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집중(精神集中)은 온 마음의 초점을 어떤 한 일에만 몰두하는 행위이다. 정신집중의 행위가 이루는 정신이 집중된 상태에서는 아무 잡념도 없으며, 옆에 있는 사람이나 주위의 소음 등에도 전혀 구애 받지 않는다. 사실 정신집중 없이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다. 운동, 공부, 붓글씨, 바둑, 피아노 등 일을 할 때에는 정신을 집중하여야 원하는 결과가 나오게 된다. 공부나 바둑 등의 경우에는 두뇌의 개발을, 운동이나 피아노 등의 경우는 동작의 반복을 통하여 몸 속에 잠재하고 있는 제2의 기억을 계발하며, 궁도, 사격 등의 경우에는 순간을 다루는 인지능력을 계발하게 된다.
정신집중은 몸을 의미하는 정(精)과 마음을 의미하는 신(神)이 하나를 이루는 정신통일(精神統一)을 이루게 된다. 또한 정신통일은 정신일도하사불성 (精神一到何事不成)의 고사성어와 통한다. 즉, 몸과 마음이 하나로 모이면 이루지 못할 것이 없다는 뜻이다. 우리의 선조들은 이러한 정신통일을 단전호흡 등의 의식적 호흡과 연결하여 마음을 닦는 수양법으로 사용하였으며, 그 효과는 오늘날 현대사회의 스트레스성 문제점들을 다루는 정신의학 등에서 크게 대두되고 있다.
참선 명상
잔잔한 호수위에 돌멩이 하나가 떨어지면 떨어진 위치에서부터 그 주위로 동그란 물결의 파문이 퍼져 나간다. 고요한 마음에 한 생각이 일면 그로부터 생각의 꼬리가 꼬리를 물고 과거와 현재를 넘어 눈덩이처럼 불어 나게 된다.
참선(參禪)의 수행에는 과거도 미래도 현재도 떨어지는 돌멩이도, 피어나는 생각도, 아무것도 없다. 다만 고요한 마음을 유지하게 할 뿐이다. 참선의 호흡은 일반적으로 복식호흡을 사용한다. 숨을 천천히 코로 모아 들이쉬고, 아랫배로 내려 보냈다가, 숨을 잠시 멈추고, 입을 통하여 숨을 내쉬게 된다. 이때 숨을 내쉬는 시간이 정지하는 시간보다 길고, 정지하는 시간이 들이쉬는 시간 보다 길게 한다. 들숨보다 길게 하는 날숨의 호흡을 안정된 호흡으로 본다. [참고: 김승혜, 서정범, 길희성. 선불교와 그리스도교. 124]
참선은 바쁜 생활 환경을 떠나 조용한 분위기에서 행함이 효과적이다. 그러나 참선의 자세는 바쁜 일상 생활 중에서도 가질 수 있다. 바쁜 중에서도 틈틈이 화두를 참구하며 정진하는 자세는 참선의 길을 밝혀준다.
화두(話頭)
간화선(看話禪)의 핵심인 화두는 공안(公案)으로 알려져 있기도 한다. 화두의 '화(話)'는 말이라는 뜻이며, '두(頭)'는 머리, 즉 앞서 간다는 뜻이다. 즉 화두는 말보다 앞서 가는 것, 언어 이전의 것이라는 뜻을 지니고 있다. 화두(話頭)는 참선의 수행법으로, 화두를 통하여 일체의 말이나 생각을 끊어버리고 고요한 마음의 상태인 공(空)의 상태에 이르는 수행 방법이다.
한편 공안의 '공(公)'은 공중(公衆) 또는 누구든지 라는 뜻이며, '안(案)'은 방안이라는 뜻으로, 누구든지 성불할 수 있는 방안이라는 의미이다. 공안을 옛 선사들이 제자들을 일깨우기 위해 흔히 사용했던 선문답, 과거의 사건 사례로 본다면, 화두는 공안 가운데 핵심이 되는 언구(言句)이다.
화두의 참구는 사유나 사색을 하는 것이 아니라, 의심만을 계속하는 것이다. 화두를 가지고 간절한 마음으로 의심하기를 마치 닭이 알을 품은 것과 같이, 고양이가 쥐를 잡을 때와 같이, 어린아이가 엄마를 생각하듯이 하면, 화두에 대한 의심이 풀리고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
선종(禪宗)의 조사들이 만들어 낸 화두는 1,700여개의 종류가 있으며, 그 중 널리 알려진 화두는 '개에게는 불성이 없다', '뜰 앞의 잣나무', '마른 똥막대기' 등이 있다. 또한 가장 많은 고승들이 깨달었다고 하는 무자 화두법도 있다. '개에게는 불성이 없다 (구자무불성-狗子無佛性)'은 어느 한 수행승이 조주(趙州) 선사를 찾아가서 '개에게도 불성이 있습니까?'하고 물었을 때 조주 선사가 '무(無)'라고 대답하여 생긴 화두법이다. 부처님은 일체 중생에게 불성이 있다고 하였는데, 조주 선사는 왜 없다고 하였는가를 의심하는 것이 '무자화두'법이다.
