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오션펌킨 May 21. 2022

[드라마] 나의 해방일지 2

나를 닮은 사람들

미정 : 사람들은 말을 참 잘하는 것 같애.
현아 : 어느 지점을 넘어가면 말로 끼를 부리기 시작해. 말로 사람 시선 모으는데 재미 붙이기 시작하면 막차 탄거야. 내가 하는 말 중에 쓸데 있는 말이 하나라도 있는 줄 알아? 없어. 하나도. 그러니까 넌 절대 그 지점을 안넘었으면 좋겠다. 정도를 걸을 자신이 없어서 샛길로 빠졌다는 느낌이야. 너무 멀리 샛길로 빠져서 이제 돌아갈 엄두도 안 나. 나는 니가 말로 사람을 홀리겠다는 의지가 안보여서 좋아. 그래서 니가 하는 말은 한마디 한마디가 다 귀해.
미정 : 다시 태어나면 언니로 태어나고 싶어.
현아 : 전생에 너처럼 살다가 다시 태어나면 막 살아야겠다 한게 지금 나고 또 나처럼 살다가 아 이것도 아닌가 부다 다시 태어나면 단정하게 살아야겠다 한게 지금 너야. 너나 나나 수없이 이리갔다 저리갔다 왔다갔다 했어. 왜 이래 순진한 척.

현아를 좋아하는 마음을 넘어서 동경하는 미정의 마음이 진심으로 느껴지는 대화였다. 한창 혈기왕성하던 시절 내 인생의 멘토를 찾겠다고 동분서주 다녔던 내가 떠올랐다. 미정은 동네에서 함께 나고 자란 언니에게 동경의 마음을 품을 수 있어서 힘들 때마다 그녀를 찾아가 이야기 나누고 위로받고 돌아오지만 나는 그런 대상을 쉽게 찾을 수가 없었다. 주변에 사람이 없는 것도 아니었는데 내가 진정 바라는 질문에 답을 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내가 늘 궁금해하고 답을 찾아 해매던 것, 그 질문을 이 드라마의 11화에서 미정도 신에게 묻고 있다. 

'나, 뭐예요? 나 여기 왜 있어요?'
'이전에도 존재했고 이후에도 존재할 것 같은 느낌, 내가 영원할 것 같은 느낌, 그런 느낌에 시달리면서도 마음이 어디 한 군데도 한 번도 안착한 적이 없어. 이불 속에서도 불안하고 사람들 속에서도 불안하고. 난 왜 딴 애들처럼 해맑게 웃지 못할까? 난 왜 늘 슬플까? 왜 늘 가슴이 뛸까, 왜 다 재미없을까'

이 독백을 들으면서 온 몸에 전류가 흐르는 것 같았다. 언제부터 시작됐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아주 오래 전부터 혼자 있을 때마다 허공에 던져놓았던 나의 질문들을 주인공 미정이가 내가 했던 것과 똑같이 신에게 묻고 자신에게 묻고 있었다. 나만 하는 고민이 아니었다는 안도감 보다는 나의 비밀을 들킨 것같은 오싹함이 먼저였다. 

아주 어렸을 때 나는 세상이 내 중심으로 돌아가는 것 같았고 내가 하면 뭐든 할 수 있을 줄 알았다. 가족보다는 사회 구성원으로서의 역할이 커지면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게 되고 경험의 폭이 넓어지면서 나의 존재가 구성원 중 일부에 불과하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리고 그 구성원들과 조화를 이루지 않으면 아무 것도 해낼 수 없다는 것도 배웠다. 자잘한 성공과 실패를 반복하면서 과연 내가 오롯히 혼자 해낼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의구심이 들기 시작했고 내 존재의 이유가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누가 말해 준 적은 없지만 나는 이 세상에 태어난 이유가 있다고 믿었었다. 나이가 들면서 알아지겠지, 열심히 살아가다보면 알게 되겠지,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다양한 경험들을 하다 보면 깨달아 지겠지 생각했다. 하지만 정말 선택의 기로에 서서 내가 어디로 가야할지 결정을 지어야 할 때 조차도 답은 찾아지지 않았다. 그러면서 허공에 대고 욕지거리를 한 적도 있었다.  

