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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배경진 Mar 28. 2023

연극 <빛나는 버러지>

이건 모두 우리 아이를 위해서야.

연극 <빛나는 버러지>


부부인 질과 올리는 곧 태어날 아기를 기다리고 있다. 부부의 유일한 고민은 바로 위험한 동네의 오래된 아파트에 산다는 것. 어느 날 정부는 도시재생사업이라는 명목으로 미스디라는 인물을 통해 부부에게 커다란 집을 제공해준다.


전기조차 들어오지 않는 집에서의 첫날 밤. 부부는 몰래 침입한 노숙자를 실수로 살해하게 되는데, 그때 환한 빛이 비치고 노숙자가 쓰러진 주방은 카달로그에서 본 멋진 주방으로 바뀐다. 다음날 부부는 몰래 침입한, 어쩌면 침입하도록 의도된 노숙자를 또 다시 살해하면서 이 행위를 ‘레노베이션’이라고 부르기로 한다.


“우린 더 많은 희생자가 필요해. 사람을 잘 골라야겠어. 나쁜 사람들, 왜 사회에 도움 안 되는 그런 사람들 있잖아.”


이 작품은 소위 저소득층에 속하던 이들이 우연한 기회로 부를 얻게 되면서 자신의 계급을 올려가는 과정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어느 순간 자신들보다 가지지 못한 이들을 버러지, 부랑자, 사회에 도움이 안 되는 해로운 존재로 규정하고 자신들이 마치 그들 위에 군림하는 것처럼 느끼는 인간의 본성이 정말 끔찍할 정도로 소름 돋았다. 특히, 약자를 괴롭히는 과정에서 보여주는 자기 합리화는 놀라울 정도로 내가 현실에서 보았던 모습들이었다.


“이건 모두 우리 아이를 위해서야.”


레노베이션을 부추기는 질과 달리 직접 살인을 해야 하는 올리는 두려움에 망설인다. 질은 그냥 일어나는 일 그대로를 받아들이라고 이야기하며 그를 다그친다. 부를 축적해나가는 과정에서의 비도덕성은 배제한 채 그저 ‘계속해서 부를 누릴 것’인가 ‘살인자가 되어 감옥에 갈 것’인가의 선택지를 강요하는 질의 모습에서 맥베스를 극단으로 몰아가는 레이디 맥베스의 모습이 떠올랐다.


“욕실이 먼저 필요할까요? 차고가 먼저 필요할까요?”


이 공연의 투표는 가볍고 즐거운 분위기에 속에서 자연스레 주어진 선택지를 고르도록 세팅되어 있다. 선택을 하는 순간 공연을 보러 온 관객은 모두 다 공범이 된다. 사실 우리가 해야 했던 건 투표가 아니라 당장 그 짓을 그만두라고 외치며 그들을 말리는 것은 아니었을까.


“햇빛이 너무 강한데 아이가 괜찮을까요?”

“괜찮아요. 우리 아이는 그늘에 있어요.”


빛은 대게 희망을 상징하지만, 이 극에서 빛은 더럽고 어두운 악행을 상징한다. 파티에 초대받은 사람들은 하나같이 이 집을 둘러싼 빛이 너무 강하다고 말한다. 햇빛에 아이가 노출될까 봐 이 부부는 아이를 그늘에 두고 모자를 씌운다. 결국, 부모의 악행은 자식에게 영향을 미친다는 지점을 비유적으로 보여주고 있으며, 그러지 않기를 바라는 부모의 마음이 그 자체로도 너무나 오만하고 역겨웠다.


"더 큰 집으로 가는거야. 우리에겐 레노베이션을 도와줄 아들이 둘이나 있잖아."


연극 <빛나는 버러지>는 굉장히 자극적이고 불편한 소재를 다루지만 그 방식이 무겁지 않은 작품이다. 관객들은 공연 내내 시종일관 웃으며 배우들과 소통한다.


물론 극장 밖을 나설 때 사람마다 가지고 가는 메시지의 무게는 다를 것이다. 나는 너무 무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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