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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빛담 Nov 03. 2024

그때도 그랬겠지?

연주회

 둘째가 몇 달 전부터 집에 있는 피아노 앞에 자주 앉아 "캐논 변주곡"을 연습하는 일을 자주 보곤 했다. 

평소 그런 일에 무심하기도 하고, 혹시나 아이에게 부담을 줄까 봐 연습하는 이유에 대해 캐묻진 않았지만, 아이가 그렇게 연습한 이유는 피아노 학원에서 진행한 '연주회'를 위함이었다는 것을 어제 알게 되었다.


"여보, 이번주 금요일 저녁에 시간 어떻게 되어요?"

"어, 왜?"

"둘째가 피아노 연주회를 한데요."

"아, 그렇구나. 알았어 별일 없으면 가야겠네."

"그래요"


 때마침 어제는 재택근무를 하여 저녁시간에 여유도 제법 있었고, 아이의 피아노 학원으로 아내와 함께 시간 맞춰 출발했다. 새삼 느낀 거였지만, 아이가 피아노 학원을 다니는 건 알고 있었지만, '어느' 피아노 학원에 다니는지는 처음 가보는 것이었다..


 아파트 상가 3층에 위치한 아이의 피아노 학원을 처음으로 와보았다. 그 안에는 연주 회 전 학부모들을 위하 등받이가 없는 플라스틱 의자들을 다닥다닥 배열해 두었고, 연주회에 앞서 미리 도착한 우리는 그나마 다행히 앞쪽에 자리를 잡을 수 있었다. 

'정기 연주회'라고 그랜드 피아노 위에 붙어 있는 카드 도화지가 눈에 띄었고, 새삼 어릴 적 나도 다녔던 적이 있는 피아노 학원의 구조와 비교를 하게 되었다. 어릴 적 내가 다니던 학원보다 오히려 조금 작아 보이기도 하고, 아 근데 확실한 건 하나 있었다. 원장선생님이 연주회 전 개회를 알리는 인사를 하러 무대 앞에 서셨는데,  내가 다니던 피아노 원장선생님과 패션이며 주름살이며 분위기가 너무 닮아있어 놀랐다. 순간 마음속으로 '선생님!' 하면서, 어릴 적 피아노 원장선생님과 재회한 느낌을 받을 수가 있었다. 


 의자에 앉아 아이들의 공연을 기다리고 있는 와중에, 첫 공연을 할 친구들과 그다음 공연차례인 아이, 두 명이 대기 의자에 앉아있었다. 아이들은 피아노 앞에 서서 인사를 하고 자리에 앉아 그랜드 피아노 앞에서 연주를 이어 나갔다. 나는 힐끔 와이프가 들고 있는 순서표를 보며, 우리 아이 순서를 기다리고 있었다. 어린아이들의 연주다 보니 평균 연주시간은 2분을 넘기지 않고 빠르게 연주 진행이 이뤄졌다. 잠시 후, 둘째의 공연. 둘째는 대기실에서 나와 대기 의자에 잠시 앉아 있었는데, 객석에 나와 눈이 마주치고는 반가웠는지 손을 크게 흔들어 보였다. 하지만 이내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다. 


 시간을 잠시 과거로 돌려, 내가 어렸을 적, 피아노 연주회 연습과정이 생각이 났다.

나는 나름 피아노 치는 걸 좋아했던 아이였다. 음악 듣는 걸 좋아했었다. 그래서 어머님이 그 당시 멋모르고 보냈던 피아노 학원에서도 나름 열심히 따라가려 노력했던 기억이 있다.


 하지만 부모님 앞에서 '연주회'를 개최한다는 원장선생님의 말씀에, 너무나도 큰 부담으로 다가왔던 기억이 난다. 그 당시는 초등학교 4학년 때였었는데, 원장선생님은 나름 2년 정도 피아노 학원에서 계속 배워왔다고 판단하셨던지 내 기준에서는 상당히 난해한 곡을 선정하여 연습을 시키셨던 기억이 난다.

 지금이야 그러지 않거나, 아니면 더 조심히 아이들을 다루시겠지만, 그때는 피아노 학원선생님들도 음정과 박자가 틀리면 어김없이, '다시', '다시 해'와 같이 낮은 목소리로 압박감을 많이 주시던 장면들이 생각난다. 그리곤 '야간 자율 파이니 학습'까지... 지금생각해 보니 스파르타 피아노 학원이었나 보다.


