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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용재 May 23. 2022

하루하루가 무의미하게 느껴지는데 어떡하죠?

행복점수 : 0점

차차) 하루하루가 무의미하게 느껴지는데 어떡하죠?


“야, 테크토닉 춰봐”


그렇게 차차와 나의 첫 만남이 시작되었다. 군대에서 만난 차차는 흔히 말하는 아들 군번(12개월 차이 나는 후임)이었다. 그렇기에 더 관심이 가는 놈이었다. 신병들에게는 지옥 같은 시간, 신병 자기소개 시간이다. 보통 신병들은 주눅이 들어 있기 마련인데, 차차는 달랐다. 대뜸 춤을 좋아한다고, 클럽을 자주 다녔다고 했다. 이 기회를 악마 같은 선배들이 그냥 놓칠 수 없었다. 그 당시 나름 짬밥 좀 먹었던 내가 한 첫마디가 ‘야, 테크토닉 춰봐’였다. 당황할 것을 예상했지만, 부끄럼 없이 땀내 나는 수많은 남자들 앞에서 몸을 흔들었다. 아마 ‘그만해, 이 자식아~’라고 누가 멈추지 않았다면, 밤새도록 몸을 흔들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솔직히 춤을 잘 추진 않았던 것 같다. 남자들만 있는 군대라는 특수성 때문에, 잘 추는지 관심이 없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때 춤을 췄기에, 나에게 강렬한 인상을 심어 주었고, 같이 친동생 결혼식 때 춤을 출 정도로 친한 사이가 되었다.


 2015년, 신입 직원이라 업무에 허덕허덕 거리며, 겨우 퇴근하여 잠을 자려고 침대에 누워 있을 때, 오랜만에 차차한테 전화가 왔다. 남자한테 전화 오는 경우는 별로 없기에, 아무 생각 없이 통화 버튼을 눌렀는데, 영상에 자연인 한 명이 있었다. 처음엔 차차인지 아닌지 구분도 되지 않았다. 다듬어지지 않은 장발에 햇빛에 아무렇게나 탄 피부, 제일 충격적인 것은 팬티만 입고 있었다는 것이다. 처음엔 정말 ‘안 본 눈 삽니다’를 이천만 번이라도 외치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삼각팬티가 아니라, 사각팬티였다는 것. 사각 트렁크 팬티가 아니었다면, 아마 그다음 날 라섹 수술을 받으러 갔을지도 모른다.

“형 뭐해?”

“뭐하긴, 지금 시간이 12시다, 자려고 누워있지, 안 자냐?”

“아, 형 나 지금 몰타야~ 한국 시간 벌써 그렇게 됐나?”

“몰타? 몰타가 어딘데, 한국 아니야?”

나름 해외여행을 많이 다녔고, 세계지리를 많이 안다고 생각했는데 몰타는 너무 생소한 나라였다.

“아, 검색해봐 이탈리아 밑에 조그마한 섬나라 있어”

몰타는 남유럽 이탈리아 밑에 위치한, 몰타어와 영어를 공용어로 쓰는 섬나라이다.

“아니, 거긴 왜 갔는데? 여행 갔냐?”

“겸사겸사 왔어, 영어 공부도 하고, 휴양도 좀 하고”

“취업 안 해? 얼마나 있을라고”

“지금 이때 아니면, 또 언제 이런 기회 있겠어, 나 나가봐야 돼 또 연락할게~”

그 이후, 차차는 종종 자신의 안부를 알리며 몰타에서 사진을 보냈다. 아마 내가 시력이 나빠진 이유는 그 사진들이 항상 상체가 나체였기 때문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몸이라도 좋았으면 모르겠는데, 그렇다고 몸이 좋지도 않았다. 무슨 자신감이었는지 모르겠다. 지켜 주지 못한 내 눈에게 진심으로 미안할 뿐이었다. 내가 알고 있는 차차는 그랬다. 항상 여유가 있었고, 자유롭고 행복이 가득한 동생이었다. 큰 근심 걱정 없어 보이는, 그래서 같이 있으면 매 순간이 즐거웠다.


