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인이 여권을 들고 오키나와에 갔던 시절
1945년 8월.
나가사키와 히로시마가 잿더미로 변하고, 일본은 연합군에 무조건 항복했다.
전쟁이 끝난 뒤, 연합군은 일본 땅에 상륙해 GHQ(연합국 최고사령부)라는 이름의 군정을 세웠다.
이제 일본은 ‘일본인의 나라’가 아니라, ‘연합국이 관리하는 지역’이 되었다.
초기에는 영연방군도 일본 각지에 주둔했지만, 시간이 흐르며 결국 미군만 남았다.
그들은 행정, 치안, 언론까지 통제했고, 일본 정부는 ‘존재하되 자율이 없는’ 상태였다.
그 무렵, 일본 지도 위에서는 묘한 일이 벌어졌다.
도쿄와 오사카는 GHQ의 통치 아래에 있었고, 홋카이도에는 영연방군이 남아 있었다.
그리고 오키나와는 일본의 행정 구역에서 완전히 분리되어, 미국의 직접 통치 하에 놓였다.
그래서 이상한 풍경이 만들어졌다.
일본인이 일본 안에서 여권을 들고 여행해야 하는 시절.
도쿄에서 오키나와로 가려면, GHQ가 발급한 ‘여행 허가증’—즉, 일종의 여권이 필요했다.
그 시절 오키나와는 미 달러가 통용되고, 미군 트럭이 거리를 다녔다.
같은 언어를 쓰지만 다른 질서가 통하는 섬.
그곳은 일본인이면서 일본인이 아닌 사람들이 사는 세계였다.
물론, 오키나와는 원래 류큐 왕국이었다.
19세기 후반 일본이 침략하여 병합하기 전까지, 그들은 오랜 세월 독립된 문화를 지닌 민족이었다.
그래서 어떤 이는 이렇게 말한다.
“전쟁이 끝난 뒤, 오키나와는 다시 본래의 위치로 돌아간 게 아닐까.”
그러나 1952년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이 발효되면서, 일본은 주권을 되찾고
오키나와도 다시 일본의 영토로 돌아왔다.
하지만 그 복귀는 완전한 회복이 아니었다.
미군은 여전히 섬에 남았고, 그들의 비행장은 지금도 오키나와의 하늘을 가른다.
지금도 오키나와에는 묘한 공기가 있다.
한때 일본이면서 일본이 아니었던 시절의 냄새.
그 경계의 기억은, 여전히 섬의 바람 속에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