화두는 크게 의심하는 것이다. 화두의 '큰 의심'은 원인을 찾고 이해하려는 목적을 가진 질문의 형태와는 달리, 마음이 열려서 스스로 의심이 사라질 때까지 '무엇인가?' '무엇 때문에?' 등의 의심 자체만을 계속하는 것이다. 이와 같이 해석 없는 순수한 의심을 참선에서는 대의정(大疑情)이라고 한다. 이 대의정은 '화두를 참구하면 반드시 깨닫는다'는 대신근(大信根)과 '다른 사람들도 다 하는데 나라고 왜 못하겠는가' 하는 대분지(大憤志)와 더불어 참선을 할 때 꼭 갖추어야 하는 참선의 세 요소이다.
화두를 만트라(Mantra)로 보는 경우도 있지만, 화두와 만트라(Mantra)에는 분명히 차이가 있다. 같은 점으로 화두(話頭)와 만트라(Mantra)는 수행방식에서 정신 집중을 이루기 위한 도구로 사용된다. 차이점은 화두는 수행방식에서 크게 의심하는 것임에 반해, 만트라는 수행방식에서 만트라를 만트라가 사라지고 무념무상 (無念無想)의 경지에 이를 때까지 만트라를 반복하는 것이다. 만트라는 본래 티베트어로 진언(眞言: 참된 말, 진실한 말, 진리의 말)의 뜻으로, 영적(靈的) 또는 물리적 변화를 일으킬 수 있다고 여겨지는 발음, 음절, 낱말 또는 구절이다.
단전호흡 명상
단전호흡(丹田呼吸)은 정기신(精氣神) 삼단전(三丹田) 원리를 바탕으로 전신(全身)의 기맥(氣脈)이 단전과 상통하는 호흡법이다. 단전호흡이라는 말이 우리에게 낯선 말은 아니다. 우리의 선조들은 제하3촌하단전(臍下三寸下丹田), 즉 배꼽에서 3~5㎝ 아래의 하복부 위치에 가상의 지점인 단전(丹田)을 기(氣)의 근원지로 보고 이에 관한 많은 가르침을 남겼다. 단전 호흡의 방법은 여러 가지이고 저마다의 특징을 지니는데, 명상법과도 연관성이 있다.
단전호흡의 특징 중의 하나는 호흡과 호흡 사이의 지식(止息)이라는 자연스러운 멈춤이다. 이 지식(止息)은 '숨쉬기를 잠시 멈춘다'는 뜻으로, 숨을 들이쉬고 멈추고, 다시 숨을 내쉬고 멈춘다는 우리말 표현 속에도 스며 있다. 이런 자연스러운 멈춤은 하나의 동작에서 다른 동작으로 넘어가기 위한 자연스러운 물리적 현상으로, 마치 공을 위로 높이 던지면 공이 가장 높이 오른 최고 지점에 도달했을 때 잠시 멈추고 방향을 바꾸어 내려오는 것에 비유할 수 있다. 이와 같은 자연적인 호흡과 호흡 사이의 멈춤은 근래에 들어 의식적인 멈춤으로 강조되어 여러 호흡법을 통하여 스트레스가 많은 현대인들에게는 물론 출산하는 산모들 에게까지 다양한 방식을 통해 소개되고 있다.
또 다른 특징은 다른 호흡법과는 달리 들숨에서 시작하는, 들숨 날숨의 호흡 형태를 유지한다. 이와 같은 들숨 날숨의 호흡 순서에 대해 선도법의 청산거사는 중국의 호흡은 내어 쉬고 들이쉬는 호흡의 순서임에 반해, 단전호흡의 호흡은 들이쉬고 내어 쉬는 들숨 날숨의 순서이며, 이는 '들락날락'이나 '들숙날숙'의 어휘와 마찬가지로 한국어 고유의 순서임을 설명한다. 이와 함께 청산거사는 한국의 나라 크기에 대해서도 일견을 밝힌다. 본시 역사적으로 볼 때 중국은 여러 민족들의 여러 나라로 유지되어 왔으며, 그 중에 가장 크고 강한 나라가 동쪽 반도에 위치한 한국이었음을 기술한다. [참고: 청산. 국선도법. 18.27.161-360]
국선도의 단전호흡 방법:
1. 중기단법(中氣丹法) 행공 50동작
2. 건곤단법(乾坤丹法) 행공23동작
3. 원기단법(元氣丹法) 행공 360동작
4. 진기단법(眞氣丹法) 행공 5동작
5. 삼합단법(三合丹法) 행공 2동작
6. 조리단법(條理丹法)
진정 우리 생활에서 멈춤의 순간이 없다면 어떨까? 교통신호에서 빨강불이 없고, 수돗물이 멈추지 않고, 나무가 끝없이 자라고 등, 어려운 일들이 많을 것 같다. 화가 치밀어 올라 소리지르고 싸우는 순간, 실수를 범하는 순간 등, 멈출 수만 있으면 좋았을 것 같은 순간들도 있다. 그런가 하면 끝없는 바다의 수평선, 깊은 산속의 적막함 등이 주는 평온한 순간이나 바쁜 생활에서 벗어나 가질 수 있는 침묵의 순간은 우리의 마음을 고요함으로 인도하기도 한다.
