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오션펌킨 Dec 31. 2021

불안감을 잊기 위한 손뜨개

가방 뜨기

20년 말에 운영하던 매장을 접고 주저앉아 있다가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나에게 자기 효능감이라는 것을 느껴보도록 하기 위해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일까 찾기 시작했다. 작은 성공을 자주 해야 자존감도 올라간다는 말을 들어서 알고 있었기에 내 주변에서 쉽게 접할 수 있고 진입장벽이 가장 낮은 것을 찾아보다가 서랍 속에 넣어두고 잊고 있던 실과 바늘을 꺼내 들었다.

첫 시작은 수세미였다. 도안도 쉽고 평이해서 수세미 실 열 타래를 구매해서 열심히 떴다. 배송비 때문에라도 다량 구매할 수밖에 없었던 터라 내친김에 주변에 안부나 전하자는 마음으로 떴다. 색색의 털실을 잘 배색하면 단순한 모양이지만 예뻐 보인다. 수북하게 쌓인 수세미를 보면서 뿌듯했다.

여섯 개씩 예쁜 포장봉투에 담아 지인들에게 선물하고 커피를 얻어 마시던 기억이 새록새록하다.

두 번째 도전은 집에 오래전부터 굴러다니던 면사를 가지고 무엇을 할까 고민하다가 보틀 케이스를 뜨기 시작했다.

뜨다가 코가 한 두 개 빠지거나 더해져도 모양이 크게 틀어지지 않고 보틀에 끼워 놓으면 기능에 문제가 없으니 부담 없이 뜰 수 있어서 좋았다.

그 당시에는 실을 당기고 빼는 힘 조절이 서툴러서 같은 수의 코를 떴는데도 왼쪽과 오른쪽이 크기가 달라지는 마술을 부리고 있는 수준이었기에 뜰 수 있는 모양에 한계가 있었다. 그런 점에서 집에서 천덕꾸러기였던 실들은 연습용으로도 제격이었다.


작심하고 실을 골라서 작품을 뜨겠다고 도전한 것은 한여름 어느 날이었다. 날은 덥고 동영상 수업을 듣는 것도 지치기 시작한 때 즈음에 각성의 방법을 찾아야 했다. 얼음을 깨물어 먹고 커피를 리터로 마셔도 잠이 쏟아지고 몸이 늘어졌다. 코로니 때문에 도서관이나 카페를 가는 것도 조심스러운 일이었다. 오로지 집에서 버텨야 하는데 큰일이었다. 그러다가 유튜브에서 예쁜 카드지갑 만드는 영상을 보게 되었다. 이거다, 싶었다.

단순하지만 완성도 높은 카드지갑을 떠보자. 수업을 들으면서도 집중력 떨어뜨리지 않고 뜰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바로 실을 구매했다.

예상대로 짧은 시간에 완성할 수 있었고 만족도가 컸다. 선물을 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였다.

하나가 성공을 하니 또 다른 욕심이 생겼다. 필요한 것들을 만들어서 쓰고 싶어졌다. 사려고 하면 천편일률적인 디자인과 컬러가 넘쳐나고 조금 차별화된 상품은 가격이 턱없이 비쌌다. 카드 한 장, 핸드폰만 넣고 다닐 수 있는 가방 하나 만들자 하고 시작했다.

카드지갑을 뜨고 남은 실로 가장 평범한 짧은 뜨기 방식으로 간단한 가방 만드는 것도 금방이었다.

점점 자신감이 생기더니 자부심까지 커져갔다. 내가 원하는 색으로 갖고 싶은 디자인의 제품을 만들어보고 싶어졌다. 그 욕심 덕에 수업을 들으면서 뜨개질로 손놀림 하여 정신줄 잡아가며 무더운 여름을 보낼 수 있었다.

날이 선선해지면서 시험 일정에 맞춰 공부한다며 잠시 뜨개질에서 손을 놓았었다. 그리고 시험이 끝나고 공허한 마음을 달래 보려고 다시 남아있는 실을 만지작거렸다.

뜨고 남은 실이 남아 있으니 뜨개질에 대한 미련을 버릴 수가 없었다. 

등산배낭에 달고 다니는 작은 가방이 낡아서 바뀌야 했는데 어쩔까 고민하다가 떠보기로 작심했다. 핸드메이드의 단점은 완성도가 높지 않으면 민망하다는 점이다. 손으로 만들었기 때문에 허점도 눈에 잘 보이고 정교하게 마감되어야 할 부분에 허술함이 보이면 들인 공에 비해 아주 낮은 평가를 받게 되기가 쉽다. 그래서 시중에 기성품이 있을 경우 손으로 만든 제품은 들인 공에 비해 저평가를 받기 쉅다. 하지만 내가 쓸 거니까. 누가 뭐래도 내 새끼는 예쁜 거니까.

 다른 사람들이 만들어 놓은 가방 디자인을 검색하다가 응용하고 싶은 디자인을 발견하고 내가 가진 실을 가지고 적용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작업했다. 제한된 환경 안에서 만족감을 얻기 위해서는 많은 생각을 해야 했다. 떴다가 풀었다가를 반복하면 실이 손상되고 원하는 모양을 잡기가 어려워 지기 때문에 처음에 기획을 잘하고 조심스레 떠내려 가야 했다. 초보들의 애환이다. 

