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 포기하면 되는 관계

by 따뜻한 말 한마디

세상에는 참 웃긴 사람들이 있다.
처음 만났을 때 나쁘지 않으니, “지내다 보면 마음이 커지겠지” 하며 가볍게 관계를 시작하는 사람들.

나는 그런 사람의 상대였다. 인간관계는 신중해야 한다는 것이 내 지론인데,

어떻게 누군가는 그토록 쉽게 사람의 마음을 다루는 걸까.


2015년 가을, 나는 동갑내기 X를 만났다.
첫 만남부터 말이 잘 통했고, 관심사도 비슷해 대화가 끝나지 않았다.
그렇게 한 달 남짓 만나다가 우리는 연인이 되었다.


처음엔 단지 감정 표현이 서툰 사람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2년 동안 이어진 만남 속에서도 애정 표현은 없었다.
우리는 분명 연인이었고, 밥을 먹고 여행도 다녔지만,
그 안에서 나는 늘 ‘내가 혼자 연애를 하고 있나’ 하는 기분에 사로잡혔다.


X는 타 도시에 살았다.
주말마다 내가 그 도시에 가서 만나고, 돌아올 때도 홀로 고속도로를 달렸다.
나는 늘 피곤에 절어 돌아왔지만, X는 그 시간조차 외면했다.
내가 집에 도착했을 때, 그녀는 이미 잠들어 있었고
“잘 들어갔어?”라는 톡은 다음날에야 형식적으로 왔다.


관계가 이어지며 자연스레 결혼 이야기도 꺼냈다.
나는 내 성장 배경, 집안 형편까지 숨김없이 말했다.
거짓이 있으면 안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때 들은 한 마디를, 지금도 잊을 수 없다.
“우리 엄마가 너랑은 연애만 하래.”

그건 연인으로서 할 수 있는 가장 무책임한 말이었다.
자신의 감정을 지키기는커녕, 부모의 말 뒤에 숨어 나를 밀어냈다.
나를 사랑했다면 부모의 말보다 내 손을 잡아야 했지만,
X는 그럴 마음조차 없었다는 걸 그 순간 깨달았다.


그 뒤로는 더 적나라했다.
내가 밥 먹는 모습이 보기 싫다거나,
데이트에 시간을 쓰기 아까우니 밥은 각자 해결하고 만나자고 했다.
연애를 유지할 최소한의 성의조차 없는 태도였다.


결국 이별을 고하던 날, 나는 마지막으로 물었다.
“나를 좋아한 적은 있었어?”
X는 울먹이며 대답했다.
“그냥 재지 않는 모습이 좋아서 만났는데, 사랑한 적은 없어.”

사랑하지 않았다는 고백은 곧, 지난 2년 동안 내가 그저 심심풀이와 시간 채우기용이었다는 말이었다.
나는 관계에 모든 걸 쏟았는데, X에게 나는 그저 ‘쉽게 시작했다 쉽게 버려도 되는 사람’이었을 뿐이다.


이런 일은 아마 다른 연인들에게도 있을 것이다.
모든 게 적당하니, 언젠가는 마음이 커지겠지 하며 시작하는 관계.

나는 그런 사람들에게 말하고 싶다.
“제발 본인만 생각하지 말고, 상대방의 마음도 생각해 주세요.”
당신이 가볍게 시작한 관계일지라도, 상대방은 진심으로 표현하고 있을 수 있다.


그 연애의 흔적은 지금도 내 안에 남아 있다.
누군가 나를 진심으로 사랑하는지 끊임없이 의심하게 만들었고,
10년 가까이 지난 지금도 그 상처는 완전히 아물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혼자의 시간을 묵묵히 보내고 있다.


다음에는 진심이 통하는 사람,
말하지 않아도 나를 사랑한다고 전해오는 사람을 만나기를 바라면서.

그리고 더는, 나만 포기하면 되는 관계에 나를 내주지 않으리라 다짐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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