2018년, 우연히 유튜브에서 남자 셋의 홍콩 여행 영상을 보게 되었다. 영상은 전문가가 만들었다고 느낄 정도로 잘 만들었고, 영상에 나오는 노래와 셋이 영상에서 추는 춤이 나의 여행 욕구를 부추겼다. 그해 이런저런 이유로, 아직 해외여행을 가지 못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해외여행을 가야겠다고 결심한 후, 누구보고 가자고 할지 고민을 했다. 해외여행을 누구랑 가야 재미있을까, 답은 차차였다.

“차차, 우리도 해외여행 가자”

“그래, 형 어디로 가게?”

“아니, 보통 언제 갈 건지 며칠 동안 갈 건지 물어보는 게 순서 아니냐? 시간은 돼?”

“회사에 휴가 쓰고 가면 되는 거지 뭐 어때, 어디로 가는지가 중요한 거 아냐?”

“뭐 틀린 말은 아니다. 세부 가자, 따뜻한 데서 힐링 좀 하고 싶은데 어때?”

“콜~”

그렇게 급하게 여행 계획을 잡고 2018년 10월, 세부로 여행을 떠났다. 세부로 여행을 떠나기 전, 유튜브에서 본 영상을 차차에게 보여주며 우리도 세부에 가서 여행 영상을 멋있게 남겨 보자고 했다. 그래서 우리는 노래 하나를 선곡해 춤을 준비했다. 그때 그 노래 제목은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 Kungs vs Cookin’ on 3 Burners  - ‘This Girl’. 아마, 노래 제목은 생소하게 느껴지더라도 광고에서도 나온 만큼 들어보면, 아~ 그 노래, 하고 생각날 것이다. 세부 시내, 길거리, 리조트, 바닷가, 음식점 등 다양한 곳에서 노래에 맞춰 춤을 추는 영상을 찍었다. 춤을 그렇게 잘 추는 편도 아니었으며, 많은 사람들이 쳐다봤음에도 불구하고, 그때의 우리는 자유로웠으며 전혀 부끄럽지 않았다. 한 가지 아쉬웠던 점은 그때 찍었던 영상을 편집해서, 유튜브에 올리고자 했는데, 생각보다 편집이 쉽지 않아 3년이 지난 지금도 세상에 나오지 못하고 하드디스크에 고이 모셔져 있다는 것이다.


이렇듯, 내 기억 속의 차차는 항상 행복했으며, 자유로웠다. 그래서 궁금했다. 차차 이 녀석, 왜 행복한지. 어떻게 그렇게 행복할 수 있는지 오랜만에 만나 물어보았다.

“차차, 넌 왜 매일이 행복하냐? 비결이 뭐야? 전수 좀 해줘~”

“뜬금없이 행복은 왜 물어보는 건데?”

생각해보니 오랜만에 만나, 대뜸 행복에 대해 묻는 것이 웃기긴 했다. 그래서 최대한 자세하게 설명을 했다. 아라가 갑자기 행복하지 않다고 이야기한 것을 시작으로, 내가 왜 행복 인터뷰를 시작하게 되었는지 까지.

“아무튼 그렇게 행복 인터뷰를 시작하게 되었는데, 내가 아는 사람 중 최고로 행복해 보이고, 걱정 없는 사람이 너라고 생각이 들어서 첫 번째는 무조건 너부터 하고 싶었어.”

“형, 나 근데 진짜 거짓말 안 하고, 이런 인터뷰 엄청 하고 싶었어. 왜냐하면 나 요즘 진짜 하나도 안 행복해”

“엥? 무슨 소리야? 네가 안 행복하다고? 장난치지 말고”

“그래서 내가 이야기했잖아. 이런 인터뷰 엄청 하고 싶다고, 요즘 안 그래도 내 인생이 행복하지가 않아서 이런 생각 엄청 많이 하고 있었거든.”

“그래? 그럼 행복에 점수가 있다고 생각하고 0점~10점 중에 몇 점이야?”

“진짜 솔직히 나 0점이야 요즘”

순간 잘못 들었나 싶었다. 작년까지만 해도, 세상 걱정 없어 보였던 차차가 10점, 최소 8~9점 정도를 예상했는데, 0점이란다. 뭔가 잘못되었다 싶었다.

“에이, 아무리 그래도 네가 무슨 0점이야, 요즘 무슨 일 있어?”

