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해낼 수 있을 거야
(알 수 없는 사용자) 잘 지내누?
(알 수 없는 사용자) 빛담~~
(알 수 없는 사용자) ^^
(알 수 없는 사용자) 우리가 작년에 한번 수원에서 봤었구나.
(나) 아 수석님
(알 수 없는 사용자) ㅋㅋ
(나) 안 그래도 인사드리려고 했었는데 죄송합니다 ㅠㅠ
(나) 별고 없으신지요!
요새 사내 메신저가 좀 많이 이상하다. 내 PC가 이상한 것인지 잘 모르겠으나, 가끔 나에게 말을 거는 사람들의 이름이 '알 수 없는 사용자'로 뜨는 경우가 왕왕 있다.
알 수 없는 사용자, 'Y'수석님과의 인연은 11년 전으로 돌아간다. Y수석님은 새로운 서브 프로젝트의 총괄 매니저 자리로 오셨고, 이 일을 수행할 사람을 물색 중이었었다고 하신다. Y수석님은 그 당시, 일을 해야 하는 상황에 다른 팀들에서 사람을 주질 않아 많이 어려움이 있으셨다고 전해 들었다. 나는 그 당시 기존 팀 내에서 '전력 외'로 분류되어 Y수석님 팀에 합류를 하게 되었다. 그 뒤에 이야기를 들었을 때에도 나보다 다른 조금 더 개발 잘하는 내 동기를 원하셨다고도 전해 들었었다.
나는 기분이 많이 나쁘지 않았다. 오히려 기대가 되기도 했다. 나에 대한 기대치가 낮다고 생각했었기 때문에, 그런 부분들을 점차 채워나갈 수 있다고 믿었다. 나는 진심을 다해, 절박한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Y수석님과 채워나갔고, 조금씩 나에 대한 태도가 의심에서 믿음으로 바뀌어 가는 걸 느낄 수 있었다. 평소 Y수석님은 일이 많아 야근 하시는 일이 많으셨고, 나도 기꺼야 함께 남아 조금이라도 일을 도와드리기 위해 노력하곤 했다. 사무실에 둘만 남는 경우가 종종 있었는데, 그럴때마다 좋은 강연 유투브 URL(김창옥 교수님 같은분)을 주시거나, 본인의 경험이나 업무에 대한 태도등을 자주 말씀주셨던 기억이 난다.
"빛담, 너 고객들이 어떨 때 가장 좋아하는지 알아?"
"네? 음.. 개발 잘해서 요건 처리 잘할 때요?"
"음, 그럴 수도 있겠지, 그런데, 내가 느끼기엔 '고민을 함께 해주는 사람'을 좋아하는 거 같아. 이건 고객도 그렇고 동료도 그렇고 마찬가지인 거 같아'
(계속) "어느 날은, 고객들이 나한테 이 거안 된다 저거 안된다 다 몰려와서 해결해 달라는 거야. 나도 미치겠더라고, 그래서 어떻게 했는지 알아?"
"어떻게 하셨어요?"
"일단 듣고, 그 사람들이 이야기할 만한 사람을 단톡방으로 이어줬어. 그랬더니 그 사람들이 한결같이 고맙다는 거야. 나는 한 일이 없는데 말이지"
"오... 신기하네요."
"그니까, 우선 그 사람을 도와주려는 마음을 가지면, 크게 문제 될 거 없이 회사생활을 할 수가 있단다."
내가 입사하고, 2년 차가 되었을 때 Y수석님 같은 분을 만나 정말 운이 좋다고 생각한 순간이었다. 내가 하고 있는 IT서비스업의 정의를 아주 명확하게 정리해 주신 말씀이 아닐까? '고객과 동료들의 고민을 함께 해주는 사람' 필자는 이 말을 정말 가슴에 새기고 일을 해 나가려고 하고 있다. 가끔 까먹을 때도 있는데, 금방 다시 상기하게 된다. 왜냐하면 그 말을 들은 후 11년간을 계속 까먹고 기억하는 것을 반복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Y수석님은 조직 내에서 승승장구하셨지만, 찬바람이 불어닥친 IT서비스업 시장에서 비켜가실 수 없었다. 맡고 계신 프로젝트의 재계약 불발로 인해, 오도 가도 못하게 되신 것이었다. 필자 같으면 다른 프로젝트의 구성원으로서 기회를 엿볼 법도 한데, 나에게 '잘 있어라 빛담아'라고 하시며 쿨하게 회사를 떠나셨었다. 그러다 현재는 필자의 고객사에 상주하며 컨설팅 프로젝트를 맡아 멋지게 수행 중이라고 하셨다. 나는 작년에 Y수석님과 만날 수 있었다.
"변함없으시네요 수석님, 멀리 못 가셨어요"
"녀석, 나이 들더니 이제는 맘먹는구나 ㅋㅋ"
10년이 지난 그때도, 여전히 수석님은 나의 이야기를 들어주셨다. 고객사이야기, 동료들 간의 알력 이야기, 협력사와의 이야기 등등, '대나무 숲'처럼 모두 털어놓았다. 그때마다 수석님께서는
"너라면, 잘 이겨낼 거야. 나는 믿는다" 라며 디테일한 조언을 해 주시지는 않으셨다. 그런데 그 짧은 말 한마디가 그 당시도 큰 힘이 되었었다.
(알 수 없는 사용자) 응, 낫또 멀리 못 가고 여기 플젝 들어와서 그냥저냥, 생활은 별고 없는 거지?
(나) 아... 어려움이 많았어요
(알 수 없는 사용자) 아 그렇구나
(나) 나이가 드는 과정인 거 같네요
(알 수 없는 사용자) 빛담 젊었을 때 봤는데, ㅋ 벌써 세월이
(나) ㅋㅋ점점 혼자 싸워야 하는 그런 게 많아지네요
(알 수 없는 사용자) 그럴 수 있겠네. 그렇지. 고군분투하고 있구나
(나) 네, 나이 드는 과정인 거 같아요
(알 수 없는 사용자) 그래도, 이겨 내야지. 너라면 잘할 거야
오늘도, 조직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겠다며 고군분투하던 내게, Y수석님은 마치 랜덤채팅할 때 대화가 잘 통하는 '레어 이성'과 같이 짠 나타나셔서 나를 위로해 주셨다.
'너라면, 잘 이겨낼 거야' , '너라면 잘할 거야'와 같은 말을, 나는 누군가에게 해준 적이 있는가. 늘 현실적으로, 계산적으로 접근하지는 않았는지, 곰곰이 생각을 해 보게 되었다. 음, 그런말을 누군가에게 많이 하지 않고 사는 거 같다. 우리 가족들한테도, 동료들에게도, 고객들한테도 말이다.
십여 년 전, '고객과 동료들의 고민을 함께 해주는 사람'라는 좋은 회사생활의 이정표를 제시해 주셨던 Y수석님, 비록 까먹고 기억하고를 현재 진행 중이긴 하지만,
오늘부로 한마디만 더 가슴에 새기고 살아보려 한다.(당장 내일되면 까먹겠지만 말이다.)
'OOO님, 잘 이겨내실 수 있을 거예요'
'OOO님, 해내실 수 있을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