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인중개사 시험 준비를 하겠다고 결심하고 비대면 수업을 위한 수강신청을 했지만 처음엔 비대면 수업에 적응이 되지 않아 하루 두 세강 수업을 듣는 것도 쉽지 않았다. 책상에 하루 종일 앉아만 있어 본 지가 얼마만이었던가.
5, 6년 정도 자영업을 하겠다고 여기저기 움직이며 돈을 벌기 위해 바둥거렸었다. 하지만 실패했고 자영업을 하는 동안 쏟아부은 돈을 갚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가리지 않고 하려고 애썼다. 자영업을 하다가 다시 월급쟁이가 되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라고 주변에서 말해주었지만 나는 다시 월급쟁이가 되는 것이 두렵지는 않았다. 오히려 안정적으로 매달 돈이 들어오는 것이 피폐해진 나의 정신마저도 치유해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역시 복병은 내부에 있었다. 제조업에서 단순 보조 역할을 할 수 있는 아르바이트를 지원해서 했다. 몸을 바쁘게 움직여야 잡념이 들지 않고 실패에 대한 과거에서 잠시나마 벗어날 수 있을 것 같아서였다. 더불어 근무시간 내내 몸을 움직일 수 있는 일을 하다 보면 돈도 벌고 몸도 건강해질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작업장 내에서 함께 일하는 사람들 사이의 텃새는 예상보다 거칠었다. 일을 잘해도 눈 밖에 날 수 있고 나이 차이가 많이 나서 그들보다 많이 어려도 무시를 당했다. 아부를 해주기를 바라는 관리자는 내가 눈엣 가시가 되어 어려운 일만 골라서 시키기도 했다. 내게 놓인 상황이 어떤 상태인지 구분이 안될 때야 모르고 넘어갔지만 부당한 차별을 알고 나서는 참을 수가 없었다. 나의 안위를 위해서라기보다 쥐꼬리만 한 힘을 지녔다고 하는 사람들이 그렇지 못한 다수를 상대로 권력을 휘두르는 모습에 어이가 없어서 눈뜨고 볼 수가 없었다. 내가 아니라도 이미 많은 사람들이 당했었고 내가 나가고 난 후에도 그들의 갑질은 변함이 없을 것이기에 물이라도 흐려 놓아야겠다 싶어 미꾸라지 역할을 자처했다.
영화 Le Tour: My Last 49 Days 2016 함께 작업했던 사람들에게 부당함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것은 스스로를 죽이는 일이라고 일러주고 자신감을 가지고 다른 직장을 찾아보라고 했다. 조금 더 용기를 내면 좀 더 좋은 환경에서 일할 수 있다고 독려하고 나는 유유히 그곳을 나왔다. 그 후론 다시는 제조업 쪽으로 일을 하지 않기로 다짐했다. 그런데 일자리는 쉽게 구해지지 않았다. 어쩌면 현실도피를 위한 방편으로 공인중개사를 선택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미 내가 선택한 것이기에 열심히 해보겠다고 다짐도 하고 계획표도 짜면서 하루하루를 충실하게 보냈다.
그러나 맘 같지 않았고 졸리고 늘어지는 몸을 다잡기가 어려웠다. 계절의 영향도 없진 않았다. 그러던 중에 만난 이 영화는 참으로 오랜만에 나의 온몸을 꿈틀거리게 했다.
자전거를 배운 계기는, 돈을 덜 들이고 원하는 곳에 갈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자전거를 타는 것이라 생각하고 나서였다. 연료도 필요 없고 건강한 몸과 정신만 있다면 시간을 들여 어디든 갈 수 있을 것이라는 판단으로 일단 배우기부터 하자는 마음으로 집 가까운 학교 운동장에서 새벽마다 자전거 타기를 연습했었다.
모래운동장이라 바퀴가 잘 돌아가지 않았지만 오히려 중심을 잡는 연습에는 도움이 되었다. 넘어지고 일어서고를 수없이 반복하면서도 재미있었다. 내 기억엔 며칠 만에 중심은 잡을 수 있었다. 중심잡기에 성공한 이후론 운동장 50바퀴 돌기를 목표로 매일 새벽 연습을 했던 것 같다.
그리고 드디어 자전거 도로로 나갔던 날, 떨리고 무섭기까지 했다. 처음엔 내가 다칠까 봐.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속도가 날수록 내가 다른 사람을 다치게 할까 봐 두려워졌다. 그래서 안전 라이딩을 늘 마음에 새기곤 했었다. 늘 그렇듯 자전거에 빠진 후론 수년간 자전거만 탔었다.
무슨 이유인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자전거를 손에서 놓은 지 꽤 오래되었다. 그러다가 만난 영화를 보며 당장이라도 끌고 나가 달리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다.
