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오션펌킨 May 30. 2022

[드라마] 나의 해방일지 4

삶의 어디에도 애착을 주지 않는 것 같아

내가 진짜 인간들 욕 안하면서 살기로 했는데 그냥 내 수준이 여긴거다. 이런 사람들하고 어울릴 수준인거다. 내가 준비되면 때 되면 용쓰기 않아도 그냥 알아서 옮겨질거다 그런 마인드로 살기로 했는데...

편의점 점주들과 돈독한 유대관계를 유지하면서 직장 생활 잘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던 둘째, 창희의 하소연이다. 인간에 대한, 인간 관계에 대한 혐오가 가득했던 나의 지난 날들이 주마등처럼 지나갔다.

그냥 내 수준이 여긴거다...라며 한탄도 해보고 체념도 해보면서 사회에, 조직에 적응해 보려고 애쓰던 나약했던 내가 고스란히 투영되었다. 이상은 높은데 현실은 진흙탕에 발목을 묶인채 꼼짝달싹 못하는 내 삶에 불평하다가 결국 자기합리화를 해내야만 버텨낼 수 있었다. "그래, 내가 이 수준인거다. 이런 수준의 사람들 밖에 만나지 못하는 건 내가 그 수준에 머물러 있기 때문인거다. 그러니 나는 더욱 자기개발을 해 내야한다." 그렇게 자신을 더욱 채찍질했다. 하지만 거칠게 몰아 붙여서 도착한 곳은 결국 내 숨통을 더욱 조여올 뿐이었다.

이상을 쫓아 앞만 보고 달렸던 때는 세상 모든 것을 혐오했다. 나 빼고 모든 것이 더럽고 치사하고 비열했다. 어쩌면 나 조차도 혐오했는지도 모른다.

가치관, 생활방식, 삶에 대한 태도 등이 나와 다르면 내 방식대로 판단하고 짐작해 버렸다. 나는 저들과는 다를 것이라 믿으며 함부로 사람들을 평가하고 판단했다.

내 수준이 여긴거다...라는 생각 자체가 내가 너희들 수준에 맞춰서 나를 낮춰줄께...라는 의미가 담겨 있었다는 것을 창희가 하는 대사를 듣고서야 깨달았다. 무지의 소치다.

너는 나처럼 갈구하지마. 다 줘. 전사처럼 다 줘. 그냥 사랑으로 폭발해버려. 절대 나처럼 갈구하지마.

여자는 자기를 사랑해주는 남자를 만나야 행복하고 남자는 자신이 좋아하는 여자를 만나야 행복하다는 통념이 오랫동안 이어져 왔던 터라 현아의 말은 다소 낯설다. 소위 밀당이라는 것을 해야 하고 서로에게 긴장감을 주어야 관계가 오래 지속될 수 있다는 조언들은 연애를 시작하는 사람들에게 조차도 신경을 예민하게 만든다. 좋아서 마음을 전했는데 그 조차도 함부로 드러내서는 안된다는 무언의 규율은 숨통을 조여온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을 온 마음으로 아껴주고 싶은 감정을 드러내면 내가 '을'이 되고 '약자'가 될까봐 전전긍긍하는 요즘 사람들에게는 "다 줘" 라는 말은 어처구니 없게 들릴 수도 있다. 그러나 나는 동의한다. 남녀를 가릴 일도 아니고 누가 먼저 사랑했느냐를 따질 일도 아니다. 서로 마음이 맞아서 사랑을 하게 된다면 그냥 다 줘버리는 것이다. 그 끝이 이별이 되더라도 말이다. 그래야 후회가 남지 않는다. 그래야 또 새로운 사랑이 찾아왔을 때 좀 더 성숙한 사랑을 할 수 있다고 본다. 16회에서 미정은 자신을 떠났던 구씨에게 미운 마음이 생길 때면 "감기 한번 걸리지 않게, 숙취로 고생하지 않게 해 달라"고 기도했다고 했다. 그런 마음으로 나를 떠난 사람조차도 축복할 수 있으려면 원없이 사랑을 주어야만 할 것이다. 현아의 말을 따라 미정은 자신의 사랑을 정직하게 표현하기 위해 애썼다. 그 모습, 열렬히 응원했다. 

근데 말이야 명색이 해방하려는 사람들 모임인데 모임이 좀 편해야 되지 않나 해서. 마주보고 앉는데 아니면 안될까? 이상하게 마주보고 앉는게 불편하더라고. 사람을 정면으로 대하는게 뭔가 전투적인 느낌이야. 공백없이 말해야 된다는것도 그렇고. 혹시 이렇게 앉는게 불편한가?