"이럴거면 왜???"

격렬하게 그 해답을 찾아 헤매다가 조금씩 지쳐갔고 부지불식간에 잊혀졌다. 내가 그 질문에 답을 찾기 위해 어떤 노력을 했었는지도 잊고 있었다. 그 이후였던 것 같다. 내가 삶의 의욕을 버리고 나를 흘러가는 대로 놓아버린 것이. 

신년이 되면 다이어리를 사서 일년치 계획을 세우고 한달 한달 꼼꼼하게 스케줄을 적었었는데 신년 다이어리를 사지 않고 책상 위에 달력조차 놓지 않게 된 지도 오래다. 물론 보려고 하면 타인의 스마트폰을 빌려서라도 날짜와 시간은 볼 수 있다. 하지만 시간이 가는 것을 의식하고 싶지 않았던 것 같다. 그냥 빨리 흘러가 버렸으면 했나부다. 

팬데믹이라는 명분이 있었기에 중년이 되어 시작된 나의 방황은 가족이나 주변 사람들로부터 비난을 피할 수 있었다. 나를 향한 비난이 부모님에게 닿으면 정말 더는 참을 수 없을 것만 같았다. 폭발을 하든 자멸을 하든 둘 중 하나는 벌어질 것만 같아 방어막으로 공인중개사 시험 준비라는 명분을 만들어 놓았었다. 

그 안에서 1년이라는 시간을 오롯이 나를 위해 쓸 수 있었다. 

마냥 행복하지는 않았다. 불안했고 고통스러웠고 아프기도 했다. 그러나 정직하게 나를 들여다보는 시간을 갖겠다는 방향을 놓지 않고 나아갔던 것이 나를 일으킬 힘이 되어준 것 같다. 

10월 말 시험대비를 하며 공부는 했지만 결정한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1,2차 시험을 같이 보고 한 번에 붙으면 좋겠지만 내 깜량이 미치지 못함을 공부하면 할 수록 깨달았고 그래서 1차만 응시하기로 했다. 결과는 상상에 맡기기로 하고.

10월 말 시험이 끝나고 한 달 정도는 뻔뻔할 정도로 마음껏 즐겼다. 마치 수능 시험을 치르고 난 고3 수험생 처럼 쉬었다. 이제 대학 원서만 쓰면 내년에 무조건 대학생이 될 것 같은 아이처럼 말이다. 

힌 달을 정신없이 놀고 나서 현실로 바로 복귀했다. 

매달 통장에 돈이 꽂힐 수 있는 일을 찾았고 일상을 유지할 수 있도록 성실함을 이끌어 냈다. 처음에는 그 조차도 버거웠다. 사람들에게 치이고 상황에 부대끼며 다시 사람들과 어울려 살기 어렵겠구나 싶은 마음이 들기도 했었다. 하지만 이를 악물었다. 그리고 좌절은 하지 않겠다고 다짐해 보았다. 꾸역꾸역 아침마다 일을 하기 위해 일어났고 무거운 몸을 일으켜 나갔다. 막상 직면하면 어떻게든 버티고 있는 나를 발견하고 기뻤다. 그렇게 조금씩 규칙적인 생활이 이어지다 보니 어느덧 내가 건강해 지고 있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이렇게 드라마를 보며 웃고 울수 있기까지 와있다. 그렇게 만난 이 드라마는 그 안에서 나를 발견하게 만들어 주고 있다. 

난 아직 해답을 찾지는 못했다. 그리고 지금은 답을 찾겠다는 의지도 없다. 그냥, 이유가 있겠지 하는 마음으로 살아가 보기로 했다. 그 와중에 나를 알아주는 드라마가 있어 마냥 기쁘다. 

내가 너를 좀 알아, 그러니 마음 놓고 울어도 괜찮아...라고 말해주는 것 같아. 