등산 배낭에 매달고 다녀도 무리가 가지 않을 만큼 실용성도 갖추어야 했다. 만들어서 사용 중이다. 충분하다. 

작게 떠놓고 보니 실이 가진 느낌이 좋았다. 그래서 가볍게 매고 다닐 수 있는 가방을 만들 수 있겠다 생각되었다. 남아있는 실의 양으로 만들 수 있을 것 같아서 이번엔 어깨에 메고 다닐 수 있는 크기로 디자인해서 떠내려갔다. 책 한 권, 보조배터리를 넣고도 모양이 흐트러지지 않는 강도를 확인했다. 만족스럽다. 

 나름 손재주가 있다고 생각했다가 겸손해지기로 했던 계기가 있었다. 핸드메이드 작품을 팔 수 있는 프리마켓에 입점해서 참가를 한 적이 있었다. 뿌듯한 마음으로 내가 만든 작품들을 펼쳐 놓고 관심받기를 기대하고 있었다. 오며 가며 호기심으로 들여다보는 사람들도 많았지만 하루 종일 있으면서 비참한 마음을 가누기가 어려웠다. 참가하는데 의의를 두자고 스스로 위로하며 마무리하긴 했지만 가슴이 아팠던 것은 사실이었다. 그리고 판매자로 등록하고 마켓에 자신이 만든 작품을 내놓은 다른 판매자의 상품들을 보면서도 더 많이 노력해야 한다는 배움을 얻은 하루이기도 했다. 한국 사람들은 평균적으로 손재주가 좋다. 다른 사람이 손으로 만들었다고 하면 면밀히 살펴보다가 무심히 내려놓고는 가면서 꼭 한 마디씩 한다.

"나도 만들겠다...."

남이 만들어 놓은 것을 보면 별로 어려울 것이 없어 보인다. 만드는 방법도 조금만 연구하면 알아낼 수 있을 것 같다는 마음도 든다. 나 역시도 그런 마음으로 시작했던 것 같다. 

하지만 막상 제대로 만들려고 하면 많은 노력을 들여야 한다. 그래야 다른 제품과도 차별화할 수 있는 무기가 된다. 그런 사실을 그때도 몰랐던 것은 아니었다. 젊은 혈기와 돈을 벌어보겠다는 목적 하나로 똘똘 뭉쳐져서 앞만 보고 달려 나갔던 것이었다. 다시 내 손으로 무언가를 만들어 보면서 예전에 나의 과오가 떠오르기도 했다. 단순히 내가 내년 봄에 매고 다닐 가방 하나 뜨면서 자기 성찰을 하게 되었다. 완성도가 높지 않아도 좋다. 내가 만족할 정도만 되면 세상 그 무엇보다 뿌듯하고 행복하다. 다 떠놓고 사진을 찍고 보니 참 좋았다. 

1년 간 준비했던 시험이 끝났다. 나는 내년에 2차 시험을 응시해야 한다. 1년을 더 준비해야 한다는 뜻이다. 백수로 놀면서 공부하는 것은 더 이상 할 수도 하고 싶지도 않았다. 그래서 다시 취업 전선으로 나섰다. 

중년 취업이 힘든 현실에서 여가부나 노동부에서 지원사업으로 하고 있는 교육들이 있어 참여하고 있다. 하지만 코로나19로 모든 수업이 온라인으로 이루어지고 있어서 여전히 집콕하고 있는 형편이다.

색깔이 예뻐서 구매는 했지만 당장 무엇을 만들지 결정하지 못해서 서랍 구석에 넣어 두었던 실을 한참 들여다보다가 내년 봄에 매고 다닐 가방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에 뜨개질을 시작했지만 내년이 기대된다. 

미래에 대한 두려움으로 인해 현실 공간이 불안감에 휩싸이며 한 발짝 앞으로 나아가는 것조차 버거워지는 것을 눈앞에서 경험하고 나니 아찔했다. 영화를 보는 것도 강의를 듣는 것도 도움이 되지 않을 때가 있다. 그때는 단순한 노동으로 몸을 움직여 주는 것이 가장 효율적으로 감정을 다스릴 수 있다. 경험으로 체득한 것이었다. 뜨개질은 내 두려움을 한 순간에 날려버려 주었다. 

이 실은 신축성이 있다. 그러면서 조금 힘을 주어서 뜨면 그 짱짱함이 좋다.

실로 만든 상품들은 예상했던 아우트라인이 나오지 않을 때가 많아서 잘 만들어 놓고 나서도 실망하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코나 실은 각진 가방을 만들 때에도 어떻게 힘 조절을 하느냐에 따라 다른 느낌을 만들어 낼 수 있는 장점이 있다.

다른 사람이 이미 만들어 놓은 영상을 보면서 참고할 부분은 참고해 가며 꼬박 하루를 들여 만들어 놓고 보니 좋았다. 가방 길이가 적당한지 확인하기 위해 여러 번 어깨에 둘러보고 어떤 옷과 어울릴까 고민해 보는 시간도 즐거웠다.

 

작가의 이전글 청량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