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길은 순례자의 길임을 에둘러 암시하지 않는다
‘프랑스길의 첫 번째 구간은 다른 어떤 날과도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힘들고 장대하다. 해발 172미터의 생장을 출발해, 레포에데르 고개 Collado de Lepoeder의 1,430미터 까지 오른다.’
생장 Saint-Jean-Pied-de-Port에서 론세스바예스 Roncesvalles까지 가는 프랑스 길의 첫 구간은 피레네 산맥을 정면으로 넘어가는 가장 전통적이고 험준한 길이라 했던가? 중세부터 유럽의 북쪽 특히, 프랑스에서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대성당까지 가는 순례자들은 야고보의 문 port de saint-jacque을 통해 생장으로 들어와, 험준한 시세 Cize 고개를 넘어 피레네 산맥을 통과했다. 스페인의 서쪽 끝 대성당까지 약 800Km를 횡단하는 이 길의 이름이 프랑스 길이 된 유래도 여기에 기인한다. 그 프랑스 길 최고의 풍광을 자랑한다는, 풍문으로만 들었던 일명 나폴레옹 루트가 첫 번째 발걸음이다.
생장의 첫날밤은 여러 생각들이 섞여 잠과 꿈의 사이를 오갔다. 밤새 설렘과 긴장이 함께 했고, 기대감과 도전정신이 뒤섞였다. 밖은 아직 어스름한 새벽이다. 오늘의 거리 24.2Km라는 수치와 감당해 낼 수 있는 체력의 한계점을 나는 아직 알지 못한다. 길 속에서 어떤 나를 만날 지에 대한 계획도 전무하다. 한국을 떠나며 다짐한 한 가지는 분명하다. 흘러가는 대로 마음과 몸을 길 위에 맡기자.
어제 만난 고양이는 알베르게를 나서는 나를 기다렸다는 듯이 안전거리를 유지하며, 돌다리까지 배웅해 준다. 생장의 요새 스페인 문 Porte d’espagne을 빠져나오니, 대문을 나와 들판으로 나온 작고 여린 순례자가 있다. 아직 안개가 내려앉은 시골길, 신나게 나를 반겨주는 새들의 지저귐에 저절로 미소가 지어진다. 그 어떤 음악보다 켱쾌한 그들의 노래만으로도 피레네 산맥을 넘을 에너지가 채워지는 듯하다. 촉촉한 아침 공기 속에 농가의 구수한 거름냄새가 섞여 입체적인 풍경을 더해준다. 이제 질세라 저 멀리 산등성이를 벗 삼아 해가 떠오르고 있다. 공감각적으로 완벽해졌다.
앞서 걸어가며 아까부터 티격태격 대화를 이어가던 부자는 지나가는 나를 보며 환한 웃음을 웃는다. 그리고는 “부엔 까미노 Buen Camino”라며 인사를 건넨다. 순간 온몸에 전율이 일었다. 까미노 데 산티아고 Camino de Santiago (산티아고 순례길)를 완성하는 한마디. 그 찰나의 감동은 이 길에서 마주한 잊히지 않을 최고의 순간일지도 모른다. 그 덕에 울컥해지고 말랑해진 나는 자연스럽게 이 길 위의 풍경이 되어버렸다.
본격적인 시세 Cize 고개의 오르막이 시작되었다. 눈앞에 펼쳐진 언덕길을 향해 묵묵히 걷는 동안 숨소리는 점점 거칠어졌다. 산길의 경사만큼이나 숨은 차올랐고, 씩씩거리는 콧소리는 더는 버티지 못해 입을 벌리지 않고는 숨을 쉴 수 없었다. 이미 얼굴은 땀으로 흥건했고, 바짝 마른 입안에서는 침샘의 움직임마저 멈춰버린 듯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올라온 길을 되돌아보지 않는다는 것은 도저히 가능하지 않았다.
켜켜이 이어진 산맥 위로 안개가 얇게 걸려 있었고, 그 사이로 떠오른 햇빛이 산등성이를 하나하나 드러내고 있었다. 고개를 넘으면 또 고개, 그 너머에도 또 다른 능선이 차곡차곡 서 있었다. 시선이 머무는 모든 곳이 절경이었다. 거친 숨소리 사이로 탄성이 터져 나왔고, 그 순간 발걸음은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가지 못한 채 멈춰 섰다. 본능적으로 아름다움을 기억하기 위해 멈춘 순간이었다.
다리는 점점 무거워졌지만 얼굴에서는 웃음을 감출 수 없었다. 이곳은 가장 아름답고, 동시에 가장 힘든 구간이었다. 그러나 이 풍경 앞에서 할 수 있는 일은 오직 하나, 감탄하는 것뿐이었다. 걷고 있다는 사실조차 잠시 잊은 채, 나는 이 순간을 오래 마음에 담아 두었다.
길 옆 초원에서는 양과 소들이 이른 아침부터 부지런히 풀을 뜯고 있었다. '이 장대한 풍광 한가운데서, 이들은 진정 여기서! 이렇게 하루를 보낸다는 말인가?' 질투 어린 나의 마음에 괜히 웃음이 났다. 하지만 진심으로 그들이 부러웠다. 이보다 더 복 받은 동물들이 또 있을까 싶었다.
고대부터 이 산길은 목동들이 양 떼를 이끌고 계절을 따라 오르내리던 자연스러운 이동 경로였다. 시간이 흘러 중세에 이르러서는 상인들과 순례자들이 이 길을 이용하며, 까미노 데 산티아고의 중요한 통로로 자리 잡았다. 1808년, 나폴레옹이 군대를 이끌고 스페인을 침공할 때 이 길을 넘었다는 기록이 남아 있으면서 사람들은 이 산길을 ‘나폴레옹 길'이라 부르게 되었다.