“그런 건 아닌데, 내 삶이 전혀 즐겁지 않아.”

“0점은 심한 거 아니야? 나랑 군대에 있을 때랑 비교하면 지금 생활이 훨씬 행복하잖아”

“그때는 ‘전역’이라는 목표가 있고, 전역 후의 삶이 기대되어 행복했는데, 지금은 내가 기대할만한 인생의 목표가 없어. 솔직히 군대에 있을 때가 훨씬 행복했지”

순간 군대에서 내가 너무 편하게 대해줘서 군 생활이 행복하다고 느꼈나? 난 역시 착한 선임이었구나 생각하면서 혼자 뿌듯해했다. 역시 사람은 자기중심적인 사고를 갖고 있는 게 분명하다. 물론 지금 안 행복하다고 말하는 차차 앞에서 그런 이야기를 할 만큼 공감 능력이 없진 않기에, 입 밖으로 꺼내진 않았다. 의도한 대로 인터뷰가 흘러가진 않았지만, 그래도 너무 당황스러운 행복점수 0점 발언에, 궁금한 것들이 많아졌다.

“우리 작년 겨울에 캠핑 갔을 때만 해도 행복해 보였는데, 그때 그거 뭐냐, 랭글러였나 JEEP 꺼 차 그거 샀다고 신나 하더만, 차 구입한 다음에 현타 온 거야?”

“아니 그건 3년 전부터 사고 싶었던 차라, 그거 산 거에 대한 후회는 전혀 없지, 난 내가 결정해서 행한 거에 대한 후회는 안 해”

“그럼 대체 갑자기 왜 그런 거야?”

“갑자기라기보단,, 내가 좀 인생을 고난이나, 힘든 점이 없이 살아온 것 같은데 지금 살고 있는 것에 대한 불만도 있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모르겠어.”

“지금 잘 살고 있는 거 아냐? 너 최근에 이직했다더니, 그게 문제인가? 이번에 다니는 회사가 마음에 안 들어? 직급도 올라갔다며.”

“응 직급도 올라가고 연봉도 올라갔지.”

“너 전 회사 다닐 때도 매일 야근하면서 행복하게 다녔잖아. 지금 다니는 곳은 대기업에, 연봉도 올라, 퇴근도 전 회사보다는 일찍 한다며~ 좋은 거 아냐?”

“형이 이해할지, 잘 모르겠는데 예전에 다니던 회사에서는 내가 주체적으로 뭔가를 할 수 있고, 내가 컨트롤하고 무언가를 해낼 수 있었다면, 지금은 그냥 딱 기계 같은 사무직 느낌이야. 주어진 일만 하고, 보고하고, 결재하고 잡무 좀 하고, 내가 뭘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는 느낌이랄까”

“결국 회사 다니는 게 스트레스인 건가?”

“아냐, 좀 달라. 회사 다니는 것 자체가 문제는 아니야. 예를 들면 예전 회사 다닐 때는 야근을 하면서도 일을 배우는 게 있어서 즐거웠고, 내가 4~5년 뒤면 배운 것을 바탕으로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겠구나 라는 기대감과 목표가 있었어. 근데 지금은 주어진 일만 하고 살고 있고, 내가 4~5년 더 일을 하더라도 그냥 계속 이렇게 수동적인 회사원으로 살겠구나, 내가 같이 일하고 있는 상사가 미래의 내 모습이구나 생각이 들어서 힘들어. 이번에 상사 결혼기념일 날, 갑자기 회사에 일 터져서 어쩔 수 없이 집에 엄청 늦게 갔는데, 그것 때문에 와이프 분이랑 엄청 싸우시더라고. 그게 내 미래 모습이라고 생각하니까 우울해.”

“이해는 좀 된다, 시키는 일만 하니까 회사 일에 재미를 못 느끼는 거고, 일도 재미없는데, 내 미래가 내가 원치 않는 모습으로 될 것 같다는 불안감까지 드는 거네..”

