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의 공백을 참는다는 것

by 따뜻한 말 한마디

퇴사를 하고 나서 나는 이리저리 움직이고 있다.
채용 공고를 살펴보고, 미뤄두었던 영어와 일본어 공부도 다시 시작했다.

누가 시킨 일은 아니지만, 가만히 있기보다는 스스로 움직이고 있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이 공백의 시간을
그대로 버티는 게 아직은 쉽지 않아서다.


퇴사를 하기 직전의 나는 상태가 좋지 않았다.
회사에서 공황 증상이 반복됐고,
결국 퇴사 권유까지 받았다.

퇴사를 하고 난 뒤 첫 한 달은 오히려 마음이 편했다.
13년 가까이 나를 갉아먹던 생활에서 벗어났다는
해방감이 분명히 있었다.


하지만 세 달이 되어가는 지금,
나는 그때보다 오히려 나 자신을 더 압박하고 있다.
하루의 공백을 그대로 두면 안 될 것 같은 기분.
일 분 일 초라도 의미 있게 써야 할 것 같은 생각 때문이다.
연차나 휴가처럼 정해진 끝이 있는 쉼과는
전혀 다른 종류의 시간이라는 걸 실감한다.


문제는, 이 시간을 내가 마음대로 조절할 수 없다는 데 있다.
지원할 만한 공고가 많지 않고,
지원하더라도 결과가 나오기까지는
그저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회사에 다니며 이직을 준비하던 때와는
확실히 다른 결의 시간이다.


그래서 요즘의 나는
이 시간을 어떻게든 통제하려 하기보다,
그냥 흘러가게 두는 연습을 하고 있다.

결실이 맺히기 전까지는
이 공백을 완전히 없앨 수 없다는 사실을
조금씩 받아들이는 중이다.


오늘 하루도 그렇게 흘려보내고 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것처럼 보이지만,
이 시간을 통과하는 방식이
훗날의 나에게 어떤 흔적으로 남을지는 아직 알 수 없다.


다만 지금은,
이 공백을 견디고 있는 나 자신을
함부로 몰아붙이지 않으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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