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술 후 몸 상태가 조금씩 돌아오면서,
나는 다시 사회로 돌아가기 위한 준비를 하고 있다.
지원 공고를 보고, 이력서를 고치고, 자소서를 다듬는다.
지금 하고 있는 이 노력들이
곧바로 어떤 보상으로 돌아오기를 은근히 기대하면서.
그러다 문득 이런 생각이 스친다.
모든 노력은 정말 보상을 가져오는 걸까.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이 준비들,
이력서를 고치고 지원 버튼을 누르는 이 시간이
혹시 나 혼자만의 착각은 아닐까.
내가 바라는 보상이 지금의 노력에 자동으로 따라오지는 않을 텐데,
그 사실을 모르는 척하고 있는 건 아닐까.
그런 생각에 잠시 멈춰 서게 된다.
이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노력을 한다.
중고등학생 때는 대학을 위해,
대학생 때는 취업을 위해,
취업하고 나서는 더 나은 평가와 자리를 위해.
만약 모든 노력이
바로바로 보상으로 돌아온다면
지금의 세상은 훨씬 단순하고 공정하지 않았을까.
문득 그런 상상을 해본다.
내 인생을 돌아보면
나 역시 참 다양한 형태의 노력을 해왔다.
어릴 때는 부모님을 기쁘게 하기 위해 공부했고,
대학 시절에는 조금이라도 학점을 올리기 위해 매일 도서관에 앉아 있었다.
취업을 한 뒤에는 좋은 고과를 받기 위해 애썼고,
연애를 할 때는 상대가 나를 더 보게 하기 위해 끊임없이 마음을 내보였다.
퇴사를 하고 난 지금,
그 노력들은 나에게 어떤 보상을 남겼을까.
결과만 놓고 보면
나는 그 노력들이 향하던 방향에서
조금 비껴 나 있는 사람처럼 보인다.
하지만 가만히 들여다보면
아무것도 남지 않은 것은 아니다.
학생 시절에 죽어라 했던 영어 공부는
지금의 나를 해외에서도 주저하지 않게 만들었고,
도서관에서 매일 버티던 시간들은
결과가 나오기 전까지 견디는 힘을 남겼다.
입사 후의 노력은
‘열심히’보다 ‘방향’이 중요하다는 걸 알려주었고,
연애에서의 구애와 이별은
내가 어떤 사람을 만나야 하는지를
조금은 명확하게 만들어주었다.
무언가를 이루기 위해
지금 내가 하고 있는 노력은
당장 눈에 보이는 보상으로 오지 않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시간들이
언젠가의 나를
조금 더 지혜로운 방향으로 데려다줄 거라 나는 믿어보려고 한다.
오늘 내가 한 일들에
의미를 부여하는 일이
어쩌면 거창한 자기 합리화일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마음은 한결 편해진다.
나는 지금,
더 단단해지고 있는 중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