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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케이 스토리텔링 Jun 03. 2024

6월의 시작 이십 년 지기 친구를 만나다

삶과 죽음의 길이 예 있으매 두려워...

달리기를 할 때 매일은 아니지만 동네 트레일에서 늘 만나는 두 친구가 있다. 처음 달리기를 시작하면서부터였으니 이십 년도 넘게 이어온 인연이다. 인연이라고는 하지만 따로 만나 밥도 먹고 수다를 떨고 하는 그런 사이는 아니고 동네 이웃 어딘가에 사시는 분들이다. 내가 달리기를 시작한 이십여 년 전부터 트레일 숲 속에서 산책을 하다 달리기 하는 나를 보면 환하게 웃으며 손을 흔들어 주는 친구들이다. 세월의 흐름에 따라 그분들도 나도 이젠 많이 늙었다. 한 분은 몇 년 전부터 지팡이에 의존해 산책을 하신다. 다른 한분은 올해 들어 한 번도 만나지 못했기에 얼마 전부터 달리기 할 때마다 마음이 늘 무거웠다. 이번처럼 이렇게 오랫동안 못 본 적은 없었기 때문에 건강에 이상이 있는 건 아닌가 하는 노파심 때문이었다. 이름도 사는 집도 모르지만 한동안 그분들이 보이지 않으면 무슨 좋지 않은 일이 생겼나 걱정이 돼서 불안해지곤 한다. 철없었던 이삼십 대 때에는 친구란 나이도 비슷하고 가끔씩 만나 카페도 같이 가고 무엇보다 만나면 내 마음에 꼭 들어야만 친구라고 생각했었다. 이십여 년 동안 트레일 산책길에서 그분들을 보면서 친구에 대한 생각이 바뀌었으니 그분들이야 어떻게 생각하든 내겐 틀림없는 친구다. 꼭 구차하게 말을 주고받아야만 친구인가 안 보면 괜히 걱정되고 그립기도 하고 또 보면 위안을 얻고 기분 좋아지는 관계가 친구지 지금은 그렇게 생각한다. 생각해 보니 사실은 외롭고 고독한 중 팔자(?) 같은 성격 때문에 삼십 년 혹은 이십 년 지기 친구라곤 남편과 그 두 사람뿐이다.


그런데 오늘 달리기를 하다 드디어 그 친구를 만났다. 숲 속 나뭇잎 사이로 후루룩 쏟아져 내리는 아침 햇살을 받으며 저 앞에서 천천히 걷고 있는 모습이 얼마나 기분 좋고 반갑던지 얼른 달려가서 이십 년 만에 처음으로 말을 걸었다.  


무슨 일 있으셨어요. 건강은 괜찮으세요. 걱정했어요. 


헉헉거리며 묻는 내 말에 그분은 빙그레 웃으며 잘 지냈어요? 하신다. 그러면서 그동안 많이 아팠고 얼마 전엔 심장정지가 와서 중환자실에 있다 겨우 빠져나왔다고 했다. 떠나야 했지만 운이 좋아서 이렇게 다시 푸른 나무와 하늘과 새 그리고 무엇보다도 나를 다시 볼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어서 너무 감사하다고 하신다. 순간 예리한 칼날에 베인 것처럼 가슴을 찌르는 통증 때문에 주책맞게 왈칵 눈물을 쏟을 뻔했다. 만날 때마다 오래전에 돌아가신 아버지와의 기억을 소환해 주고 그 감정의 근원이 무엇인지 잘 알 수는 없었지만 늘 따뜻한 느낌이 들곤 하던 분이었는데 이젠 이 만남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어쩌면 이번이 마지막일지도 모른다는 슬픈 예감 때문이었다. 땀으로 얼룩진 얼굴을 훔쳐내고 물백에서 셀폰을 꺼내 그동안 달리기 하면서 찍었던 트레일 사진을 보여주었다. 올해도 어김없이 얼었던 땅을 뚫고 3월엔 수선화가 피었었고 고사리도 이렇게 싹을 피웠으며 지난 5월엔 찔레꽃이 만발해 숲 속이 꽃향기로 가득했었다고 설명하면서. 사진을 보면서 환하게 웃고 행복해하시는 모습이 기뻤고 야위어 핼쑥해진 모습조차 너무도 아름답고 감사했다. 이십 년을 만나왔지만 처음으로 그렇게 대화를 나누고 무리하지 말고 천천히 달리라는 그분의 말을 뒤로 한채 무거운 마음을 앉고 버크 공원을 향해 달렸다. 우리 삶 속을 배회하다 어느 날 문득 예고도 없이 훅 비집고 들어오는 죽음이라는 마지막 생의 과정에게 그 분과 나와의 우정에 연민을 베풀어 건강한 모습으로 오래도록 더 만날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하면서. 연약한 그분의 뒷모습을 조용히 따라가는 숲 속의 짙은 녹빛이 오늘은 너무도 영악하고 잔인하다. 그래도 오늘 달릴 수 있어 감사하고 마지막일지도 모르지만 그리웠던 친구를 다시 볼 수 있었기에 더 감사하다. 달리기를 하고 와서도 습습해진 마음은 영 가라앉질 않는다. 문득 아주 오래전 손바닥을 맞아가며 국어시간에 외웠던 시구절 하나가 생각나 인터넷을 뒤져보았다. 


제망매가   월명사 지음, 조선시대 향가


삶과 죽음의 길이 예 있으매 두려워
나는 가노란 말도 못 다 이르고 갔는가
어느 가을 이른 바람에 여기저기 떨어지는 나뭇잎처럼
한 가지에 나고서도 가는 곳 모르겠구나
아 극락에서 만날 나는 도 닦으며 기다리련다.







달리기를 하면서, 2024년 6월 1일의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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