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 돈을 벌어야 했다. 세 번 정도 옮겨 다니면서 까먹은 돈과 매장을 운영하면서 늘어난 카드 할부금이 목을 조여오는 듯했다. 빚에 쫓기다 스스로 생을 마감하는 사람들이 이해가 갈 지경이었다. 기하급수적으로 이자가 늘어나는 것은 아니지만 은행의 잔고가 빠져나가는 것을 보고 있으면 덜컥 겁부터 났다.
벌머서 채우지 않으면 구멍이 날 것이고 그 뒤의 나는 더 헉헉대며 살아야 할 것이 불 보듯 뻔했다.
그래서 쉴틈을 주지 않고 일을 찾아 다녔다.
왠만한 열악함도 견뎌보겠다고 다짐했었다.하지만 끝끝내 참지 못했던 것이 인간에 대한 존엄을 파괴하는 회사의 분위기였다. 작업 중 화장실을 갈 수 없어서 물을 마음껏 마실 수 없는 곳, 작업자들 사이에서 편파적 대우를 서슴지 않는 곳, 정직원과 아웃소싱 처우에 대해 극명한 차이를 보여주는 곳 등등 참을 수 없는 경박함에 자리를 박차고 나올 수는 없었지만 오래 다니지 못하고 그만두기 일쑤였다.
이런 내 모습은 가족들에게 끈기없는 사람으로 비춰졌고 들쭉날쭉하는 직장 때문에 경제적으로는 계속 궁핍함이 이어졌다.
잠깐 스스로를 자책하기도 했지만 그러지 않기로 했다. 아무리 가난해도 존엄을 포기할 수는 없었다. 지금도 같은 생각이다. 손과 눈이 빠른 편이라 일은 곧잘 했지만 꾀를 부리지 않는 성향이다 보니 어려운 일을 가리지 않았다. 그래서 손해를 보는 일들이 종종 생겨났다.
잘 해주면 호구 잡히고, 배려해 주면 권리로 아는 세상 덕분에 인간에 대한 희망까지도 버릴 지경이었다. 그리고 아르바이트를 그만 두었다.
1년 정도 최소한의 소비를 하면서 부모님 찬스를 쓰기로 했다. 그리고 공인중개사 시험 공부를 시작했다. 코로나 19로 수업을 듣기 위해 학원을 가기는 어려웠다. 온라인 수업을 수강하고 매일매일 같은 시간에 일어나 수업듣고 공부하기를 꾸준히 했다. 수업 중 들리는 낯선 용어들이 기억되지 않아 무슨 공부를 한 것인지 조차 의문일 때도 있었다. 과목 전체가 난해했다.
공부를 하면 할 수록 "법 없이도 사는 사람"이라는 말이 더이상 미덕이 아니었다. 모르면 놓치고 손해보는 것들과 알면 남보다 더 취할 수 있는게 곳곳에 숨어 있었다. 법학까지 할 필요는 없지만 알아 두어야 할 것들도 많았다. 공인중개사 시험과목 공부는 법 공부다. 너무 쉽게 생각했던 것은 아닐까.
직장 내에 사이코를 피해서 다른 직장으로 도망치면 더 강도높은 싸이코를 만나게 된다는 정설이 있다. 인간의 존엄이 무엇인지 고민조차 해 본적 없는 환경을 피해서 왔더니 높은 벽을 쌓아두고 올라 올테면 올라와봐 라는 듯 철옹성을 쌓고 거드름 피우는 곳을 향해 고개만 쳐들고 있는 것은 아닌가 회의가 들기도 했다.
온라인 수강권도 이미 결재했고 주변에 엄포도 놓았으니 몇 개월 공부했다고 포기하기는 남사스러웠다. 어차피 코로나19로 인해 일자리도 없고 쉬는 김에 하자는 마음으로 이를 악물었다. 귀에 들어오지도 않는 수업을 책상에 앉아 듣는 것만으로도 징벌받는 기분이었다.
그나마 민법과 학개론은 들을만 했다. 문과생들에게는 익숙한 과목이기도 하고 전적으로 암기에 의존하지 않고 이해를 통한 학습이 가능했다.
하지만 공법부터는 모든 단어가 튕겨 나갔다. 국토법이라는 것이 존재하는지도 몰랐던 1인으로서 그 광범위하고 치밀한 국토법을 접하면서 겁을 먹기도 했다.
1년 안에 1차, 2차를 다 공부해서 한 번에 합격하겠다고 각오했던 나 자신이 부끄러웠다. 무식하면 용감하다는 말이 있는 이유를 알겠다. 공법이라는 벽에 부딪히고 나서는 자신감도 바닥을 쳤고 공부에 대한 의욕도 사라졌다. 잠시 슬럼프가 왔던 것 같다. LH 직원들의 내부 정보 유출로 부동산으로 부당 이득을 취하는 특권층들이 생겼다는 이야기는 대한민국을 통째로 흔들었고 부동산법을 공부하는 나에게도 다소 충격을 주었다.
잘 살자고 법을 배우고 배운 법을 이용해서 사람들을 이롭게 하여 남은 내 삶을 정서적으로 풍요롭게 살고자 시작한 공부인데 이런 법을 교묘히 빠져 나가서 이득을 취하는 잡것들이 모두 특권층들 뿐이라는 사실을 눈앞에서 보고 나니 의문이 들었다.
과연 나는 이 공부를 해서 눈 앞에 놓인 유혹을 뿌리치며 건강한 거래를 할 수 있을까.
2021년 10월 마지막주 토요일, 32회 공인중개사 시험 1차를 치르고 나는 결과도 확인하지 않고 있다. 그리고 다시 취업을 위해 고군분투 중이다.
시험 자체를 포기한 것은 아니다. 빨리 자격증 따서 보란듯 개업해야지 했던 마음을 접었다. 누구에게 보여주기 위한 인생을 살지 않겠다며 은둔형 인생으로 방향을 바꿨는데 내면은 여전히 인정욕구가 가득했다.
지금 어떤 시간을 사느냐가 미래의 내 모습을 결정하는 것은 진리다. 하지만 그 시간이 다소 비루한 모습이더라도 정직하고 성실하면 되는 것 아닌가?
내 존엄만 스스로 지켜낼 수 있는 자리라면 미화원이라도 하겠다. 그렇게 마음먹고 돌아보니 세상은 또 다르게 보인다. 부디 타인의 시선과 말로 인해 휘둘리지 않게 내면을 강화하자.
여기저기 이력서를 넣고 면접을 보러 다녔다. 공부를 계속 하더라도 돈을 벌면서 해야한다, 이제는. 그리고 지금은 취업상태다. 이 회사도 오래 다닐 수 있을지는 시간이 지나 봐야 알 수 있다. 처음엔 다들 발톱을 숨기고 숨죽여 지켜보기만 할 뿐 아무 것도 보여주지 않는다. 그러다 적당히 라포가 형성되면 본색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이제는 제법 제조업 환경을 잘 이해하고 있는 것 같다. 나도 이젠 나 살 궁리부터 하고 있다. 한국에서 중년 여성이며 경단녀들은 설 곳이 없다. 오히려 어리고 경험없는 젊은이들보다 일을 하기는 더 좋은 분야도 있는데 인정받지 못한다, 더 큰 문제는 중년 남성들이다. 화려한 경력을 가지고 있지만 정년퇴임 후 건강한 그들도 갈 곳이 없기는 마찬가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