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유리 Dec 24. 2021

뒷담화의 기술

당신이 뒷담화를 하고 싶을 때 지켜야 할 원칙

웬만하면 뒷담화를 안 하려고 노력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말 속상하고 억울해서 어쩔 수 없이 하게 될 때가 있다. 여자들은 화가 나거나 슬픔 혹은 분노에 쌓여있을 때 대화를 통해 공감을 얻는 과정 속에서 스트레스를 푸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그럴 경우 반드시 세 가지 원칙을 지키는 편이다.

첫째. 일어났던 상황 설명만 한다. 그것도 내 편에서 보는 시각이 아닌 중립적인 입장으로 기술한다. 물론 감정이 있는 사람이기에 완전하게 객관적으로 바라보긴 힘들 것이다. 그러나 최대한 제삼자의 관점에서 상황을 지켜봤을 때 보이는 모습 그대로 얘기한다. 그리고 그로 인해 느꼈던 여러 복합적인 감정들도(분노, 억울함, 슬픔 등..) 함께 말한다.

둘째. 내 입장을 이해받기 바라기에 그런 감정의 찌꺼기들을 배출하며 누군가와 공감하는 과정에서 카타르시스를 느끼고 그 이유로 인해 뒷담화를 하는 것이겠지만 공정하게 하기 위해 상대방의 입장에서는 이러했을 것이다 하는 점도 꼭 같이 얘기해준다. 그래야 듣는 사람이 객관적으로 판단해서 내가 혹시 틀리거나 오해했을 때 바른 충고를 해줄 수 있을 것이기에..

셋째. 당사자가 앞에 있다면 과연 내가 이 말을 할 수 있을까 아니 이 기가 혹시라도 그 사람 귀에 그대로 들어간다고 해도 같은 얘길 할 수 있는지 생각해본다. 만약 할 수 없는 얘기라면 절대 하지 않는다. 예를 들면 그 사람에 대한 인격 모독적인 욕이나 외모나 환경에 대한 비하, 근거 없는 루머 등이다.

하지만 그저 상황설명과 내가 느꼈던 감정만을 말한다면 그 사람 앞에서도 부끄러울 게 없다. 사실을 말하는 거니까.. 그리고 내 감정이 그렇게 느꼈다는데 뭐라 할 사람은 없다.

이 세 가지 원칙을 항상 지키면 어디 가서 뒷담화를 하더라도 최악의 상황은 모면할 수 있다. 그 사람에게 전해질 것을 걱정하거나 만약 그렇게 되더라도 쥐구멍으로 숨고 싶진 않을 것이다. 물론 뒷담화를 안 하고 참는 게 제일 좋은 방법이겠지만 말이다.

어쩔 수 없이 사람들이 모여 뒷담화를 하는 상황에서는 말하는 것보다 들어주는 것에 치중한다. 하지만 아무런 대꾸 없이 목석처럼 듣기만 하면 좀 재수 없게 보일 수도 있다. 뒷담화를 하는 사람의 심정도 헤아려줘야 한다. 오죽하면 그러겠냐고..

그 사람의 감정에는 함께 공감하고 동조해준다. 화나는 기분을 이해해주는 게 필요하다. 하지만 중요한 건 욕먹는 사람에 대해 화자가 일방적으로 내리는 정의에 좋다고 함께 욕하지 않는 것이다.(보통 딥빡 쳐서 누구 욕할 때 상대는 천하의 개쌍×이 되기 마련이다.) 잘못한 사람의 행동에 대해서는 나무랄 순 있지만 (화자의 말이 사실이라는 전제 하에..) 상대방의 인격을 같이 밟아버리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모든 상황은 양쪽의 얘기를 다 들어봐야 하기 때문에 결코 제삼자가 함부로 말할 수 없는 지점이 있다.

SNS에서도 마찬가지다. 어떤 특정인을 저격해서 까는 글(정치인 등 공인은 예외)에는 동조하지 않고 절대 좋아요를 누르지 않는다. 그게 크리스천으로서 지키는 최소한의 원칙이다.

지인이나 친구들은 알겠지만 난 뒷담화를 거의 하지 않는 편이다. 주로 듣는 쪽이고..

그렇다고 성인군자처럼 절대 안 하는 건 아니고 모르는 사람 욕에 동조하거나 (친구가 직장 상사 욕을 하면 내가 누구 편을 들까? ^^;) 친한 사람 앞에서도 할 수 있을 만한 농담처럼 까는 것은 한다.