19세기 이후 까미노가 다시 주목받으면서, 이곳은 중세 순례자의 길로 공식적으로 인정되었고 그 흐름을 바탕으로 현대의 순례길이 재정비되었다. 오늘날 이 산길은 산티아고 순례길의 하나인 프랑스 길에서 가장 아름다운 풍경을 품은 동시에, 가장 혹독한 난이도를 자랑하는 구간으로 알려져 있다. 별 다섯 개를 받은 ‘전설의 길’이라는 이름은 과장이 아니었다.
직접 걸어보니 알 것 같다. 이 압도적인 아름다움은 결코 쉽게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수많은 발걸음과 시간, 그리고 고단함이 겹겹이 쌓여서야 비로소 완성된 풍경 위를, 나는 지금 조심스럽게 지나고 있다.
감사한 마음으로 맞이한 첫날, 아직 이 길의 강도를 가늠할 수는 없었지만 이 시작이 분명 최상급이라는 것만은 알 수 있었다. 순례자의 마음을 단번에 사로잡기에 충분했고, 굳어 있던 육체를 깨우기에도 모자람이 없었다. 시작부터 이렇게 강렬한 길은 피로와 정신력의 한계를 첫날부터 분명히 알려주었다. 이 길은 순례자의 길임을 에둘러 암시하지 않는다. 그저 대놓고, 단호하게 드러낼 뿐이다.
나무 하나 없는 산등성이가 끝없이 이어졌다. 이곳에 나무가 없는 이유는 분명했다. 수목한계선 위, 나무가 자랄 수 있는 최대 고도보다 더 높은 곳이기 때문이다. 기온은 낮고 바람은 강하며, 토양은 얕아 뿌리를 깊이 내릴 수 없다. 그래서 숲 대신 초원이 있고, 초원 위로는 바위와 설원이 번갈아 나타난다. 높고, 춥고, 바람이 센 땅. 그 조건들이 이 풍경을 만들었다.
언덕을 넘으면 또 다른 언덕, 그 끝에는 고요가 있다. 끝없이 이어지는 능선들은 날것 그대로의 얼굴로 펼쳐져 있었고, 그 앞에서 나는 망망대해에 선 듯한 기분이 들었다. 아무것도 가로막지 않는 풍경과 나만이 이 순간을 만들고 있었다. 때로는 양과 나란히 고개를 넘었다. 문득 오래전 이 길을 걸었을 목동들이 떠올랐다. 그들 역시 이렇게 양 떼를 이끌고 고개를 넘었을 것이다. 같은 풍경, 같은 바람, 다른 시간. 그 위를 지금의 내가 걷고 있었다.
그늘 하나 없는 능선 위에서는 쨍쨍한 햇볕 아래 어디로도 숨을 수 없었고, 도망칠 곳도 없었다. 이 길은 모든 것을 드러낸다. 숨길 수 없이 낱낱이 드러나지만, 그만큼 피레네 역시 자신을 아낌없이 보여준다. 나 역시 이곳에서는 자연 앞에 그대로 노출된 존재가 된다. 피레네 언덕 위를 스쳐 가는 바람과 능선, 그 위에 내려앉은 완벽한 날씨 속에서. 순례자가 없다면, 사람이 없다면, 이 능선들이 얼마나 장대한지 알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말과 양을 바라보며 능선을 걷는 이 풍경은, 내가 상상하던 가장 전형적인 피레네의 모습이었다. 압도적이고, 거대하며, 동시에 아무 말도 하지 않는 풍경.
장대한 풍경 앞에서 나는 아주 작았다. 바람과 산이 주인인 이곳에서, 인간은 잠시 지나가는 존재에 불과했다. 그래서인지 이 작아짐이 오히려 마음을 편안하게 만들었다.
프랑스와 스페인의 경계에 이르자 표지판의 언어가 달라졌다. 그제야 국경을 넘고 있다는 사실이 실감 났다.
나무가 보이기 시작하더니 그늘도 생겼다. 그 아래 잠시 앉아 숨을 고르며 쉬었다. 신발을 벗는 순간 저절로 눈이 감겼다. 말없이 걷기만 해도 충분히 많은 것을 넘고 있었던 하루였다.
출발한 지 7시간 반 만에 해발 1,430미터의 레포에데르 고개에 도착했다. 그리고는 생장의 순례자센터에서 몇 번이나 가지 말라고 당부했던 급경사 길을, 나는 결국 선택하고 말았다. 이정표 G12만 놓치지 말고 따라가자고 마음속으로 되뇌었지만, 의심은 없었다. 당연히 론세스바예스로 이어지는 길이라고 믿었다. 지금도 신기한 건, 분명히 G12 이정표를 보고 이 길로 들어섰다는 사실이다.
거의 80도에 가까운 급경사의 내리막길을 생각보다 빠른 속도로 내려가기 시작했다. 배낭의 무게에 몸의 중심은 자연스레 앞으로 쏠렸고, 몸이 먼저 반응하자 다리는 의외로 잘 움직였다. 돌이 많아 걷기 위험했지만 너도밤나무 숲은 그늘을 주었고, 경사는 심했지만 운치 있는 숲길을 선사해 주었다.
하늘과 맞닿아 있던 첫날, 망망대해 같은 능선 위에서 날것의 자연과 마주했고, 오르고 걷기를 끝없이 반복했다. 그렇게 내려선 곳은 해발 945미터의 론세스바예스였다. 첫날이 이렇게 강렬하게 지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