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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나름 Jan 27. 2024

시상식

스누트 3-4월 · 3회 │ 미리 써보는 나의 유서

  윤! 아! 름!


  힘찬 호명에 아름의 눈썹은 대어가 문 낚싯대 마냥 휘어 오른다. 원체 큰 눈은 그대로 쏟아질 것 같다. 입을 가린 양손 사이로 짧은 탄성이 새어나온다. 보나*는 퍼즐 조각을 맞추듯 아름의 목덜미에 고개를 파묻는다. 마지막 온기를 지키려는 걸까, 기억하려는 걸까. 아름의 허리부터 등, 날개뼈까지 깊게 감싸 안는다. 어깨에 종착한 손끝이 얇게 떨린다. 그녀 너머로 박수를 보내던 다운*은 아름과 눈이 마주치자 코를 찡긋하곤 웃는다. 사실, 꽉 다문 채 겨울 밤바다의 격랑처럼 움직이는 입꼬리 탓에 웃는 건지 우는 건지 알 수 없다. 다만, 그녀는 박수를 멈추고 무대 위 핀 조명이 내린 스탠드마이크를 가리킨다. 아름은 깊은 숨을 들이마시다 내뱉곤, 계단을 오른다.


  어, 정말 이 자리에 서니 지난날을 돌아보게 되네요. 취준생 시절 이력서를 쓰며 “나 그동안 뭐해 놨지?”, 매일 밤 굳은 몸을 이끌고 간 요가원 매트 위에서 “나 오늘 왜 그랬지?”하고 사바사나(송장자세) 한 게 고작이었는데. 진짜 죽음을 목전에 두니 포장도 후회도 걷힌 맑은 눈으로 반추하게 됩니다. 그래서 지금 여러분이 새삼 잘 보이네요.


  ‘윤아름’ 세 글자가 새겨진 트로피에 묶였던 시선이 무대 아래 사람들을 향한다.


  무언가 될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분쟁의 씨앗이 될 만한 재산도, 업계에 영향을 미칠 업적도, 심지어 남편도 자식도 없네요. 그래도 글 몇 편은 남깁니다. 다행입니다.


  글은 침수되거나 증발될 뻔한 순간을 정박시켰습니다. 글감을 찾아 기억을 뒤적이고 추억의 해상도를 높이다 보면 그때의 감정이 예민하게 살아났습니다. 2023년 봄에 쓴 글이 있습니다. 가족과 제철 굴, 꽃게를 한 솥 해 먹은 날을 곱씹은 글인데, 등장인물이신 엄마는 “누가 보면 우리 집 엄청 화목한 줄 알겠다”며 웃으셨습니다. 맞아요. 래미안 CF보단 인간극장에 가까운 우리 가족. 부모의 희생과 자책, 자식의 원망과 죄책감이 아롱진 휴먼 신파 드라마에서 CF같은 한 신을 오려 행복을 증폭시키고 글로 박제했습니다. 제가 ‘내 생애 최초의 기억’을 주제로 쓴 글에서도 말했듯 역사는 부정확한 기억이 불충분한 문서와 만난 확신일 테니, 제 글 한 편이 남은 가족들에게 ‘2022년 11월 어느 저녁은 막내딸 덕에 유독 행복했다’는 확신의 역사로 남길 바랍니다.


  후회하지 않겠다 하고도 후회가 남네요. 더 많은 글을 남길 걸 그랬습니다. 더 많은 순간을 기록할 걸 그랬습니다. 더 많이, 여러분의 소중함을 절실히 표현할 걸 그랬습니다. 


  아름은 트로피를 든 채 양 손을 가슴 앞에 모으고 한 사람 한 사람 눈을 맞춘다.


  저는 진심으로 그리움, 유쾌함, 포근함, 어떤 감정이든 한번씩 꺼내 보고 싶은 기억으로 여러분에게 남는다면 좋겠습니다. 그동안 참 감사했습니다.




*보나와 다운이 : 보나는 아름과 한 번도 같은 반이 된 적 없는 초중고대학 동창이다. 대학시절 처음 같이 들은 교양 수업에서 잦은 대출과 필기 대여를 해주며 “같은 반이 안 돼서 친구가 될 수 있었다”는 말을 남긴다. 다운은 아름의 대학 단짝으로 ‘아름다운’이란 듀오명을 얻는다. 추후 보나와도 친해져 삼총사가 되는데 이 때 가장 큰 수혜자는 아무래도 '아름다운'수식어를 몰아받은 아름다운'보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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