 한 번쯤은 되돌아가보고 싶은 삶의 어느 한 시점이 불가능해 보이는 선형적 시간의 흐름에 압도되는 순간이다. 젊음의 특권이라 말할 수도 있겠지만 젊은 만큼 삶에 대한 혼란과 갈등 혹은 치기 어렸던 행동들을 떠올리면 결코 과거로 되돌아가고 싶지 않다. 그러나 그래도 단 한 번만 과거로 되돌아갈 기회가 생긴다면 이번엔 어떤 삶을 살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 순간이다. 젊음의 정점이라 할 수 있는 이십 대는 이젠 아득하게만 느껴지고 이십 대보다는 그래도 조금 덜 멀다고 생각되는 삼십 대로만이라도 되돌아가게 된다면… 잃어버린 것들을 되찾고 후회스러웠던 것들을 만회할 수 있는 기회 같은 것. 


대부분 우리는 태어나 자라고 성장하면서 교육을 받고 그나마 부모님의 그늘아래 어리광을 부릴 수 있는 나이가 20대까지라면 30대부터는 어른으로서 온전히 내가 나를 책임지며 살아야 하는 시기가 시작된다. 그러나 이십 대의 열정과 광기가 날 것 그대로 남아있어 여전히 혼란스러운 시기이기도 하다. 그래서였는지 그때는 모든 것이 변하지 않고 내 곁에 있는 그대로 남아있을 줄 알았다. 부모님은 한결같이 용감하고 씩씩한 모습으로 내 삶의 멘토가 되어주시고 아이는 여전히 귀엽고 상냥하게 내 삶의 영역 안에 머물 거라고 믿었다. 과거로 되돌아갈 수 없는 절대적 시간을 살면서도 나 자신 또한 젊은 모습 그대로 그 자리에 머물러 있을 줄 알았다. 그것이  다시는 되돌릴 수 없는 선형적 시간이든 늘 반복되는 순환적 시간이든 시간이라는 흐름을 통해 이 세상 모든 것은 역동적인 변화를 겪게 되고 그 어느 찰나의 순간도 영원히 똑같은 모습으로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을 그때는 제대로 인식하지 못했다. 지금 이 순간의 나는 여전히 나이지만 어제의 나 멀게는 십 년이나 이십 년 전의 나와는 분명히 다른 나인 것이다. 그 작은 시간의 조각들이 모여 흐름을 이루고 되돌릴 수 없는 삶의 변화를 가져온다는 걸 잘 인식했더라면 조금은 다르게 살았을 것 같다. 


작고 사소한 인간관계에 집착해 삐죽빼죽하며 마음 다치지 않고 사람에 대한 연민과 이해를 넓혀 조금 더 친절하고 따뜻한 사람이 되었을 것 같다. 남과의 비교라는 허망한 가치에 휘둘리지 않고 겉으로 보이는 나보다는 내면의 나에게 좀 더 정성을 기울였을 것 같다. 단 하루만이라도 그 시간으로 되돌아갈 수 있다면 한없이 가벼웠던 그 젊음의 이고를 잠재우고 무한하게 반복되는 순환적 시간 속에서 유한하게 일어나는 크고 작은 선형적 사건들, 그 소중한 삶의 편린들을 감사히 받아들였을 것이다. 설사 그 순간이 아프고 괴로울지라도 툴툴대지 않고 그 고통이 주는 의미를 온전히 느끼고 이해하는 긍정적인 사람이 되었을 것 같다. 


수십 년의 세월을 한 자리에 서서 어떤 바람이나 추위에도 아랑곳 않고 본연의 제모습을 의연히 지키는 저 겨울 나무들처럼. 




2023년 11월 25일 버크 공원 

잎이 떨어져 버린 앙상한 나뭇가지엔 겨울새와 이름 모를 열매만 남아있다.  


작가의 이전글 지옥을 통과할 땐 무조건 앞으로 가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