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이 조용해진 틈을 타
조용함은 이내 형체를 가지고
뭉게뭉게 피어올라
내가 웅크리고 있는 곳에 스멀스멀 피어오르고
잔뜩 웅크린 채
이리저리 둘러보니 내 몸에는 흔적이 얼마나 많은지
내가 원했던 위치에 원했던 그림은
온대 간대 보이지 않고
그때 또 들려오는 벨소리.
피어오르던 스멀스멀 차오르던 검은색 조용함을
힘차게 디뎌보려 하지만
힘찬 발걸음과 함께 퓨슉하고 사라져 버리고 마는.
들숨과 날숨에 내게로 와
보이지도 않는 나의 깊숙한 곳에 자리 잡아
조용함을 빌미로 고개를 빼꼼 내밀어
나를 서서히 가라앉힐 때쯤
적막을 깨기로 작정한 듯
힘차게 타오르는 오늘의 햇살,
지금까지 내가 받아온 햇살,
지금까지 내가 받아온 사랑.
지금까지의 나를 바라봐준 나.
잠식되어 가는 나를
있는 그대로 바라봐준 나.
수없이 반복된 우리의 조우.
불신의 끝에 만들어낸 오늘의 의미.
켜켜이 쌓인 믿음.
끝끝내 믿게 된 시간의 흐름.
늘 너는 웃으며 나를 바라봐줄 것이라는 믿음.
모든 것이 남긴 나라는 흔적.
틀림없이 나임을 오롯이 느끼는 감각.
희미하지만 어렴풋이 느껴지는
또 다른 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