프랑스에서는 해마다 자전거를 잘 탄다는 전 세계 라이더들이 모여 대회를 한다고 한다. 무심히 스친 TV 화면에서 자전거를 탄 수많은 사람들이 뭉쳐서 마치 바닷속 떼로 몰려다니는 물고기들이 움직이는 것처럼 꼬불꼬불한 길을 함께 달리는 모습을 본 적이 있었다. 그런가 보다 하고 지나쳤던 그 장면이 바로 이 대회를 생중계해주는 방송이었던 것이다. 자전거를 타는 것에는 관심이 있었지만 다른 사람들이 자전거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어떻게 타는지에는 관심이 없었다는 말이다. 늘 내 중심적으로 세상을 보는 관점을 반성도 해보았다. 선수들은 그 긴 코스를 무더위에 완주해야 한다. 그중 가장 빨리 들어온 선수가 그 해의 승리자가 되는 것이다. 그 영광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값진 것일 것이다.
자전거를 탄다는 것은 속도의 완급조절 능력도 중요하다. 외부 사물이나 사람과 충돌이 일어나지 않도록 항상 전방을 주시해야 하며 주위를 살펴야 한다. 예측되는 위험이 있으면 어디로 우회하여 피할 것인지도 빠르게 판단해야 한다. 우선 멈추는 것이 가장 안전할 수 있지만, 자신의 속도가 이미 빨라서 급하게 멈추기가 힘들다면 천천히 속도를 줄이며 진로를 바꿔야 한다. 여러 번 가 본 길은 익숙하기 때문에 예측이 가능하다. 그러나 처음 가는 길은 평소 속도보다 낮추고 주변을 잘 살펴야 한다.
그런데 29일의 긴 여정을 하루 종일 자전거를 타며 완주한다는 것은 온 신경을 길과 자전거와 나만 집중하여 달린다는 뜻이다. 준비된 체력이 있어야만 버텨낼 수 있는 과정이다.
오랜 기간 준비한 사람들도 도중에 포기할 수 있는 강도 높은 대회를 어느 젊은 암 환자가 번외 도전을 하기로 했다. 그는 한국인, 26세의 젊은이였다.
억울할 만도 하다. 24세, 한창 혈기왕성한 젊은이가 암 판정을 받았다. 처음엔 살고자 항암을 했다. 암 중에서도 희귀 암이라 완치 전력(前歷)도 없었고 안타깝게도 계속 재발했다. 2년 넘게 항암치료를 받다가 포기하고 죽기 전에 꼭 해 보고 싶었던 꿈에 도전해 보기로 했다. 암을 이겨내고 이 대회에서 우승을 했던 선수의 일기를 읽으며 자신도 그와 같이 되고자 투병생활을 버텨왔지만 그의 몸은 뜻대로 나아지지 않았다. 남은 힘을 쥐어 짜내서 죽기 전 발악하는 심정이 아니었을까. 여느 영화, 드라마에서 볼 수 있을 법한 기적을 기대해 보았을지도 모른다. 나라면 그랬을 것이다. 하나님과 딜을 해서라도 내가 이기면 살게 해달라고 수천번도 기도했을 것이다. 응답이 어떻게 돌아오든 해놓고 보자는 심정이었을 것이다.
26세 암 환자가 어려운 도전을 한다고 하니 도움을 주겠다는 사람들이 하나 둘 모였다. 준비하는 과정도 쉽지는 않았다. 끝까지 만류하는 이들도 있었고 응원하는 이들도 있었다. 그는 뜻을 굽히지 않았고 결국 프랑스에 도착하여 그 도전을 시작했다. 셋이 출발했다가 한 시간도 못돼 멤버 중 한 사람이 자전거와 함께 넘어지며 오른쪽 팔을 크게 다치는 사고가 일어났다. 그래서 결국은 둘만 달리기로 했다.
라이딩을 할 때 많은 사람들이 함께 달리면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체력 저하가 올 때 서로를 응원해주는 역할을 하고 조금 더 힘이 남아있는 사람이 앞에서 바람을 막아주기도 한다. 혼자 보다는 둘이, 둘 보다는 셋, 셋 보다는 여럿이 함께 달리는 것이 그래서 중요하다.
그래도 그는 신났다. 달릴 때만큼은 자신이 암환자라는 것을 잊을 만큼 희열을 느꼈다. 자신을 돕는 이들에 대한 고마움 때문에라도 힘이 났을 것이다.
하지만 그가 하루에 달릴 수 있는 거리는 제한적이었다. 일반 선수들이 하루에 한 코스를 달릴 때 그는 한 코스를 이틀간 달려야 했다. 의욕은 넘치지만 몸은 뜻을 따라주지 못했다. 힘이 떨어지면 누워서 쉬어야 했다.
초반에는 길을 안내하는 팀이 지도 판독에 오류가 생겨 잘못된 길로 접어들면 돌아 나와야 할 때가 여러 번 있었다. 현지 가이드의 도움을 받았지만 그 역시도 지도를 봐야 길을 찾아갈 수 있는 정도였기 때문에 실수를 할 수 있었다. 지금이야 GPS만 켜놓으면 내가 원하는 길을 쉽게 찾을 수 있고 가는 중에도 진로를 바꾸는 것이 어렵지 않지만 불과 10여 년 전, 그것도 프랑스였으니 그 상황이 얼마나 답답했을지 알 것도 같다.
