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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션펌킨 Dec 17. 2021

청량산

겨울과 함께 만나다

역사와 이야기가 곳곳에 놓여있는 청량산은 모습도 멋지지만 그 안에 품고 있는 이야기가 더욱 매력적인 산이다. 지금은 무너져 터만 남아있지만 산에 오를 때마다 선조들의 숨결이 살아있는 역사를 공유하고 있는 것 같다. 그 당시 살았던 우리 조상들의 삶을 살짝 들여다보는 기분이 들기도 한다. 지난 추석 가족들과 함께 명절 내내 쌓인 군살을 빼겠다고 올랐던 청량산을 12월 중순에 산동무와 함께 오르기로 했다.

청량산 도립공원 입구에서부터 입석이 있는 곳까지 한참을 차로 올라와서 등산로가 시작된다. 여러 곳에 등산 입구가 있지만 주로 알려진 등산로 코스가 이곳이다. 시작부터 계단도 길고 경사가 급한 편이다. 등린이들이 초입부터 겁을 먹을 수 있는 모습이다. 하지만 산을 오르면서 볼 수 있는 노송들과 수려한 암석들을 놓치지 않으려면 입석이 있는 위치에서 시작하는 것을 추천한다.

이 십여분 정도 쉬지 않고 오르다 보면 숨 고르기를 할 정도의 둔턱이 나타난다.

둔턱에 올라 잠시 숨 고르기를 하고 두껍게 껴 입었던 윗도리를 벗어 배낭에 넣고 물 한 모금 머금고 다시 출발을 준비했다. 기온이 영상 4도 정도여서 추위가 느껴지지는 않았다. 그 기점에서 잠시 쉬면서 산을 둘러보다가 청량사를 발견했다. 아주 멀리 보이지만 고즈넉한 분위기는 고스란히 전해졌다.

그냥 지나칠까 하다가 사진을 찍기 위해 잠시 멈췄다.  

언뜻 보면 산의 일부 같아서 절이 있는 건지 잘 모르고 지나칠 수도 있을 정도로 산과 일체감이 느껴졌다. 추석에 왔을 때는 나뭇잎이 무성하게 숲을 이루고 있어서 절의 모습을 자세히 볼 수는 없었다. 산 능선을 중심으로 코스를 잡고 등산을 했기 때문에 청량사를 들를 기회가 없었다. 잎이 모두 지고 앙상한 가지 사이로 산의 윤곽선이 모두 드러난 지금 시야가 확보되어 산에 대해 더 많은 것들을 볼 수 있게 되었다. 산은 계절마다 와 보아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는 듯하다.

청량사

단아한 건축물을 둘러싸고 있으면서 병풍처럼 그 뒤를 버텨주고 있는 기암괴석들도 장관이다. 마치 1월 달력 사진을 보는 기분이랄까. 하산길에 일부러 청량사를 들러 내려올 예정이다. 국내에서 절은 산 중에 흔하게 볼 수 있는 것이지만 산에 따라 절에 따라 각자의 이야기가 있어 매력이 있다. 들러서 잠시 쉬고 가려한다.

김생굴

이곳은 김생이 글공부를 하고 과거급제를 하였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는 장소이다. 사진 왼쪽의 굴은 직접 사람이 들어가 아늑하게 몸을 숨길 수 있을 정도로 깊다. 그곳에 집을 짓고 살았던 것으로 추정된다. 바닥을 자세히 보면 깨진 기와들이 흩어져 있다. 김생이 떠나고 나서 관리가 되지 않아 시간에 의해 허물어진 것이 아닐까 싶다. 산에 청명한 정기가 흘러서인가, 옛 선비들이 공부를 하고 마음 수련을 했다는 이야기들이 곳곳에 놓여 있다. 사진을 찍는 동안에도 얼음이 녹는 소리가 쩌렁쩌렁하게 들렸다. 밤새 영하의 기온으로 냉기가 서렸다가 아침에 기온이 풀리면서 돌과 함께 얼었던 얼음이 녹으면서 갈라지는 소리가 동굴을 울리는 듯했다. 지금이라도 다시 섯가래를 세우고 집을 지어도 손색이 없을 것 같은 명당이란 생각이 들었다.

자소봉

산 중간중간에 암자 몇 곳을 지나면서 오르다 보면 자소봉 바로 아래에 경사가 아주 급격한 철계단을 마주하게 된다. 올랐다가 다시 내려와야 한다는 사실에 잠깐 고민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오르고 나면 절대 후회하지 않는 절경을 보게 되어 내려오면서 감탄을 금치 못하는 곳이다. 아슬아슬함이 느껴지는 경사각 때문에 오르고 나서도 몸이 떨렸다. 자소봉에 올라서 청량산의 전체적인 모습을 둘러보며 잠시 피로를 잊었다. 날씨가 흐린 탓에 멀리까지 보이지 않았던 것이 안타깝지만 산허리에 걸쳐있는 안개로 신비로운 분위기를 자아냈다. 올 때마다 다른 분위기를 만들어 내는 산의 매력이다.

