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여 년을 넘게 부부로 살아온 부모님은 자주 다투는 편이었다. 자식의 시선에는 그 다툼이 늘 불안했다. 나이가 들어 다양한 관계를 경험하다 보니 크게 걱정할 문제는 아니라는 생각에 안도하기도 했었다. 하지만 불편한 것은 어쩔 수 없다. 추억을 만들기 위해 여행을 계획하고 떠나지만 출발부터 다툼이 시작될 때도 있다. 출발 전 차에 기름이 충분히 채워져 있지 않는 것, 차바퀴의 공기압을 체크하지 않은 것, 차 내부가 정신없이 어질러져 있는 것 등등 관점이 다른 부분에 대해 항상 같은 주제로 다투고 같은 이유로 화를 낸다.
주유를 하고 공기압을 체크하고 자동세차장에서 외부 세척하면서 내부 청소도 같이 하는 것도 여행의 과정이라고 하는 엄마와 출발일 전에 미리미리 준비해 놓고 당일에는 바로 여행지로 출발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하는 아빠의 주장은 40년이 넘어도 팽팽하게 맞선다.
강원도 속초의 설악산 공룡능선을 타자고 제안을 한 사람은 엄마였다. 출발하는 날에도 같은 문제로 이야기가 오고 갔었다. 하지만 아빠가 크게 문제 삼지 않고 넘어갔다. 하지만 산행을 마친 다음 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동해안 바닷가를 드라이브하는 중에 차 안과 밖의 기온 차로 인해 차 앞 유리가 뿌옇게 되면서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에어컨을 켜고 바람의 방향을 아래로 내리라고 하는 아빠와 다른 루틴을 고집하는 엄마가 티격태격하다가 큰 소리가 났다.
마음에 들지 않으면 시키지 말고 본인이 직접 하면 되지 않나 하는 불편한 마음이 들었다. 한 편으로는 엄마가 주로 관리하는 차니까 미리 처리를 해주면 서로 큰 소리를 낼 필요가 없지 않나 하는 답답함도 동시에 들었다.
비단 이 날만의 일이 아니었다. 한 사람만 양보하면 될 일이다.
물론 일방이 무한대로 양보 하기는 어렵다. 상대가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을 잘 가려서 지켜주면 될 것 같은데 자세히 들여다보면 어느 한쪽이 무심하다는 생각이 든다. 디테일하게 기억하지 않고 그 순간만 넘기고 나면 늘 같은 자리에 있는 것 같다. 그러다 보니 매번 같은 일이 반복되고 여러 번 자신의 의사를 밝혔던 쪽에서는 무시당하는 기분이 들 수도 있겠다 싶다.
가끔은 중재에 나서 보기도 하지만 그래 봤자 소용이 없다. 그 와중에 엄마의 재치로 대화의 주제가 바뀌었다. 해안선을 따라 달리던 중 휴휴암 이정표를 보았고 들렀다 가겠냐는 물음의 제스처를 보냈다.
그로 인해 아빠의 잔소리가 멈추었고 화제는 급변했다.
보태서 내가 한 번도 가본 적이 없었다는 이야기에 적극적으로 차를 돌려 암자가 있는 곳으로 달려갔다.
잠시 무거운 공기 가득한 차 밖으로 나와서 한숨 돌릴 수 있겠구나 하는 마음으로 들어섰는데 한눈에 모든 근심이 날아가는 전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와와~~ 하는 탄성과 함께 암자를 한 바퀴 돌았다.
파도가 바위를 치며 부서지는 모습을 한참 바라보다 정신이 맑아졌다. 사방을 둘러보며 연신 감탄해 마지않는 나를 보며 엄마도 함께 즐거워했고 좋은 장면을 남기기 위해 같은 장소에서 수십 장의 사진을 찍었다. 그런 우리를 바라보는 아빠의 모습도 평화로워 보였다.
한참을 바닷가 돌 위에 머물면서 파도를 바라보았다. 소리만 듣고 있어도 마음이 좋았다. 잠시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고 돌아보니 마냥 좋아서 천진난만한 소녀처럼 사진을 찍고 있는 엄마가 보였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차 안에서 세상 심각하게 다투던 사람이 맞는가 싶어 웃음이 나기도 했다.
부모님의 다툼은 오래가지 않는다는 점에서 안도감은 있다. 언제 그랬냐는 듯이 알콩달콩하는 모습을 볼 때면 웃프다. 철이 없던 때는 그런 두 분의 모습을 보며 결혼에 대한 부정적 생각을 많이 했었다. 사랑해서 결혼을 했지만 세월이 흘러 그 사랑은 이미 퇴색해 버린 것 같고 의무감이나 책임감으로 묶여 있는 것 같은 모습에 가족의 의미에 회의적이 되곤 했었다.
나는 예민한 사람이다. 어린 시절에는 감수성이 풍부하지만 감정 처리에는 다소 서툰 면이 있었다. 외부에서 오는 자극에 대해 대처하는 방법도 몰라서 나의 동굴로 숨어버리기를 자주 했다. 잠적...이라고 하는 주변 사람들을 걱정시키는 짓을 자주 했다. 그리고 고민이 해결이 되거나 스스로 결론을 내리고 난 후라야 다시 동굴 밖으로 나왔다. 그렇게 예민하고 불안한 나는 가족 안에서도 위로를 받거나 상의를 할 수가 없었다. 부모님을 보면 더 불안해지고 복잡해졌기 때문이다.
객관적으로 보면 아무런 문제가 없는 부부였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그 당시 두 분이 참 불안했고 불편했다.
속초에서 주문진으로 달리는 차 안에서는 치열하게 다투시던 두 분이 휴휴암에 내려 바닷가를 보고 여기저기 암자를 돌아보고 나더니 다시 차에 오를 때 즈음엔 아무 일 없던 것처럼 회복되었다.
서로를 너무 잘 아는 관계의 아이러니인가.
매일 같은 이유로 다투다 보면 상대방이 왜 화를 내는지 알 법도 하다. 그렇지만 계속 부딪히는 이유는 알면서도 서로 고치지 않는다는 것이 아닐까. 무심하게 지나치거나 그 부딪힘을 무겁게 여기지 않기 때문인 것이 아닐까. 그러니 그 순간은 치열하게 다투지만 환경이 바뀌면 화제가 곧 바뀌고 결론 없이 끝이 나버리는 것 아닐까.
가끔 다정한 노부부를 볼 때가 있다.
허리가 굽은 두 분이 손을 잡고 다정하게 걸어 다니시고 음식을 떼어 서로의 입에 넣어 주는 부부가 있다는 것이 신기하지만 간혹 있다. 그분들을 자세히 지켜보면 해답은 말씨에 있다. "고맙다", "미안하다", "예쁘다"는 말이 자주 등장한다. 그리고 온화하다.
휴휴암은 두 분의 과거를 소환하게 했고 추억을 이야기하면서 차 안은 다시 평온해졌다. 점심은 어디서 먹을까 집에 가는 길에 어디를 더 들려볼까를 고민하며 도착하는 시간 내내 참 즐거웠다.
가족이란, 부부란 내가 정의 내릴 수 있는 말이 없다. 아직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