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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리 Jan 22. 2022

기도 (램프의 요정 하나님?)

매일 일정 시간을 정해놓고 기도를 한다. 한동안 그 일을 멈추고 있다가 다시 시작한 지 좀 되었다.

하나님을 완전히 만나기 전까지 내 기도는 늘 일방적이고 산발적이었다. 오로지 나의 필요에 의해서만 내가 원하는 때에 들어달라고 다급하게 요청하는 기도였다.

하나님은 램프 안에 있다가 내가 문지를 때만 나와줘야 하는 요정이었다.

정말 절실하게 부르짖을 때 들어주신 것도 있었지만 대부분 나를 위한 기도는 그저 욕심에 그치다가 제 풀에 포기하며 자조하고 말았다.

하나님은 지금 바쁘셔.. 세상에 해결해야 될 심각한 문제가 이렇게 많은데 고작 나 같은 사람별 것 아닌 기도에 신경 쓰시겠어?라고 결론 내리고 그 '바쁘신' 하나님이 나 따 위는 신경 안 쓰실 테니 내 멋대로 살았다.

러다 하나님을 만났고 내 삶이 송두리째 뒤집어진 그날부터 기도가 무엇인지 왜 기도를 해야 하는지 알게 되었다.

너희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목숨이 음식보다 중하고 몸이 의복보다 중하리라는 말씀의 심오한 뜻이 무엇인지도..

목숨이 중요하다면서 목숨을 위해 할 수 있는 것들을 하지 말라니 이 얼마나 모순된 발언인가.

우리는 현세에 산다. 그러나 우리가 영원히 산다고 가정할 때 내가 사는 이 세상은 한 점에 불과하다.
이 찰나의 순간을 위해 염려하지 말고 그 후에 올 하나님의 나라를 구하라는 깊은 의미..

하지만 나는 솔직히 말하자면 내세에 있을 천국을 위해 기도하는 것은 아니다. 하나님을 만나는 순간 그것은 그냥 당연히 가야 하는 부모 품이 되어 버렸다.

아이가 부모 집을 가는데 절실히 기도하고 요청해야 하나? 하나님이 내 아버지란 것을 완전히 믿고 인정하는 순간 그것은 결국 다다를 수밖에 없는 귀결이었다. 한치의 의심도 없는..

내가 기도하는 것은 오직 이것이다.
' 제 자신이 아버지의 뜻에 맞는 인간이 되게 해 주세요..'
좀 더 고상하게 말하자면 '주님의 영광을 돌리는 삶'이라고 하겠지만 숱한 설교들에서 관용구처럼 시전 하는 그 표현이 별로 와닿지 않기에..

솔직히 나 같은 위인이 주님의 영광을 위해서 살기에는 좀 벅차다. 더 이상 죄나 저지르지 않으면 만족이다.

하나님 보시기에 그냥 내 모습이 아름다웠으면 좋겠다.

내가 뭘 해도 자식 사랑하는 부모처럼 끝없이 이해하며 용서해주실지 알지만 그래도 더 이상 아버지를 실망시키고 싶지 않다.

주님. 제가 당신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아시죠. 근데 제 모습은 늘 요 모양 이 꼴이네요. 아버지께서 보시고 만족할 만큼 아름답길 원해요. 주님이 원하시는 그 사랑을 보이길 원해요. 다른 사람들이 제 모습을 보고 주님을 알고 느끼길 원해요.

그 응답을 받는지 묻고 싶을 것이다. 그 대답은 '이미 와 아직'이다..

내 속마음은 이미 변했지만 겉사람은 늘 그 마음과  충돌한다. 그 괴리를 좁히는 것. 그것이 내가 이곳에서 해야 할 영원한 과제이다.

기도할 때마다 주님이 주시는 선물이 있다. 기쁨과 평안과 감사.. 이것은 그 어떤 재물과 권력과 인정으로도 대체할 수 없는 레어템이다. ^^

더불어 가장 강력하게 쏟아부어주시는 보너스도 있다. 그것은 '사랑'이다.

미워하는 것들을 사랑할 수 있는 마음.
모든 약한 이들에게 내밀어지는 손.

이 무기만 있으면 맘 속 전쟁은 이미 승리의 축전이다. 세상 모든 것을 다 가진 승리자가 된다.
그래서 그 어떤 재화나 육신의 안락을 위한 기도가 더 이상 필요하지 않다.

사람들은 기도를 하면 그것이 물질적이고 육신적인 보상이라고 믿는다. 구체적으로 세상을 살면서 필요한 재화나 건강. 갖고 싶은 어떤 것 말이다.

하지만 기도를 할 때 우리가 받는 것은 spiritual gift이다.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이다.
내 몸보다 내 영혼을 위해 받는 선물이 더욱 값지다.

여담이지만 하나님은 물질적이고 육신적인 소원도 물론 들어주신다. 지금까지 경험에 의하면 그로 인해 내 영혼이 더욱 하나님께 가까이 갈 가능성이 있다든가 아님 다른 이를 그렇게 만들 가능성이 있을 때..

하나님은 변덕스러운 나에 비해 꽤나 초지일관하신 분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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