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적이 이끄는 삶

by 조란마



폰페라다에서 버스를 타고, 아스또르가로 다시 왔다. 한마디로 역주행이다. 아스또르가에서 부터 47km를 걷고 여러 마을과 이라고 산까지 넘어 폰페라다에 도착했지만, 왠지 이대로 계속 콤포스텔라 성당까지 가버리면 두고두고 후회할 것 만 같았다. 더 커다란 이유는 지금 나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장소인 것 같은 확신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제 폰페라다에 도착하자마자 라바날 델 까미노에 있는 수도원에 메일을 보냈다. 두드리면 열린다. 환영한다는 답장에 바로 버스표를 구입했다.



오랜만에 타는 버스에서 혹여나 멀미를 하지는 않을까? 괜한 걱정에 웃음이 났다. 바퀴가 달린 차를 타니 참으로 빨리 편하게 도착한다는 걸 새삼 느꼈다. 이 길은 작은 것도 놓치지 않게 하는 힘이 있다. 깨알같이 알아차리게 하고, 세심하게 관찰하며 느끼게 한다. 이 또한 감사하고 소중하다.



20.2km. 순례자는 걷는다. 라바날 델 까미노까지 다시 걷는다. 4일 만에 같은 길을 걷는데도 또 다르다. 빛도 바람도 하늘도 구름도 전부 그 전과 달랐다. 버스 시간에 맞추어 아스또르가에 도착하니 무더운 한 낮을 지나 오후 3시까지 6시간을 걸어야 했지만, 느긋한 마음으로 걷자며 여유를 부렸다.



2001년 2월 2일 주님 봉헌 축일에, 독일 뮌헨 근처에 있는 상트 오틸리엔 아빠스좌 수도원은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 위에 성 베네딕도회 산 살바도르 델 몬떼이라고 수도원을 라바날 델 까미노라는 마을에 세웠다.

사실, 현존, “있음”의 의미는 수도승 생활의 근본적인 특징인데, 이들 선교 수도승들의 사명은 산티아고 순례길 위에 실제로 머무는 것이었다. 그리고 모든 이들 가운데 순례자로 계신 예수님을 현존하게 하는 것을 돕고 실천하게 하는데에 사명을 가지고 있다.


이라고 산 중턱 1150m에 위치한 수도원에서는 수도 공동체의 하루 일과에 따라 지내는 곳이다. 잠심의 분위기와 고요한 가운데 하느님과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기회를 제공받고, 순례길을 잠시 멈추고 침묵과 기도와 반추의 며칠을 보낼 수 있도록 세심하게 배려해 준다.


끊임없이 새로운 곳을 향해 걷기만 하던 내게 진정한 오아시스가 되어 줄 곳임이 분명했기에 라바날 델 까미노로 돌아오게 되었던 것 같다. 이상하게도 몸은 며칠 아팠고, 많은 거리를 걷지 못했으며, 가슴에 열정은 식어가기만 했다. 더 이상 새로움이 반짝임으로 다가오지 않음에 나는 지쳐가고 있음이 역력했다.



그렇게 라바날 델 까미노에 도착하니, 갑자기 비가 내렸다. 수도원 앞의 성모승천 성당 안으로 들어가 짐을 내려놓고, 숨을 돌린다. 성당 안은 따뜻했고, 평온했다. 몸도 마음도 지쳐있는 나를 포근히 안아주는 것 같았다. 눈을 감고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 내 쉬었다 몇 번을 반복하고 나니 성당 안은 진공상태로 변한다. 그리고 가는 길을 잠시 멈추고 영혼과 육체와 정신을 쉴 수 있는 곳으로 이끄신 하느님께 감사를 드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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