회사에서 지원을 아끼지 않는 동호회 활동도 거부하는 세 사람이 모여 해방클럽을 만들었다. 매번 동호회를 권유받고 여기저기 참관하기를 권장받는 것이 귀찮아서라도 어디 하나 가입해 놓고 안가버리는 방식을 택할법한데 이들은 매번 불려가 상담을 받으면서도 동호회에 가입을 하지 않는 사람들이다. 동호회를 핑계로라도 사람들 속으로 들어가려고 할 때가 있었는데 요즘 나 역시 드라마 속 해방클럽 사람들처럼 피할 수 있다면 사람 만나는 것을 피하게 되었다. 

처음엔 그러는 내가 패배자같고, 열등한 인간이 된 것 같았다. 하지만 코로나19 환경에서 자발적 격리가 자연스러워지면서 나의 회피는 정당성을 갖게 되었고 그렇게 2년 여의 시간을 보내고 나니 혼자인 내게 힘이 생기기 시작했다. 나도 이제는 더 이상 사람들 무리 속에 합류하기 위해 눈치보는 짓 따위는 하지 않는다. 대견하다. 

어딜가나 속터지는 인간들은 있을거고 그 인간들은 절대로 변하지 않을거고 그럼 내가 바뀌어야되는데 나의 이 분노를 놓고싶지 않아. 나의 분노는 너무 정당해. 너무너무 정당한 이 분노를 매번 꾸욱 눌러야 되는게 고역이야. 일은 드럽게 못하면서 잔소리는 안듣겠다고 하는 인간들이나 뭐라고 하면 꼰대다...  

타인을 향한 혐오와 분노의 감정은 오롯이 내 인격의 탓이라 여겼었다. 내가 못나서, 내 그릇이 작아서, 마음이 옹졸해서 등등의 이유로 나를 탓했고 그 감정을 처리하지 못하는 나를 무능하다 생각했었다. 그런데 그 분노가 정당하다니!!!

이런 말들을 터놓고 말할 수 있는 해방클럽에 나도 당장 가입을 하고 싶었다. 직장 생활을 하는 동안 해방클럽과 같은 동호회가 있고 그 안에 진짜 어른 멘토가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늘 아쉬운 마음이다. 

사람들은 천둥번개가 치면 무서워 하는데 전 이상하게 차분해져요. 드디어 세상이 끝나는구나, 바라던 바다. 갇힌 것 같은데 어딜 어떻게 뚤어야 될지 모르겠어서 그냥 다 같이 끝나길 바라는 것 같애요. 불행하진 않지만 행복하지도 않다. 이대로 끝나도 상관없다. 다 무덤으로 가는 길인데 뭐 그렇게 신나고 좋을까. 어쩔땐 아무렇지 않게 잘 사는 사람들보다 망가진 사람들이 훨씬 더 정직한 사람들이 아닐까, 그래요.
어디에 갇힌 건지는 모르겠지만 뚫고 나가고 싶어요. 진짜로 행복해서 진짜로 좋았으면 좋겠어요. 그래서 아 이게 인생이지 이게 사는거지, 그런 말을 해보고 싶어요.

나만 불행한가, 나만 억울한가, 나만 이런가...하는 의문들에 답을 찾아다니다가 많은 시간을 낭비하곤 했다. 타인도 나와 같다면 위로가 될 것 같아 나와 같은 사람들을 찾아다니는 것이었다. 어리석은 짓이다. 

나는 불행한가? 그럼 왜 불행한가? 나는 왜 불행하다고 느끼는가? 

나 자신에게 집중하고 내 안을 파고들어야 하는 일을 늘 밖에서 해결책을 찾아려 했었다. 

스스로 죽을 자신은 없었고 천재지변으로 내가 없어지는 방법이 없을까 상상하던 때가 있었다. 끔찍한 일이었지만 그 때는 진심으로 바랬던 일이었다. 그래야 남은 사람들이 덜 슬플 것 같아서. 

그 때와 지금의 상황은 별반 다르지 않다. 아니, 어쩌면 지금이 더 가난하고 나약하다. 하지만 살만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남은 시간을 조금은 더 가치있게 살아보자는 의지가 조금씩 솟아나고 있다. 

있는 힘껏 뛰어올라 하늘을 가를 수 있다면 정말 뿌듯하겠지만 그냥 걸어도 좋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걸으면서 내가 닿고 싶은 하늘을 바라볼 수 있다면 행복할 수 있을 것 같다. 

완전한 해방은 '죽음'뿐이지 않을까. 살아있다면 완벽한 해방은 불가능할 것같다. 그래도 그 안에서 해방감을 느낄 수 있는 나만의 세상을 가꿔 나가고 싶다. 


작가의 이전글 [드라마] 나의 해방일지 3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