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부키초의 문화사: 호스트바는 이렇게 생겨났다

by 따뜻한 말 한마디

이번 글은 도쿄를 수십 번 다녀오며 궁금했던 문화적 현상을 역사적으로 가볍게 정리해본 글입니다.

특정 산업을 찬양하거나 비난하려는 목적은 없습니다.


호스트바의 역사는 어디서 시작되었을까?

‘호스트바’라는 단어를 들으면 어떤 이미지가 떠오르는가?
욕망이 어긋난 끝에 생겨난 공간?
혹은 일본 드라마와 영화 속에서만 등장하는 비현실적인 장소?


나는 최근 도쿄 여행을 다녀왔다.

스무 번 넘게 간 도시지만, 여전히 적응이 되지 않는 것이 있다.
바로 신주쿠 가부키초 곳곳에서 자연스럽게 눈에 들어오는 호스트바 광고와 간판들이다.
한국에서는 아직 ‘음지’에 머무는 산업이지만,

일본에서는 어느 정도 양지로 올라온 존재라는 사실이 매번 낯설게 느껴진다.

그렇다고 일본의 호스트바가 더 건강하거나 상식적이라는 뜻은 아니다.
그저 산업의 표면만 다를 뿐, 본질은 크게 다르지 않다.


1956년, 성매매 금지법과 함께 등장하다

호스트바의 시작은 1956년 일본에서 성매매 금지법이 제정되면서부터다.
불법화된 성산업의 종사자들은 자연스럽게 도쿄 가부키초 일대로 몰려들었고,
이 지역은 이후 일본 전역의 유흥업 종사자들이 모이는 거대한 중심지가 되었다.
우리가 알고 있는 ‘가부키초’의 모습은 이때부터 형성된 것이다.


이 시기 가부키초에서는 ‘댄스홀’이라 불리는 무도장이 유행했다.
여성 고객들을 상대하며 춤을 추고 술을 마시는 공간이었는데,

여기서 개별적으로 활동하는 ‘제비(히모)’들이 자연스럽게 등장한다.

그러나 이들은 철저히 개인 단위로 움직였고,
수익도 불안정해 산업이라고 부르기도 어려운 상태였다.


현대 호스트바의 탄생 - 아이다 타케시

이런 환경 속에서 등장한 인물이 있다.
바로 아이다 타케시(愛田武).
그 역시 개인 제비로 활동하던 사람이었지만, 불안정한 수익 구조를 개선하기 위해
여러 제비들을 모아 하나의 조직을 만들고, ‘아이(愛)’라는 공간을 열게 된다.
이곳이 오늘날 호스트바의 원형이 된다.

안정된 시스템이 갖춰지자 인기가 높지만 수익이 불확실하던 제비들이 모여들기 시작했고,
호스트바는 빠른 속도로 성장한다.


버블 경제와 함께 폭발적인 확장

1980년대 일본 버블 경제는 호스트바 산업에도 막대한 영향을 끼친다.
특히 긴자의 고급 클럽에서 남성을 상대하던 호스티스들이
엄청난 돈을 호스트바에 쓰기 시작하면서 산업 규모가 폭발적으로 커진다.
말 그대로 버블 자본의 종착지가 되었던 셈이다.


불황 속에서 살아남기 - 90년대 이후의 전략

버블이 붕괴된 1990년대, 호스트바는 큰 위기를 맞는다.
하지만 이들은 새로운 전략을 택한다.

인기 호스트들을 TV 프로그램에 출연시키며 대중적인 이미지를 만들고,
기존처럼 유흥업 종사자 여성들뿐 아니라

일반 여성 고객층을 적극적으로 끌어들이는 방향으로 체질 개선을 했다.


여기에 2000년대 초반, 도쿄에서 자정 이후 유흥업 영업이 금지되면서
호스트바는 오히려 저녁 중심의 영업으로 더 대중적인 서비스업처럼 보이는 형태로 변모했다.

오늘 우리가 도쿄 여행에서 흔히 보게 되는 호스트바 간판과 광고는
이 시기의 전략 변화의 결과들이다.


그러나 ‘산업’이라고 불리기엔 여전히 어두운 면

이렇게 호스트바의 역사를 돌아보면 흥미로운 산업 발전사처럼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본질적으로는 사회에 긍정적인 영향을 주는 업종이라고 보긴 어렵다.
특히 일본에서는 ‘토요코 키즈’와 같은 취약층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호스트들의 악행이 사회 문제로 드러나며
호스트바는 여전히 위험한 산업이라는 인식이 강하다.

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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