자소봉을 내려와 하늘다리로 향하는 길이다. 이 길의 반대편은 경일봉으로 가는 길이 잘 만들어져 있는데 동절기 사고 방지를 위해서인지 등산로 탐방 금지라는 플래카드가 크게 가로놓여 있다. 경일봉을 찍고 자소봉으로 올 계획이 틀어진 이유가 탐방 금지 문구 때문이었다. 자소봉을 뒤로하고 가면서도 아쉬웠다. 추석에 경일봉을 가면서 좋았던 기억이 떠오르니 더 미련이 남았다. 하지만 안전 산행을 위해 다음으로 미루기로 했다.

계단의 폭도 좁고 경사가 높아 내려오면서도 다리가 떨릴 지경이었다. 스틱을 사용하기에도 비좁은 폭의 계단이라 스텐 손잡이를 꽉 잡으며 내려왔다. 워낙 오래된 길인 듯하다. 철판 위에 올려놓은 고무마저도 닳고 달아 쿠션감이 조금도 없다. 다 내려오고 나서야 안도감이 들었다. 

철계단을 다 내려오면 바로 볼 수 있는 나무 현판이 늘 마음에 들어온다. 이 황이 직접 쓴 글을 옮겨 적어 놓았다고 하니 한 번 더 읽고 가게 된다. 이 황이 청량산에서 몸과 마음을 수련하며 글공부하던 때를 상상해 보면서 말이다. 

하늘다리

추석에 가족들과 왔을 때는 하늘다리에 도착했을 때쯤엔 기진맥진했던 것 같은데 오늘은 가뿐하다. 바람소리가 귓불을 스치며 공포감을 줄 정도였는데도 마냥 신났다. 천천히 걸으면 오히려 흔들림이 크게 느껴져서 공포심이 커지기 때문에 빠른 걸음으로 앞을 보며 마구 걸었다. 하늘다리 끝에 도착할 때쯤엔 한번 더 건너볼까 싶을 정도로 재미있었다. 하지만 다시 돌아올 길이기에 그냥 간다.

하늘다리 주변 산봉우리가 장관이다. 하늘다리가 없었다면 아주 깊은 골짜기를 내려갔다가 올라가야만 저 산을 밟아볼 수 있었을 것이다. 옛길이 아득하게 보이기는 하는데 탐방 금지 현판으로 오래전부터 막혀있는 상태였다. 몸이 가볍고 날렵한 사람만이 오르고 내릴 수 있을 것처럼 보이는 위태로운 길이었다. 짚신 신고 광목으로 만든 옷을 입던 사람들이 망태기를 들고 그 길을 오르지 않았을까 하는 상상을 해 본다.

청량산의 정상석, 장인봉이다. 거쳐오는 여러 봉은 작은 봉우리이고 장인봉이 청량산 봉우리 중 가장 높다. 모두 12봉이 청량사를 둘러싸고 있어 연꽃 모양을 연상시킨다고 하여 청량산과 청량사가 유명하다고 들었다. 하늘 위에서 내려다보아야 정확히 확인할 수 있을 일이다. 하지만 산의 능선을 둘러보면 어떤 그림일지 상상으로 그림이 그려진다. 산 아래에서 올려다보면서 예상했던 높이보다는 체감높이가 낮았다. 산의 경치를 더 자세히 경험하려면 정상석 뒤로 나있는 길을 가면 된다. 

산동무와 나를 기다리는 일행이 주차장에서 기다리고 있는 관계로 가장 빠른 길로 하산길을 결정했다. 

다시 하늘다리로 돌아와서 산을 올라가면서 등 뒤로 넘겨두었던 산의 풍광을 잠시 감상하기로 했다. 왔던 길을 돌아갈 때의 묘미는 또 이렇게 맛볼 수 있다. 갈 때 보던 모습과 뒤돌아 올 때의 모습은 다르다. 같은 길로 돌아가다가도 산에서는 길을 잃을 수 있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작년 여름 태풍으로 청량산도 피해를 크게 입었다고 한다. 산 곳곳에 뿌리를 드러내어 쓰러져 있는 노송들을 자주 보았다. 눈앞에 보이는 고목들은 무슨 이유로 죽었을까. 높은 산에서 살아내었던 나무의 시간에서 기개가 전해졌다. 죽은 후에도 멋지구나.