“그런 것 같아, 거기다가 10~20대엔 하지 않았던, 내 인생에 대한 진로 고민을 30대가 되어서야 시작한 것 같아. 철들진 않았는데, 나이만 먹고 30대가 되니까 이제 나도 어른이 되어야 하는구나 느끼는 상황이랄까. 뭔가를 해야 하는데, 퇴근하고 집에 오면 힘들고 지쳐서 누워 있고, 무기력하고, 그 상황이 반복되는 것 같아. 그래도 지금 이 시점이라서 행복점수가 0인 거지, 또 내가 목표로 하는 무언가를 찾으면 다시 바뀔 수 있을 거라 생각해.”

“그렇게 생각하니 다행이다. 그럼 요즘은 뭐할 때 제일 행복해?”

“퇴근하고 침대에 누워서 천장 보면서 멍~ 하게 있을 때? 사실 요즘 내 생활에서 행복을 찾긴 좀 어렵고, 예전에 가장 행복했을 때는 예전에 몰타에서 공부할 때, 그때가 내 인생에서 가장 걱정 없고 행복했던 시간이었던 것 같다.”

“아, 니 팬티만 입고 나한테 영상통화할 때? 그때 말도 꺼내지 마라.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내 생각에 네가 이제 막 인생 진로에 대한 고민 걱정을 할 시기인가 보다”

“그런 듯. 지금까지 걱정 없이 살기도 했고, 그래도 꿈꾸는 미래가 있어 행복했던 것 같아. 그런데 이제 막 미래가 그려지지 않고, 그것에 대해 고민, 걱정하니까 불안한 시기인 거 같아.”

“앞으로 그럼 어떻게 해야 네가 예전처럼 행복해지겠어? 계속 회사 생활하면 비슷한 루틴이 반복되지 않을까?”

“나도 그걸 공감해, 지금 평범한 회사 생활하고 있잖아. 이 안정되지만, 즐겁지 않은 회사 다니는 삶에 안주하는 한 행복 점수로 따지면, 10점까지 올라가긴 어려울 것 같아. 회사 다니는 것 자체가 별로라는 건 아니지만, ‘목표’가 없어진 게 가장 크지. 하지만, 타개할 방법이 떠오르지 않아 당분간은 이 삶을 살고 있겠지? 그게 날 좀 더 힘들게 만드는 것 같아. 더 무서운 것은 시간이 지나면서 연봉이 이렇게 계속 오르면, 그냥 이 삶에 안주해 버릴 것 같은 마음이 든다는 거야. 아까도 말했지만, 내가 다시 열정을 갖고 도전할 수 있는 ‘목표’ 그 무언가를 찾는 게 우선일 것 같아”

회사를 다니는 사람들이 보편적으로 공감하는 말 일 것이다. 그래서 다들 그렇지 않나, 가슴속에 사직서 없는 회사원이 어디 있겠는가. 나 또한 회사원이다. 그것도 사직서를 3번이나 써본, 그래서 차차의 말에 공감한다. 다만 아쉬운 것은, 내가 생각했을 때, 정말 행복한 사람이라 생각한 차차가 여느 회사원과 같이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다는 것. 다행인 것은 단순하게 회사 생활이 싫은 것이 아니라 삶의 ‘목표’를 잃은 데서 온 순간 적인 마음인 것 같다는 것이다. 그래도 내가 아는 차차는 곧 다시 본인이 해야 할 ‘목표’를 찾고 행복하고 밝은 사람으로 돌아올 것이라 생각한다. 인터뷰 중간중간 차차가 스스로 많은 생각을 한다는 것을 느꼈기 때문이다.

“행복하기만 할 것 같던 네가, 많은 회사원들이 하고 있는 고민을 비슷하게 하고 있는 것 같아서 한편으로는 좀 아쉽긴 하다. 결국은 네가 목표로 하는 무언가를 찾는 게 우선이겠네.”

“응 맞아, 그래도 형이랑 이야기하니까 좀 뭔가 속 시원하긴 하다. 이 인터뷰 자체가 나한테는 정말 큰 도움이 된 것 같아, 고마워”

이렇게 첫 인터뷰가 마무리되었다. 첫 인터뷰라 매끄럽지 못한 감이 있었지만, 생각과는 다른 반전 대답에서 행복에 대한 교훈을 얻을 수 있었다.


교훈) 행복은 ‘목표’로 하는 무언가를 향해 가는 여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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