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보드가 먼저 말해버리는 마음의 자막
<키보드 소리>
키보드는 각자 저마다의 소리를, 사무실에서 뽐내곤 한다. 유심히 듣지 않으면 그저 화이트 노이즈지만, 조금 더 구체적으로 귀를 기울이면 이 사람이 지금 어떤 행동을 하고 있는지 제법 또렷해진다.
어쩌면 표정보다 먼저, 손끝이 마음을 들켜버리는 걸지도 모르겠다.
<1번, ㅋㅋㅋㅋㅋㅋ>
아마 맞을 거다. 소리의 간격과 멜로디가 매우 일정하고, 타건을 하는 사람의 입꼬리는 올라가 있다. 다른 동료와 즐거운 채팅 시간일 테지.
<2번, 음, 그건 좀…>
타자의 간격이 지나치게 불규칙하다. 치다가 멈추고, 다시 치다가 또 멈춘다. 아마도 예상하지 못한 질문을 강요받아 당황하고 있는 것일까.
머릿속에서 문장들이 서로 밀치며 순서를 바꾸는 소리가, 이렇게 키보드로 번역되는지도 모르겠다.
<3번, if else if()>
이 소리는 확신에 찬 화이트 노이즈다. 키보드를 치는 사람의 손이 유난히 경쾌하다.
일은 싫다고 말하면서도, 코딩이 잘 될 때만큼은 일이 게임보다 재밌어지는 순간이 있다.
특히 Space 키와 Shift 키는 다른 글자보다 몸집이 커서인지, 소리의 온도도 조금 다르다. 탁, 탁 리듬이 살아있달까? 남들이 쉬이 느낄정도로 말이다.
나도 오늘, 내 키보드로 위의 세 가지 경우를 모두 겪었다. 웃느라 내뱉은 ㅋㅋㅋㅋㅋㅋ도 있었고, “음, 그건 좀…” 하며 멈칫한 순간도 있었고, if else if()처럼 확신에 찬 타건으로 하루를 밀어붙인 시간도 있었다.
그리고 문득 생각한다. 이 사무실에서 우리가 나누는 대화의 대부분은, 입보다 키보드로 먼저 시작된다는 걸 말이다.
오늘 내 손끝은, 어떤 소리였을까.
아마도 셋이 섞인 소리였겠지. 동료들과 웃고, 스스로 무너지기 싫어서 잠시 멈추고, 그래도 내일을 위해 다시 경쾌히 타자를 치는 그런 소리들을 내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