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빛담 Oct 18. 2024

기쁠 줄 알았다

 오늘, 내가 근래 겪고 있던 가장 큰 어려움을 주었던 일 하나를 종결 지을 수 있었다. 올해 초부터 지금까지, 나와 우리 팀은 "애매한 업무"와의 사투를 해야만 했다. 기술적으로, 고객사의 요청에 대응 함에 있어 안 되는 일은 아니었지만, 되게 하려면 정말 어마어마한 Effort가 드는 그런 일을 받아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는 상황이 계속되었었다.


 일을 함에 있어 필자는 '불확실성'을 굉장히 싫어한다. 모든 사람들이 다 불확실성을 싫어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래서, 필자는 업무를 함에 있어 불안하고 어렵지만 항상 '일의 의미'를 파악하기 위한 노력을 많이 투자하는 편이다. '힘들지만 어쨌거나 해낼 수 있는 일' 아니면 '힘들지만, 하면 좋은 일' 등, 내가 이해할 수 있고, 해야 된다고 생각을 하게 되면, 나는 같이 일하는 동료들을 한 명 한 명 찾아가 설득하는 편이다. 나 혼자 일을 할 수 없기에, 그들의 마음이 나의 눈높이와 맞아도 사람과 함께 하는 일이기에, 일의 당위성을 동료들에게 잘 전달하는 일은 매우 중요한 일이라고 항상 생각하고 있다.


 하지만, 이번에 고객으로부터 의뢰가 들어온 일을 하면 할수록, 필자와 우리 팀원들의 최종 의견으로서 '힘들지만, 해내기 어렵거나, 힘들고 해도 크게 이득을 볼 일이 없는 일'이라고 판단이 섰다.


 나는 그리하여 해당 업무요청이 온 직후부터, 그들에게 하기도 어려울뿐더러, 해도 의미가 없는 일이라는 의견을 여러 번 냈지만, '정주영 정신'으로 무장한 다수의 사람들은, 나에게 오히려 해보지도 않고, 너무 쉬운 일만 하려 한다는 핀잔 섞인 말이 번번이 돌아올 뿐이었다. 

 하지만 나는 끝까지 회의적인 생각이 들었다. 실무는 내가 하는데, 왜 실무를 하지 않는 사람들이 '정주영 정신'을 운운하는지, 오히려 이해할 수 없었다. 평소 업무함에 있어, 하나라도 더 해주려고 하여 오히려 나의 슈퍼바이저로부터 너무 잘해주지 말라는 안 좋은 피드백까지 받는 필자였기에, 나의 진정성 있는 업무에 대한 회의 의견이 받아들여지길 바랐지만, 역부족이었다.


 결국 나는 우리 팀의 리소스를 나누어서 그들이 요청한 업무에 대해 검토하고 개발해 보기 시작했다. 그렇지만, 앞서 언급했던 대로 나를 비롯한 우리 팀 모두의 의견은, '힘들지만, 해내기 어렵거나, 힘들고 해도 크게 이득을 볼 일이 없는 일'이라며, 앞으로 어떻게 이 일을 수행해야 할지에 대해 무척 난감하다는 공통된 의견을 나에게 주었고, '할 수 없는 일을 그래도 해야 하느냐' 아니면 '할 수 없는 일을 할 필요는 없다'는 두 가지 생각을 두고 커다란 고민에 빠졌다.


 수일을 고민하고 고민한끝에, 필자는 '안되는 걸 된다고 할 수는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이후, '안 되는 이유'를 나 스스로 납득할 수 있을 정도로 요약하고 정리하여 이 업무를 요청한 그들에게 메일로 회신을 했고, 이 일에 대해 업무 회의를 하여 결론을 내자는 제안을 받게 되었다.


 미팅 제안을 받은 후 나는 매우 불안한 감정을 느꼈다. '메일에, 근거가 부족하면 어떡하지?' '이런 답변을 했는데, 추가 질문이 더 들어오면 뭐라고 답하지?' '미팅 때 갑자기 꼭 해야 하는 일이라고 다시 번복되면 어떡하지?' 등등, 머릿속에서는 그간의 내가 겪어보지 못했던 이 상황에 대해 자문자답을 해 가며 시뮬레이션을 돌려보고 있었다. 미팅 참여 전부터 끝난 후 까지도 너무 긴장되어 얼굴이 벌겋게 상기되어 열감이 느껴질 정도였다.


 미팅 간 각자의 팀들끼리 다양한 이야기들이 오고 갔다. 우리는 각자의 이해관계속에서, 서로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으며, 그간 했던 이 활동들이 뜻깊었고, 배울게 참 많았다고 포장을 하며 미팅을 시작했다. 이 일을 수행해야 하는 주체인 내 입장에서는 사실 크게 도움이 된 부분은 전혀 없었고, 어려움의 연속이었던 경험뿐이었다. 그렇지만 티를 낼 수는 없었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이 일을 안 하는 것에 내 모든 초점을 맞췄다.

 결국 그들은, '우리 팀'이 못하겠다고 하였다고 책임에 대해 가볍게 강조하는 이야기를 한 뒤, 현재까지 수행한 활동의 긍정적인 요소들을 포장하면서 동시에, '미래'를 향해 나아가자고 이야기한다. 아직 정리되지 않은 작은 곁다리들의 이슈들이 미팅 간 오고 가다가, 결국 서로 얼굴 붉히지 않는 선에서 겨우 정리가 되게 되었다.


 '기쁠 줄 알았다.' 회의가 끝난 후, 들었던 한 문장의 생각이었다. 그토록 바라던 일이 일어났는데, 빌어서라도 어떻게든 안 하고 싶었는데, 근데 그렇게 기쁘지 않았다. 그동안 이 애매하고 답이 없는 일과 관련하여 사람과 상황 이 두 변수에 대해 외줄을 타며 그동안 어려움을 많이 겪었었는데, 그 상황에 너무나도 지쳤던 모양이었다. 기쁨의 감정조차도 남아있지가 않았다.


 '되는 일을, 안된다고 하는 것도 문제지만, 안되는걸, 된다고 하는 것도 문제'라는 것을 이번에 확실히 깨닫게 되었다. 무턱대고 안된다고 하는 건 상대방이 납득하기 어려운 부분들이 많을 수 있으니, 수행하다가 어려운 부분이 있고, 정말 의미가 없다고 생각되면 과감히 '안됩니다'라고 이야기할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하고, 그에 대한 부담과 편견도 함께 책임을 져 나가야 한다는 사실을 이번에 깨닫게 되었다. 


 안된다고 하면 되는데, 그 말 한마디 꺼내는 것이 정말 많은 시간과 노력이 들었을 테지. 우리 팀의 명분도 생각해야 되고, 이걸 요청한 사람들에게 거슬리면 안 되게 이야기해야 되고, 그런 비 생산적 활동에 내 소중한 감정과 노력, 시간을 허비했다는 것이, 이 일이 내가 원하는 대로 이루어졌음에도 '기쁘지 않았던' 이유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


 

 

매거진의 이전글 할 말만 한다는 것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