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빛담 Nov 01. 2024

오랜만이야

감기와 재택

 엊그제부터 지독한 콧물과 함께 미열이 동반된 감기를 겪고 있다. 사실 올해는 '감기 몸살'을 피해 가는 건가? 하는 기대도 살짝 가지고 있는데, 오래 일한 우리 동료들은 식사할 때 필자보고 "올해는 그냥 넘어가는가? 안 쓰러지고?" 라며 놀려대곤 한다.

 비록 달리기를 하다 통증이 발생해서 아직까지 뛰지를 못하고 있는 상황이긴 하지만(링크) 그래도 올해 7월부터 꾸준히 달리기를 해온 덕을 좀 보고 싶다는 욕심도 갖고 있는데, 결과가 어떨지 모르겠다.


 오늘, 아침에 눈을 뜨고 일어났는데 어제보다 두통이 심해졌음을 느꼈다.  머리가 어지럽기도 하고 열도 나고, 콧물도 더 심해져 이대로는 출근해서 다른 동료들에게 '감기 전파자'가 될 것이 뻔하다고 생각이 들어, 부랴부랴 원격으로 사내시스템에 접속하여 거의 1년여 만에 재택근무 신청을 슈퍼바이저에게 올렸다.


 얼마 만에 재택인가, 사실 내가 다니는 회사는 한 달에 절반에 해당되는 워킹데이까지는 재택을 허용해 주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필자보고 '왜 재택을 안 하세요?'라고 물어보면, '집에 있으면 놀게 돼요.'라고 아주 당차게 되받곤 해서일까, 한 두 번 아이스 브레이킹 삼아 물어보다가 이젠 모두가 '아, 쟤는 그냥 출근이 좋은 애야'라고 사람들은 생각하는 것 같아 보였다.


 사실, 나도 재택이 하고 싶다. 아침에 눈뜨고 일어나 씻을 필요도 없고, 일이 덜 바쁠 땐 남의 눈치 안 보고 쉬어도 되고, 점심시간도 후다닥 빨리 식사를 섭취(?) 한 뒤 동네 산책하는 걸 너무 좋아한다.

 하지만, 그동안 그러기 쉽지 않은 여러 사정들이 있었다. 내가 처리해야 될 많은 일들과 서비스업 특성상 언제든 고객으로부터 업무 요청이 오면, 즉각 대응을 해 주어야 하는 사정상 사무실에 나가 일을 하는 것이 더 좋았다.

 무엇보다, 회사에 가면 일본어 공부나 책 읽고 필사를 하는 등의 업무 외 자기 계발도 짬짬이 할 수가 있는데, 이상하게도 집에만 있으면 아무것도 하기 싫어진다. 아마 나는 적당한 긴장감 속에 생활을 해야, 뭐든 더 잘하는 스타일인 듯싶다.


  그래서일까, 앞서 이야기한 많은 사연들로, '내가 스스로 나를 멈추지 못하는 상황'들이 많이 벌어진 것 같다. '내가 쉬어야 되는데, 내가 나를 돌봐야 하는데, 내가 내려놔야 하는데'


 출근을 하여 사무실에 들어와 노트북을 켜는 순간부터 결국 나를 잠시 멈춤 해야 하는 순간들이 분명히 있음에도, 일에 몰두하다 온몸에 식은땀을 흘리며 모든 에너지를 다 쏟아붓고 퇴근길에 오르는 일들이 반복되었다.

 

'나를 소중히 여겨야, 남을 소중히 여길 텐데'

 많은 책들에서 저자들이 공통적으로 이야기하는 나를 먼저 소중히 여기라는 이야기가 와닿지만, 결국 현실로 들어오면 내가 통제할 수 없는 수많은 일들의 파도에 휩쓸려 방향을 잃고 떠내려가게 되는 것이었다.


 '오늘은 쉬자' 원격 PC모니터를 켜고, 재택 근태를 재가받은 후, 집 앞에 커피숖에 와이프와 다녀왔다. 꽤 먼 거리였다. 걸어서 15분, 아니나 다를까, 고객이 메신저로 나를 급하게 찾았지만, 내가 이미 아는 지식 선의 문의라 휴대폰으로 답변을 바로 드릴 수 있었다.

집앞에 어제 산 카메라를 들고 나와 이것저것 찍어도 보았다


'괜찮다. 쉬어도 된다.' 또 혼잣말로 되뇌며 로스팅한 지 얼마 안 되어 보이는 싱싱한 원두로 내린 커피 한잔을 들고 집으로 돌아와, 아이들 교육 및 육아와 홀로 남은 장인어른에 관한 이야기도 나눌 수 있었다. 신기하게 머리는 많이 아팠지만, 심적 여유가 있어 그런지 오늘은 와이프의 이야기를 더 잘 들을 수 있었던 거 같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 오후가 되자, 다시 머리가 아프고 몸살기운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열이 올라와 컨디션이 안 좋아 쉬면서 업무 메일과 메신저를 간간히 확인했다. 다행히 고객의 업무 요청은 별로 없었다. 간간히 메신저로 울리는 동료들의 잡담만이 내 폰의 노티바에 올리올뿐이었다.


'오늘은 쉴 거야.'라고 되뇌며 휴식과 감기 몸살 증상으로부터 회복에만 집중했다.

나는 이 정도 되뇌어야 온전히 휴식을 할 수 있나 보다. 생각이 들었다.


 지금 생각해 보니, 이번 '감기'는 나에게 선물과 같은 존재일지도 모르겠다.

스스로 멈추지 못하던 나 자신에게, 아주 '약한 병원체'를 통해 내 몸에 주입시켜 나를 잠시 멈추게 만들었다.


 필자가 요새 자주 보는 지식 유튜브가 있는데, 그곳에서 염증에 대해 소개하는 전문의가 나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감기에 걸리면 열이 나지요? 그게 왜 나는지 아세요?"

"열을 내서 몸에 침투한 세균이나 바이러스를 죽이려고 하는 거 아닌가요?"

"그것보다도, 내 몸에게 신호를 보내는 거래요. '너의 몸이 안 좋으니, 우선 쉬어야 한다고'"


 그랬나 보다. 내 마음이 지쳤든, 몸이 지쳤든, 지친 건 지친 거다. 세균이나 바이러스 같은 외부의 적이 들어와서 열이 날 수도 있지만, 내 안의 나를 공격하며 끊임없이 몰아붙이던 정체 모를 나의 자아의 공격으로, 항체들이 반응하여 열을 내게 만들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였다.


 늘 업무 시간에도 조금씩 '틈'을 스스로 주려 노력하고 있긴 하다. 중간중간 회사 주변에 홀로 산책도 하면서 나에게 스스로의 기분을 물어보기도 하고, 할 일도 없지만 휴게실에 가서 기지개도 켜고, 목도 돌려보면서 긴장도 완화시키려고 한다. 그럼에도 업무 간 큰 파도가 끊임없이 몰려올 때 가장 앞에 서서 우리 팀을 지휘해야 하는 입장에서 항상 긴장감을 달고 살아 그런가 보다 싶다.


언젠가 이 또한 깨닫는 바가 올 테지. 건강이 중요하다는 사실 말이다. 알면서도 잘 행하지 못하는 건, 나에게 있어 일에 대한 긴장감은 마치 '술을 안 먹는 것이 건강에 좋아'와 같은 누구나 다 알지만 잘 행하지 못하는 그런 말과 묘하게 닮아있다.

묘하게 닮은 두 자전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