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의 빛을 읽다

by 따뜻한 말 한마디

퇴사를 한 지도 어느덧 세 달이 되어간다.
나는 이 시간을 잘 보내고 있는 걸까.

여행도 다녀왔고, 우연히 발견된 턱의 낭종을 제거하기 위해 수술도 받았다.

그러는 사이 집에 머무는 시간은 자연스럽게 다시 늘어났다.
그리고 매일 세 번, 아파트를 다섯 바퀴씩 도는 산책이 하루의 루틴이 되었다.


같은 장소라도 하루 중 시간대에 따라 풍경이 주는 감정은 조금씩 다르다.
나는 보통 아침 아홉 시쯤 아파트를 돌기 시작한다.
사람들은 출근을 마쳤고, 어린이집 차량도 막 떠난 뒤다.
이 시간대에는 조금 전의 활기가 아직 남아 있다.

그리고 나 역시 하루를 시작한다는 느낌을 받는다.
날씨가 어떻든 아침을 이렇게 여는 일은, 지금의 나에게 꽤 중요한 일과가 되었다.


오전 시간을 보내고 서너 시간이 흐르면, 나는 다시 아파트를 돌 채비를 한다.
하루 중 아파트가 가장 쓸쓸해지는 시간이다.
사람들은 대부분 일터에 있거나 외출을 한 상태이고,
이곳을 지키는 사람은 나 같은 백수이거나 관리사무실 직원뿐이다.


이 시간에 아파트를 돌다 보면
빨리 회복해서 다시 일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따라온다.
내가 있어야 할 곳은 여기가 아니라는 목소리가
산책 내내 나를 따라붙는다.

쓸쓸함을 느끼면서도 계속 걷는 이유는 단순하다.
아직 내가 사회로 다시 나가고자 하는 의지가 남아 있다는 것을,
내 스스로에게 확인하고 싶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아파트를 도는 시간은 퇴근 시간대다.
이때의 아파트에는 다시 활기가 생긴다.
퇴근 후 집으로 돌아오는 주민들, 그들을 맞이하는 가족들,
창밖으로 흘러나오는 저녁 식사 냄새까지.

그리고 하루 중 유일하게,
내가 이 아파트를 돌고 있다는 사실이 눈치 보이지 않는 시간이기도 하다.


이 시간의 나는 백수가 아니라
저녁 산책을 나온 평범한 주민처럼 보인다.
그래서 이 시간을 가장 좋아한다.
가장 어두운 시간대이지만,
나에게는 유독 밝게 빛나는 시간이다.

이전 10화시간 만수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