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수가 된 후, 그나마 좋은 점은 시간적 여유가 생겼다는 것이다.
적어도 시간만큼은 만수르가 부럽지 않을 정도다.
이제는 친구를 만나거나 병원 진료를 받을 때, 그들의 일정에 내가 맞출 수 있다.
회사에 다닐 때는 아파도 시간이 안 맞아 병원에 가지 못한 채 버텼던 때가 많았다.
하지만 시간의 여유는 언제나 양날의 검이었다.
회사에서 분 단위로 쪼개진 일정표 속에 살다가
갑자기 주어진 자유는 때로 나를 초라하게 만든다.
무엇을 해야 할지,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겠고
‘이 시간을 잘 보내고 있나’ 하는 자기 검열이 시작된다.
공부라도 해야 하나, 책이라도 읽어야 하나,
그런 생각들이 머릿속을 빙빙 맴돌곤 한다.
퇴사를 한 지 몇 주가 지난 지금,
나는 이 시간을 나를 다시 일으켜 세우는 시기로 삼기로 했다.
회사 생활 동안 공황장애와 우울증으로 지쳐 있었던 나를
이제는 진정으로 돌보려 한다.
아침에 억지로 일어나지 않아도 되는 것,
미루던 병원에 제때 가는 것,
그 모든 사소한 일들이 나를 돌보는 일이라 믿는다.
결국 ‘이 시간을 잘 보내고 있나’라고 묻는 건
회사 생활의 잔재일지도 모른다.
회사에 있을 땐 1분 1초가 아까웠고,
멈추면 곧 뒤처지는 사람처럼 느껴졌다.
그렇게 쉼 없이 나를 업무라는 분쇄기에 밀어 넣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이 느린 시간의 흐름을 받아들이고,
내가 이제는 다른 세계에 서 있음을 인정하려 한다.
그리고 그 인정 속에서 중심을 잡는 중이다.
이제는 농담처럼 “시간 만수르”라는 말을 하며 웃을 수 있다.
그만큼 마음의 여유가 조금은 돌아왔다는 뜻이니까.
이제 내 인생의 주인공은 나다.
그리고 내가 서는 무대는 회사가 아닌, 훨씬 더 넓은 세상이다.
그 말은 내가 시간을 바라보는 관점 또한 달라져야 한다는 뜻이다.
더 이상 시간은 쫓아가야 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함께 걸어가야 하는 것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