내가 먼저 남 욕을 꺼내지 않고 누군가 할 때 같이 씹어주지 않으면 주변 사람들도 내 앞에서는 뒷담화를 잘 안 하게 된다. 만약 하더라도 원하는 반응이 나오지 않으면 길게 이어지질 않는다.


언젠가 내 친구들은 서로 뒷담화를 하지 않는다고 말했더니 누군가 그러더라. 내 앞에서 안 할 뿐이지 자기들끼리는 널 씹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내가 바보인 건지 순진한 건지 그때 처음으로 그럴 수도 있겠구나 생각해봤다. 정말 그전까지는 그런 생각조차 해보질 않았다. 친구들을 그만큼 믿었다.


뒷담화를 안 하면 몇 가지 안 좋은 점도 있다. 뒷담화의 속성 상, 욕하는 대상을 적으로 삼아 서로가 대동 단결하며 비밀을 공유하는 묘한 결속력을 지니고 있기에 끈끈한 우정? 같은 것이 생겨날 수 있는데 그런 것이 없다.


서로 공감하는 공동의 적을 만들지 않으니 혼자 깨끗한 척한다는 의심 속에 나에게 완전히 오픈하지 않고 약간의 거리를 두고 있는 것이 느껴질 때도 있다.


또한 누군가 내 욕을 하고 안 좋은 비방을 하고 다닐 때 반박이나 변명의 기회가 없어진 채 남들의 오해나 선입견으로 미움을 계속 받기도 한다.


제삼자가 사이를 이간질할 목적으로 내 앞에서 다른 사람 욕을 하고 그 사람 앞에서는 내 욕을 하더라도 내가 제삼자가 그랬다는 말을 하지 않는 한 서로를 오해하며 싫어하게 될 수도 있다.


한마디로 말하면 작정하고 내 뒷담화를 하고 다니는 사람 앞에서 멍청하게 당하는 바보로 보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남편은 내가 심지어 누군가에게 당했을 때도 가해자 입장에서 자꾸 그 사람을 변호하려 한다고 화를 낸 적이 있다. 자기가 살면서 만난 사람 중에 가장 바보같이 마음이 넓고 관용적인 사람이라고 칭찬이 아닌 욕을 한다. 그렇게 바보같이 구니까 자꾸 당하는 거 아니냐고..


주님을 인격적으로 만나기 전까지는 그래도 마지막 한방을 가지고 있었다. 정말 아홉 번을 세어가며 참다가 열 번째에는 분연히 일어나 아홉 번 당한 것을 되돌려주는 카운터 펀치를 한방에 날렸다. 잔인하게 복수하며 누가 내 욕을 하면 똑같이 되돌려 주었다.


하지만 이제는 이빨도 발톱도 없는 늙은 곰처럼 참는다. 아니 참는다기 보다는 달관한 노인이 되어 간다고 해야 하나.. 물론 이러기까지 숱한 일들이 있었다. 분노로 밤을 새우기도 하고 눈물의 기도로 베갯잇을 적시기도 했다.


이빨과 발톱이 빠진 곰은 여우들의 쉬운 조롱거리가 되고 하이에나의 먹잇감으로 전락한다. 그러나 발톱 빠진 곰이면 어떻고 바보가 되면 또 어떠하리..


나는 조금 눈치가 없어 보이지만 알아도 모르는 척 들려도 못 들은 척 일부러 한쪽 눈을 감으려 한다. 생각해보면 누가 내 욕을 해도 그런 것들을 다 감수하고 뒷담화를 하지 않는 쪽을 택한 것 같다.


특별히 착하게 보이려고 하는 것이 아니다. 그냥 내 지인이나 친구들이 적어도 저 사람은 내 욕을 하고 다니지 않는다는 믿음 하나는 주고 싶은 것이다.    


나름대로 노력은 하지만 친구를 살뜰히 잘 챙기는 성격도 아니고 배려나 공감이 넘치거나 얘기를 잘 들어주거나 고민 있을 때 너무 만나고 싶을 만큼 그런 친구가 못되기에 진실함 하나로 그냥 믿어달라고 하고 싶다.


유리처럼 투명한 진실함 하나로 내 허다한 단점들을 다 덮을 순 없겠지만 요즘같이 서로를 믿지 못하는 세상에, 배신하거나 절대 등 뒤에 칼을 꼽지 않을 사람 하나 정도는 곁에 둬도 나쁘지 않지 말이다.

작가의 이전글 이 방문을 열고 나가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