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술을 마치고 나는 재취업을 준비 중이다.
경력 사원 모집 공고를 하나씩 찾아보며, 이 자리가 나에게 맞는 곳인지 곰곰이 생각해 본다.
퇴사를 하고 일을 쉰 지 어느덧 세 달이 되어간다.
공황장애로 지친 심신을 쉬게 하다가, 예상치 못한 수술까지 겹쳐 회복의 시간을 더 보냈다.
이제는 내가 다시 움직여야 할 때라는 조바심이 생기고,
그 조바심을 달래기 위해 채용 공고를 들여다보는 날들이 이어지고 있다.
그러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대기업에서의 내 경력은 무엇이었을까.’
분명 이름만 들으면 알 만한 회사를 다녔고,
그 안에서 여러 직무를 경험했고, 성과라고 부를 만한 순간들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에 와서 돌아보면,
13년에 가까운 시간 동안 쌓아온 그 경력들이
그 회사 안에서만 통하는 것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채용 공고 사이트나 링크드인을 보면 일자리가 없는 것은 아니다.
문제는, 내 경력을 살릴 수 있는 일자리가 거의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중요한 사업에 참여했고, 주요 업무를 맡아 책임을 졌음에도
이 경력이 자연스럽게 이어질 수 있는 자리가 많지 않다는 현실이 낯설다.
이쯤 되면 이런 말을 듣게 된다.
“대기업 다녔다고 눈이 너무 높은 거 아니야? 눈을 좀 낮춰봐.”
눈을 낮춘다는 말은,
어쩌면 아무 회사에나 들어가 일을 하라는 의미일지도 모른다.
나 역시 한때는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그런 선택을 한다면, 지금까지의 내 경력은 무엇이 되는 걸까.
공황장애를 겪으면서도 버텨왔던 시간들,
그 시간 속에서 쌓아온 경험들에 대해
내가 스스로 너무 무례해지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시간을 견뎌낸 나 자신에게
“그래도 결국 아무 데나 가도 되는 거였어”라고 말하고 싶지는 않았다.
재취업이라는 과정은 생각보다 허망하다.
내 경력을 최대한 살릴 수 있는 환경을 찾아야 하는데,
그 과정에서
‘내 경력은 이 정도밖에 인정받지 못하는 것이었나’
라는 자괴감에 빠질 때도 있다.
그럴 때마다 자존감이 조금씩 깎여나가는 느낌이 든다.
AI가 사람을 대체하고 있고,
그 속도가 점점 더 빨라지는 지금,
나의 위기감도 함께 커진다.
혹시 나의 경력 역시 AI 앞에서 설 자리를 잃어가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까지 든다.
아직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없다.
내 경력이 정말로 물경력이었는지, 아니면 아직 번역되지 않았을 뿐인지도 잘 모르겠다.
다만 한 가지는 분명하다.
그 시간들을 나는 아무 생각 없이 버텨온 것은 아니었다는 것.
힘들었지만, 그 시간들은 분명 내 삶의 일부였고
쉽게 부정할 수 있는 과거는 아니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그 시간을 부정하지 않는 방식으로
다음 스테이지를 찾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