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타래를 사면 한타래 더 준다는 온라인 쇼핑몰에서 어렵지않게 실을 구매해서 작심하고 3일 동안 뜨개질을 하기로 했다.
공인중개사 시험 1차를 치르고 새해부터는 2차 공부를 해야 하는데, 작년처럼 집에만 있을 수가 없을 것 같아 아르바이트를 찾고 있는 중 이었다. 일에 쫓기지 않으면서 주말과 저녁이 보장되는 일을 해야 그나마 공부와 병행할 수 있을 것같다. 그 마져도 많은 유혹을 받겠지만, 더는 백수로 지낼 수가 없는 상황이 되었다. 구인구직 어플을 통해 이력서를 넣어 두고 기다리다가 연락이 오면 면접을 봤다. 이력서를 넣은 곳은 십여 군데가 넘지만 연락이 오는 곳은 두 세 곳 뿐이다. 방학 시즌에는 대학생들이 아르바이트에 몰려들어서 더욱 자리가 없다는 것이 아웃소싱 업체들의 설명이다. 그럴수 있겠다.
운이 좋게 연락이 온 곳이 내 마음에도 흡족하여 출근을 약속한 상태였다. 그러고 나니 아직 급여를 받은 것도 아닌데 이미 그런 것처럼 이것저것 필요한 것들을 구매했다. 1년간 길들여 놓았던, 필요하지 않으면 사지 않던 소비 습관이 무너지지 않게 하기 위해 최소한으로 썼지만 나에게 선물하는 기분으로 연말연시를 기념해 색색의 실을 과감하게 질렀다. 실을 택배로 받은 날은 다른 물건을 받은 때보다 더 기뻤다.
실을 받은 날부터 꽃 모티브를 하나 둘 뜨기 시작했
다. 수 십개의 모티브를 연결해야 하나의 작품이 완성될 수 있기 때문에 손이 놀고 있는 시간에는 무의식적으로 실과 코바늘을 잡았다. 손뜨개로 유명한 유투버의 영상을 한 번 보고 색감은 내가 원하는 것으로 변경했다. 머릿속으로 상상은 했지만 실물로 본 것은 없었기 때문에 꽃잎과 바탕색의 어울림을 시험해 보아야 했다. 그래서 마음이 급해졌다.
다행히 모티브가 반복될 것이라 어색함은 보안이 되었다. 그렇지만 예상보다 예쁘지 않아서 다소 실망스러웠다. 개별적으로 보면 봐줄만 하긴 했다. 하지만 여러 장을 배열해 놓으면 자연스럽지 않았다. 내 상상 속의 디자인과 실제 실 색깔이 매칭되지 않았던 것이다. 옷이든 뜨개실이든 직접 보고 사야하는 이유가 이런 차이 때문이었다. 다시 한번 아쉬운 마음을 남길 수 밖에.
모티브 하나하나는 사랑스럽다. "세번 긴뜨기에 물방울"을 뜨면 꽃의 중앙을 만든다. 다섯 번 이중 긴뜨기에 첫코와 다섯 번째 코를 연결하면 꽃잎 한장이 만들어진다. 보기보다는 작업량이 많다. 들인 공에 비해 완성도가 부족하다고 느껴지는 이유 중 하나다.
21년 마지막 날에 시작해서 해를 넘어 새해 연휴 내내 붙들고 있었더니 많은 모티브가 만들어졌다. 꽃이 없는 부분은 일부러 비움의 미학을 적용했던 것이었는데 다 만들어 놓고 나니 오히려 그렇게 비우지 않았다면 실이 부족할 뻔했다. 선견지명이었나 스스로 흐뭇해하며 3일 동안 완성을 시킨 것에 대견해했다.
실이 부족하면 더 구매하서 완성하면 되지...만 작정했을 때 완성까지 가지 않으면 내 기질상 미완으로 오랫동안 방치될 가능성이 농후하기 때문에 안도했던 것이다. 연휴가 지나면 아르바이트도 시작할 것이고 일을 하고 돌아와서 뜨개질을 한다는 것은 나에게는 득도한 것과 다름없는 일 이기에 한동안 실을 손에 잡는 일은 없을 것이다. 내가 나를 잘 아는 덕분에 요즘들어 편해진 것들이 많다.
연휴 마지막 날은 모아놓은 모티브를 연결했다. 그리고 마지막 보더 작업까지 완료.
짧은뜨기로 전체 윤곽을 정리했다. 짧은뜨기 한 번 만으로도 들쭉날쭉했던 외곽선이 어느 정도 정리가 되었다. 하지만 한 번 더 보더 작업을 해주고 나니 귀여움이 더해진 듯하다.
보더작업은 단순했다. 세 개의 사슬을 만들고 첫번째 사슬을 통과해서 걸고 나온 실로 짧은뜨기를 해준다. 그러면 레이스 끝의 느낌이 나는 보더가 만들어 진다.
코로나19로 인해 올해도 각자의 집에서 떡국을 먹기로 했다. 가족들이 모여 북적거리던 때가 있었나 싶을 정도로 까마득한 일이 되었다. 가족들도 못 모이는 신년 연휴를 어떻게 보낼까 고민하던 부모님이 올 해는 새해맞이 해돋이 여행을 가셨다. 혼자 남은 내가 무료하게 시간을 보내지않으려고 애쓰지 않아도 꽉찬 연휴를 보낸 기분이었다.
에어컨 덮개를 목표로 만들었는데 만들면서 용도가 여러 번 바뀌었었다. 테이블에 장식을 할까, 선반에 놓을까 등 이렇게 저렇게 상상해 보았지만 결론은 에어컨 덮개였다. 오래된 우리 집에가 가장 빈약한 구석이 에어컨이 서 있는 자리라서 말이다. 처음 계획했던 대로 에어컨에게 내 작품을 내어 주기로 결정했다.
막상 덮고 보니 어딘가 부족하다. 뭔가 하다 말았다는 기분이 든다. 썩 마음에 차지 않는다. 어째...그래도 우선은 그 자리가 최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