 그 당시는 지금처럼 디지털 피아노가 보급된 것도 아니다 보니, 집집마다 피아노를 둘 수는 없는 형편이었고, 우리 집도 그러했다. 사실 조금 더 마음 편하게 피아노 연습을 해보고 싶고, 쳐보고 싶은 곡도 많았지만, 어쩔 순 없다고 생각했었다. 그저 벌써 현실에 순응하며 어린 나이에 나는 '세상이 그리 공평하지 않고, 만만하지 않다'는 것만을 배우며 자라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시간은 그때에도 빠르게 흘렀다. 피아노 연주회 날짜가 다가왔다. 그 당시 우리 부모님께서는 작은 치킨집을 하시며 가게를 봐야 하시기에 참석하실 수가 없었다. 나는 속으로 차라리 잘되었다고 생각했다. 연주를 잘할 자신도 없거니와, 긴장한 내 모습을 부모님에게 별로 보여드리고 싶지도 않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실은 어머니는 와 주셨으면 하는 생각도 마음속으로는 가지고 있었지만, 애써 티를 내고 싶지는 않았다.


"빛담, 부모님은 참석을 안 하시니?"

"네, 그렇게 되었어요"

"그래, 너만 그런 건 아니니까 너무 서운해하지 말고"

 그리고, 그 당시 실제로 나만 그런 사연을 가지고 있는 아이도 아니었다. 먹고살기 지금보다 어려웠던 그 시절, 부모님들은 지금도 그렇지만 그때에도 처절하게 일만 하고 계셨다.


 내 차례가 되어, 피아노 앞 무대에서 청중들에게 인사를 한 뒤, 정신없이 피아노 연주를 이어 나갔다. 그렇게 짧았던 내 연주가 끝이 났고, 나는 청중들께 다시 한번 인사를 한 뒤, 집에 돌아와 어머니가 차려놓고 가신 저녁을 먹을 수가 있었다.


 드디어, 우리 둘째 차례가 되었다. 녀석, 긴장했나 보다. 떨릴만하지. 녀석은 피아노 앞 무대에 나와 청중 앞에 인사를 하고 피아노 앞에 앉아 캐논 변주곡 연주를 시작했다.

우리딸, 화이팅이당

"디~디 디 디~ 디디 디~ 디디디 디디디디 디~"

 엽기적인 그녀라는 영화를 아시는 독자분 계신가? 우리나라에서는 당시 이 곡이 널리 유행했던 적이 있고, 지금도 대중적으로 알려진 음악이다. 우리 딸이 쳐서 그런가 더 멜로디가 감미롭게 느껴지던 순간이었다.


 아이는 클라이맥스 부분에서 조금 급하게 박자를 맞추긴 하였으나, 전반적으로 큰 실수 없이 연주를 잘 마무리할 수 있었다. 이윽고 청중들과 나는 박수로 화답했고, 나는 아이에게 손가락으로 '따봉'을 만들어 눈웃음을 하며 아이에게 잘했다는 격려를 하였다. 아이는 피아노 앞 무대에 나와 청중들께 인사를 하고 대기실로 돌아갔다.


"아빠, 나 잘했어?"

"응, 잘 치더라. 연습 많이 했겠는데 우리 딸?"

"헤, 아빠, 학원에서 부라보콘도 줬어. 한입 줄까?"

"응"

 연주회가 끝나고 돌아오는 길, 나는 아이가 한입 허락해 준 부라보콘을 함께 베어 먹었다. 


 다행히 우리 아이의 연주회는 잘 마무리가 되었다. 


 부모로서 더 많이 해주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나, 내가 부모가 되어보니, 내 몸하나 건사하기 어렵다. 세상은 내가 피아노 연주회를 한 이후 약 삼십 년이나 흘렀는데도, 내가 느끼기엔 전혀 여유로워지지 않았다. 

 그래도, 어떻게든 여유를 만들어 내가 연주회 자리에 같이 있어준 것만으로도, 아이는 크게 기뻐하겠지? 아닌가, 그냥 당연하게 생각하려나? 


 그렇게, 나는 오늘도 부모가 되어가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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