요컨대 삶은 그 모든 순간들의 연속이라고 한다. 기쁨의 순간은 오래 기억하고 싶은 순간이고, 어렵고 힘든 순간은 빨리 잊어버리고 싶은 순간이다. 그런가 하면 어느 틈인가 힘들었던 순간이 돌이키지 못할 정도로 변해져 있음을 경험할 때도 있다. 그러고는 지나간 그때 그 순간을 멈출 수가 있었으면 하고 푸념하기도 한다. 그게 형제간이나 부모 자식과의 다툼이었다면, 그때 그 순간을 참았었더라면 하고 후회하기도 한다.
멈춤의 순간들은 특별한 의미를 가지게 된다. 호흡이나 심장이 멈추면 생명에 위협을 주지만, 멈춤이 멈춤에서 끝나지 않고 다음 활동으로 이어진다면, 멈춤은 새로운 시작을 향하는 잠시의 죽음이다. 따라서 순간의 멈춤은 새로운 생명의 길로 거듭나는 새로운 시작의 근원지임을 의미하기도 한다. 멈춤에서 활동으로, 죽음에서 생명으로, 한 형태에서 다른 형태로의 탈바꿈은 태동의 힘을 지니고 있다. 이 힘은 삶의 중심을 유지하는 생명의 힘이며, 이러한 태동의 힘이 우리의 몸과 마음을 주위의 유혹과 인간 관계의 갈등에서 보호해 준다.
단전호흡의 예
단전운동은 걱정과 근심에 그리고 각종 스트레스속에서 살아가는 현대인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운동이다. 단전사상을 바탕으로 하는 단전의 힘은 몸과 마음을 건강하게 유지하도록 도와준다. 단전에 힘을 모을 때 몸과 마음이 하나되고, 단전에 힘이 빠지면 마음이 흔들리게 된다.
배꼽 3치 아래쪽 부분에 위치한다고 알려져 있는 단전은 몸의 중심에 위치한 코어(Core) 근육인 하복부 근육으로 둘려 싸여 있다. 하복부 근육은 아기가 모태에서 호흡 없이 삶의 힘과 영양을 공급받기 위해 힘차게 움직이던 근육이었지만 태어나서 호흡을 시작하면서 점차 경직되기 시작하여, 나이가 들을 수록 서서히 그 범위를 넓혀가며, 위쪽으로는 폐의 아래 쪽 부분까지도 영향을 미치게 된다.
단전호흡은 들이 쉬고 (들숨, 멈춤), 내어 쉬는 (날숨, 멈춤) 행위를 한 단위로 진행한다. 들숨, 멈춤, 날숨, 멈춤은 호흡에 부담이 가지 않도록 주의하며, 각각 동일한 시간 간격을 주어 10회 정도 반복한다. 이때 처음엔 단전 부위에 양쪽 손가락을 살짝 얹고 호흡이 들숨과 함께 단전 부위에 모이고, 다시 날숨과 함께 이완되는 걸 느껴보다가, 익숙해지면 단전 부위에서 손가락을 떼고 호흡을 계속한다. 이러한 단전호흡은 몸의 기운을 강화시키는 효과를 가질 뿐만 아니라, 호흡과 함께 단전 부위에서 일어나는 힘의 변화에 자각을 집중하여 현재에 머무르며 호흡에만 전념하는 방식이다.
이러한 단전운동은 다른 사람들과 함께 해야 하는 그룹 운동이라고 하기 보다는 개인 운동이다. 단전운동의 기본방식을 토대로 자신에게 맞는 맞춤형을 구성하여 꾸준히 실행하는 것이 중요하다. 단전운동은 본인이 편리한 시간에 편리한 장소에서 언제든지 실행할 수 있으며, 이와 같은 꾸준한 노력은 단전운동을 생활화하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