대놓고 불만을 표현하지는 않았지만 그의 뒷모습에는 짜증이 보였다. 두 사람 모두의 마음이 공감이 가서 그저 안타깝게 바라보기만 할 뿐이었다.
일반 선수들조차 중도에 탈락하는 경우가 많은 난코스에 진입했다. 하지만 그는 해냈다. 일부러라도 더 힘을 냈을 것이다. 죽는 것보다는 낫다는 마음으로.
고지를 눈앞에 두고 달리는 기분은 어떨까. 눈앞에 보이지만 자꾸 멀어졌다 가까워졌다 한다. 꼬불꼬불한 길을 달려 올라야 하니 정상이 보였다가 사라졌다 한다.
그래도 달려본다. 심장이 멈출지라도.
그의 고군분투를 정상에서 지켜보는 동료의 마음은 어떨까. 영화를 보는 내내 마음으로 그를 응원하는 나와 같을까. 대신 달려줄 수 있다면 차라리 내가 달려보겠다는 심정, 나는 그랬다. 한 코스만이라도 그를 대신해서 달려 줄 수 있다면 이렇게 가시방석이지는 않을 것만 같았다.
짠하고 뭉클한 기분이 영화를 보는 내내 계속됐다.
태어났다면 모두 죽는다. 우리는 모두 죽음 앞으로 하루하루 옮겨 가는 것이다. 그래서 그 과정이 중요한 것이다. 2년 여의 항암치료를 견디며 재발하는 암에 대해 도전하고 싶었을 것 같다. 무기력한 내가 싫어서 뭐라도 해보고 싶었을 것이다. 어차피 죽지만 죽는 그 순간까지 의미 있게 살다 가고 싶었을 것이다. 나도 그렇다.
자신도 암과 싸워 보았으니 다른 암환자들에게 자신의 도전이 어떤 의미일지 알 것이다. 단 한 명이라도 응원받기를 바라며 간절한 마음으로 달렸다.
이 장면은 그냥 먹먹했다. 내 삶 같았고 내가 처한 현실 같기도 했다. 그가 달리는 모든 코스가 다 먹먹했다.
남한에서 높다 하는 산에 오르다 보면 어느 순간 심장에 통증을 느낄 때가 있다. 숨을 쉬는 것이 힘들고 횡격막이 아파올 지경까지 고통스러울 때가 있다. 내가 경험했던 그 통증보다 더 강도 높은 통증을 겪어야 할 것을 상상하니 아찔하다.
막바지에 이르러서는 결국 자신과의 싸움이었다. 지켜보고 응원하는 것만으로 마음이 불편했던 동료가 달려 보겠다고 나섰다. 첫날 자전거와 함께 넘어지면서 팔을 다쳤던 그가 함께 달려 주었다. 하지만 그의 몸도 온전치는 않은 상태였다. 달리다 보니 다리가 아팠다. 그와 함께 끝까지 달릴 수 있을까.
영화의 막바지에 그가 울먹이며 했던 말이 있다. "부모님이 죽는 모습을 자기가 지켜볼 수 있으면 좋겠다."
나는 한 번도 그런 생각을 하지 않았다. 부모님을 먼저 보내드리는 것이 당연한 일이라 생각했을 뿐이었다. 그런데 그가 자전거를 타며 응원해주는 팀원들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울먹였다. 아마도 레이스의 끝이 보이니 한국으로 돌아갈 일, 자신에게 남은 것들이 생각났는지 모른다. 그 끝에는 항상 부모님이 있을 터.
이야기를 모르는 사람은 이 장면이 무엇인지 모를 것이다. 아는 사람만 아는 그 무엇. 나에게만 보이는 이야기가 있는 장면이다. 이 장면을 보며 나도 가슴 벅참을 경험했다.
결국 파리에 입성했다. 그는 웃었고 환호했다. 그리고 우리는 모두 그를 바라보았다.
한국으로 돌아온 그는 모든 검사를 다시 했다.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다. 치료를 하지 않은 기간만큼 몸은 더 나빠져 있었다. 공기 좋은 산속에서 살다가 암이 완치되었다는 기적 같은 이야기가 기다리고 있었으면 하는 바람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죽기 직전에도 자신이 달렸던 모습을 동료들과 함께 하며 추억을 나누었다. 환자복 차림으로 뼈만 앙상하게 남은 모습은 그를 알아보기 힘들 정도였다. 하지만 그는 끝까지 웃더라.
바람을 온몸으로 맞으며 달리는 그들의 뒷모습은 지금도 뭉클하다. 자전거를 타면서 여러 명이 한 덩이처럼 움직이는 무리들을 보면 부럽기도 하고 거북하기도 했던 때가 있었다. 이젠 그런 마음을 먹지 않기로 했다. 서로를 의지하며 달리는 그들을 격려하기로 했다.
나는 단 한 번이라도 대신해서 바람을 맞으며 뒷사람을 보호해 준 적이 있던가.
그저 홀로 자유롭게 달리기를 좋아했지, 함께 어려움을 극복하며 누군가에게 속도를 맞춰줘 본 적이 있던가.
오늘 또 한 번, 나는 좋은 사람이 되어 보겠다고 다짐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