초등학교 1학년때 20점을 받은 적이 있었어요. 시험지에 부모님 사인을 받아가야 했는데 꺼내질 못하고 시험지가 든 가방만 보면 마음이 돌덩이처럼 무거웠어요. 사인은 받아야 하는데 보여주면 안돼는, 해결은 해야 돼는데 엄두가 나질않는, 지금 상황에서 왜 그게 생각날까요. 
뭐가 들키지 말아야 하는 20점짜리 시험지인지 모르겠어요. 남자한테 돈 꿔준 바보같은 나인지, 여자한테 돈 꾸고 갚지 못한 그놈인지, 그놈이 전여친한테 갔다는 사실인지, 도대체 뭐가 숨겨야 하는 20점짜리 시험지인지 모르겠어요. 그냥 내가 20점짜린건지...
지쳤어요. 어디서부터 어떻게 잘못된 건진 모르겠는데 그냥 지쳤어요. 모든 관계가 노동이에요. 눈 뜨고 있는 모든 시간이 노동이에요.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고 아무도 날 좋아하지 않고. 

왜 이렇게 다른 사람들을 의식하고 살았을까. 끝까지 나를 채찍질하고 수많은 일들의 원인을 나에게서 찾고 나를 비하하기까지 하면서 뭘 그렇게 타인을 의식하며 살았을까. 나는 하나도 행복하지 않으면서까지.

어느 날, 불도 켜지 않은 방 구석에서 나의 잘못을 반성하고 개선할 점을 찾느라 고군분투하다가 머리가 터질 듯해서 뇌를 꺼내어 깨끗한 물로 씻어버리고 싶다는 생각을 했던 때가 있었다. 극심한 자기 검열로 인해 행동하나, 말 한마디가 조심스러워지면서 이러다가는 어디가서 누구와도 말을 하면 안 될 것 같다는 두려움과 불안함이 몰려와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내가 백치가 되어버렸으면 좋겠다 생각했었다. 

나를 검열하면서 느끼는 수치심에 잠을 이루지 못하는 날이 많아지면서 그 괴로움을 벗어날 방법을 찾다가 내가 내린 결론은 결국 자기 방어였다. 

뻔뻔해지자.

내가 20점짜리면 인정하자. 그리고 더 노력하기로 하면 되지 않는가. 거짓으로 말고, 진짜로 노력하고 10점, 20점 올리도록 애쓰면 되지 않는가. 

내 실수를 드러내자. 그리고 스스로도 인정하자. 나는 완벽한 사람이 아니다. 실수를 할 수 있다. 그 실수를 반복하지 않으려고 하면 되는 것이다. 스스로 나를 벌하지 말자. 

나는 내가 완전 괜찮은 사람인 줄 알았던 것이다. 적당히 완벽한 사람인 줄 알았던 것이다. 내 바닥을 볼 줄 몰랐다. 나의 바닥을 보게 해 주는 기회가 없었을 뿐이었다. 


"나도 누군가에게는 개새끼다."

어느 드라마에서 배우 권해효님이 했던 대사다. 듣자마다 무릎을 쳤었다. 

모두에게 사랑받는 사람은 없다. 가족 구성원 간에도 미워하는 상대가 생길 수 있는데, 하물며 타인이 나를 무조건적으로 사랑할 수는 없다. 내게 그럴만한 이유가 있으니 사랑을 주는 것이다. 미워하는 것도 마찬가지. 미워할만한 이유가 있으니 미워하겠지. 그러나 그 이유는 반드시 내가 만들어 내는 것은 아니라는 것에 집중하자. 나만 의식하기로 하자. 

적당한 자기 검열로 사회나 타인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 범위 내에서는 누구도 의식하지 않고 자유로울 수 있는 사람이 되어 보기로 했다. 할 말은 적절하게 뱉어낼 줄도 알고 견뎌야 할 것과 참지 말아야 할 것도 구분할 수 있는 성숙한 인격을 가질 수 있도록 애써 보기로 했다. 

20점짜리 같은 자신을 탓하며 속상해 하는 미정을 보며 예전의 내가 생각나서 내 심장이 쪼이는 듯했다. 너무 아파하지 말자. 아직 우리는 실수해도 되.

작가의 이전글 [드라마] 나의 해방일지 1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