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유나름 Nov 10. 2023

내 이름은,

스누트 7-8월 · 1회 │ 내 이름이 나에게 주는 감정


  내 이름을 좋아하지 않았다. 언젠가 ‘윤아름 할머니’라고 불릴 이름과 호칭의 부조화가 싫었다. 한문 이름 친구들보다 한자 두 자 덜 아는 것도 억울했다. 나를 이름부터 안 이들의 기대에 화답하는 얼굴이어야 할 것 같아 그것도 부담됐다. 전혀 사용자 지향적이지 않은 작명. 아빠에게 이름 뜻을 물을 때마다 “예뻐지라고.” 다섯 자로 눙치는 답을 보니 대충 지은 것이 분명하다.


  고3때 나는 ‘1등 아름이’었다. ‘반장 (박)아름’과 ‘웃긴 (한)아름’이 있어서 나는 반 등수가 내 호가 됐다. 고작 학생 서른셋 중 셋이나 아름이라니. 그닥 튀는 이름이 아니라는 걸 그제야 알았다. 은정, 민정, 지은보다 흔했다. 그럴거면 차라리 영자, 현옥, 순덕이라고 짓지. 학기 초 담임선생님은 성(姓) 가나다순으로 우릴 ‘아름1, 2, 3’이라 불렀다. 한 학기쯤 지나자 친구들은 숫자 대신 각각의 호로 우릴 불렀다. 이것이 브랜딩인가?


  대학 입학과 함께 ‘1등 아름이’는 ‘과탑 아름이’로 리뉴얼 됐다. 당시 유행하던 CF 속 ‘공대 아름이’처럼 존재만으로 의미가 되는 학과 성비나 미모까지는 아니었기에 ‘신방과 아름이’는 못했다. 차별화 전략이 필요했다. 학과마다 있는 과탑, 수두룩한 87년생 아름이와 명약관화하게 구별될 개성. ‘공부 못하게 생겼는데 성적 좋아.’가 그때 내 브랜딩 컨셉이었다. 브랜드 경험 요소는 화려하게 꾸미기, B급으로 웃기기, 의리 터지게 잘 놀기. 스무 살 기준 쿨함이었다. 돌아보니 나름 먹혔던 것 같다.


  흔한 명사로 호명되고 싶진 않았다. 나는 서술어로 기억되고 싶었다. 무엇이든 궁금해했고, 스스럼없이 배웠고, 예사스럽게 표현했다. 그렇게 취향이 생겨났다. 

  나는 헬스, 테니스, 복싱보단 요가, 야외 러닝, 서핑을 좋아한다. 광막한 자연 속 인간의 하찮음을 온 몸으로 만끽할 때 위로받는다. 피부에 닿는 계절 변화에 근육과 관절이 내뱉는 예민한 리액션. 한낱 미물의 노력이 기특하다. 식물에 기쁨을 얻는다. 적당히 무심해야 잘 자라는 거리감이 좋다. 요리를 즐겨한다. 사실 모아둔 예쁜 그릇에 근사하게 플레이팅하는 내 센스에 취한다. 냉장고 문짝 반절 만한 유화도 일년에 한 점은 그린다. 세필붓보단 주로 18호 이상을 쓴다. 캔버스 위 두텁게 턱턱 올린 물감끼리 섞여 나온 색의 우연한 스펙터클이 재밌다. 다양한 경험으로 나를 본다. 취향으로 나를 안다. 나는 그런 사람이다.


  ‘아(我)답다.’ 

  15세기 석가모니 설법을 담은 <석보상절>에 있는 말인데, 해석하면 ‘아름답다’란다. 자기다운 것이 마음에 들고, 마음에 들면 보기 좋고, 그것이 아름다움이란다. 그러고 보니 우리 아빠 이름 참 잘 지으셨네.   




매거진의 이전글 첫 연애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