추석에 가족들과 능선을 타면서 즐거웠던 기억이 새록새록하다. 산동네에서 나고 자란 아빠와 형제들은 마치 어린 시절로 돌아간 듯 나무 막대기를 주워서 지팡이로 짚거나 나뭇가지를 훔쳐내며 마냥 즐거워했다. 저 너머 능선을 보면서 그 시간들을 잠시 추억해 보았다. 

청량사로 내려오는 길을 하산 방향으로 잡고 한참을 내려왔다. 생각보다 골짜기가 깊어 내려오는 길도 경사가 높았다. 절의 기와가 보이고서야 안도할 수 있었다. 절까지 내려오는 도중에 아늑한 장소에 앉아 간단하게 식사를 했다. 날이 흐려 하늘은 어두웠지만 바람 한점 없이 포근한 기온 덕분에 편하게 쉬었다. 따뜻한 음식까지 먹고 내려오니 청량사가 더 반가웠다. 

우측에 나란히 놓여있는 옹기들이 정말 정겹다. 

절 앞에 있는 석탑은 실제로 높이가 엄청 높다. 볕이 잘 드는 곳이라 봄가을로 사람들이 많이 모여 쉬어가곤 했다. 지금은 찬 바람이 스치고 있어 휑하다. 하지만 산과 마주하고 있는 모습은 그 위용이 압도적이다. 

오랜 역사를 품고 있는 절이 생각보다 아기자기한 분위기를 풍기는 이유가 정원수 때문이 아닐까 싶었다. 위엄 있고 단아한 건축물과는 다르게 작고 아담한 정원수들과 곳곳에 놓인 화분에 다유기들이 웃음을 머금게 했다. 

고무신에 담겨있는 다유기들을 한참 내려다보다가 한 컷 찍어 보았다. 온화한 정서를 가진 사람이 만들었으리라 생각하며 마음에 따뜻함을 담았다. 아마도 신을 수 없어져서 필요 없는 신을 버리지 못하다가 아이디어를 냈으리라. 

외부인은 나와 산동무 둘 뿐이었다. 일일이 다 손으로 만들었을 정원을 눈에 담으며 살아 보고 싶은 절 순위에 청량사를 포함시켜 보았다. 기회가 된다면 살아보고 싶다. 

이 사진은 지극히 개인적인 느낌으로 찍었다. 위와 아래로 잘라서 분위기를 구분할 수 있을 정도로 색다른 장면이라 한 컷에 담아 보았다. 뒷짐을 지고 있는 동자에게 목도리와 모자를 씌워 놓은 이의 마음이 느껴져서 마치 온기가 흐르는 것 같았다. 한참을 바라보며 머물렀다가 내려왔다. 

절을 다 내려오면 찻집이 있었다. 여유롭게 대추차 한 잔 마시고 가면 좋겠다.

청량사에서 차도로 내려오는 길은 포장으로 잘 다듬어져 있었지만 경사가 커서 차가 오르기에도 벅찰 정도로 힘겨웠다. 눈이 오는 날에는 하산하기도 힘겨울 것 같은 길이었다. 스틱을 의지해서 뒤로도 걷고 앞으로도 걸으며 무리 없이 내려왔다. 다 내려와서 바로 보이는 비석에는 어느 선비의 감상이 적혀있다. 산멍을 자주 하던 사람이 쓴 글인 듯하다. 

산행 앱을 실행시켜 등산경로를 백업할 수 있다. 출발부터 끝날 때까지 산행의 로그를 기록하고 저장까지 할 수 있다. 1년 넘게 사용하다 보니 수많은 데이터가 쌓여있다. 처음엔 신기하고 뿌듯하기만 했는데 조금씩 기록을 이용하는 방법도 알게 되었고 산길을 찾는데 수월해졌다. 혹시 다른 사람이 내가 갔던 길을 가고 싶어 한다면 도움이 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꼼꼼하게 기록을 놓치지 않으려고 애쓰고 있다. 

봉화군 홈페이지에 들어가면 청량산에 대한 정보가 더 많이 있다. 산행 전 찾아서 등산계획도 세우고 계절에 따른 필수 장비를 챙기는데 도움을 받았다. 내년 추석에 또 가족들과 올 산이다. 이젠 익숙하게 느껴지기까지 한다. 산동무도 만족해하며 하산 후에도 한참을 청량산 이야기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수다를 떨었다. 초입에서 겁을 먹고 도전조차 하지 않았던 여행 동무들도 아쉬워하며 한참을 사진과 함께 이야기 꽃을 피웠다. 

모두 같이 오르는 그날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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