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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션펌킨 Jun 01. 2022

[드라마] 나의 해방일지 6

내가 나를 응원할 수 밖에.

찬혁선배 만날 때, 직장 그만두고 사업한다고 했을 때, 좋았어. 사람들이 남친 뭐하냐고 물어보면 "사업해" 그 한마디가 있어보여서. 근데 너무 잘나가니까 불안했어. 우린 결혼도 안했는데. 불량으로 계속 반품 들어오고 점점 어려워지면서 어느 때보다 옆에 붙어서 잘해줬어. 들킨 것 같았어, 내가 안도하는거. "누구랑 있으면 좀 나아 보일까?" "누구랑 짝이되면... "

누구나 있지 않나? 이런 마음. 좋아하는 사람이 생겼고 고백을 하고 싶을 때 과연 상대가 내 마음을 받아줄 만한 사람인지 아닌지부터 재고 따지고. 나와 비교해서 과분하다 싶을 때도 욕심내며 어떻게든 나를 좋아할 수 있게 해보려고 애써보고. 어렵게 자기 곁에 오면 다른 곳으로 날아가지 못하게 하려고 온갖 핑계로 상대방을 발목을 붙잡는 짓. 누구나 한 번쯤은 해보지 않았을까.

그렇게 고르고 골라놓고도 그 사람을 전적으로 응원하진 않아. 나보단 잘나야 되는데 아주 잘나진 말아야 돼. 전적으로 준적도 없고 전적으로 받은적도 없고. 다신 그런 짓 안해. 잘 되서 날아갈 것 같으면 기쁘게 날려보내 줄거야. 바닥을 긴다고 해도 쪽팔려하지 않을꺼야. 세상 사람들이 다 손가락질해도 인간 대 인간으로 응원만 할꺼야. 부모한테도 그런 응원 못받고 컸어 우리. 

실패할까 걱정되서, 네가 상처받으면 마음 아프니까 등의 핑계로 사랑하는 사람의 꿈이나 이상을 가로막는 사람들이 많다. 지금도

나쁘지 않아. 가만히 있어도 잘 살 수 있는데 뭐하러. 긁어 부스럼 만들지 마. 

나의 도전이나 이직에 대해 긍정적인 이야기를 해 주는 사람은 많지 않다. 부모님은 늘 걱정을 달고 살고 지인들도 "지금도 괜찮지 않아?" 하는 반응이었다. 

그래, 나는 많은 도전을 했고 사이사이 이직도 했다. 직장을 다니다가 도전하고 싶은 것이 있으면 그 도전을 위해 직장을 그만두어야 했다. 실패하고 나면 다시 직장을 찾아 돈을 벌기 위한 일을 했다. 그리고 적당히 돈이 모이면 또 다시 도전할 무언가를 찾고 찾아지면 곧 실행에 옮겼다. 내 청춘을 요약해 보자면 이렇다.  

흠...

나 자신에 대한 결정권이 오롯이 나에게 있은 날부터 지금까지 살아온 모든 시간을 이렇게 짧게 정리할 수 있게 되리라 생각한 적 없는데 이제는 되는구나. 글을 쓰면서도 놀랐다. 

단백하고 명쾌하게 표현이 되는 것에도 놀랐지만 이렇게 요약을 해내는 내가 더 대견하다. 

감탄은 여기까지.  

많은 도전이 있었던 만큼 수많은 실패가 따랐다. 실패할 때마다 나를 돌아보게 되었고 나중엔 꼭 성공을 위해서라기 보다는 나를 알아가기 위해 도전을 하기도 했다. 과연 나는 이 도전에서 무엇을 얻을 수 있을까, 하지 않고 현실에 안주해 버리면 얻을 수 없는 무언가가 그 안에 있을 것만 같은 생각에 도전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렇게 수없이 반복되는 실패를 지나왔다. 그리고 지금. 아무것도 하지 않는 2년을 보내고 나서야 나는 나를 긍정할 수 있게 되었다. 

나를 긍정한다는 것은 나를 치켜세우는 것이 아니라 그 동안의 나를 인정하고 받아들인다는 것이다. 모자란 부분까지도 수용하겠다는 의지다. 그런데 이렇게 나를 긍정하게 되기까지는 많은 시행착오를 거쳐야만 했다. 부모도 나한테 그렇게 해주지 않았기에 나를 긍정하는 방법을 몰랐고 그렇게 하는 것이 맞는 것인지 조차도 확신이 들지 않았었다. 하지만 이제 나는 스스로 그 방법을 깨달았고 내 존재에 대한 긍정적인 믿음 덕분에 건강해질 수 있었다. 

그 후로 나는 달라졌다. 새로운 도전을 하게 되면 누구에게도 묻지 않는다. 대체로 사람들은 "해 봐!"라고 응원해 줄 수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 말에 책임을 지고 싶지 않기 때문에 아무도 선뜻 지지하고 응원할 수 없다. 그리고 더 깊은 내면에는 혹시라도 성공을 하면 너무 멀리 날아가 버릴까봐 두려워 붙잡아 두고 싶어하는 마음까지도 느껴지기 때문에 아무에게도 묻지 않는다. 

자꾸 답을 기다리게 되는 마음은 어쩔수 없지만, "두고 봐라 나도 이제 톡 안한다" 그런 보복은 안해요. 남자랑 사귀면서 조용한 응징과 보복, 얼마나 많이 했게요. 당신의 애정도를 재지 않아도 되서 너무 좋아요. 그냥 추앙만 하면 되니까. 너무 좋아요.

본능적으로, 상처받지 않기 위해 상대에 대한 집착을 떨쳐낸다. 메시지를 보내 놓고 전화기를 꺼두기도 한다. 내 전화기가 꺼져 있어 상대가 답을 보냈어도 내가 볼 수 없으니 잠시나마 조급한 마음을 진정시킬 수 있다. 물리적으로 거리를 두었다가 (내가 생각하기에)적당한 시간이 흐른 뒤 답이 왔는지 확인해 보고 시간의 간격과 메시지의 내용을 통해 나에 대한 애정도를 측정하기도 했었다. 모두 어리석은 짓이다. 

이젠 그 모든 감정이 노동으로 여겨진다. 서로의 애정도를 재지 않고 추앙만 할 수 있는 사람이 과연 있을까? 

하루 24시간 중에 괜찮은 시간은 한 한두시간 되나. 좋은 시간도 아니고 괜찮은 시간이 그 정도. 나머진 다 견디는 시간. 어려서부터 그랬어요. 신나서 뛰어노는 애들 보면 그 어린 나이에도 심란했어요. 뭐가 저렇게 좋을까. 난 왜 즐겁지 않을까. 먹구 자구 먹구 자구 쓸데없이 허비되는 시간이 왜 이렇게 길까. 80년 생을 8년으로 압축해서 살아버려도 하나 아쉬울 거 없을거 같은데. 하는 일 없이 지쳐. 그래두 소몰이하듯이 어렵게 어렵게 나를 끌고 가요. 가보자. 왜 살아야 하는지 왜 그래야 되는지 모르지만 사는 동안은 단정하게 가보자. 그렇게 하루하루 어렵게 어렵게 나를 끌고 가요.

근데, 왜 단정하게 가야 하는걸까? 나는 왜 단정하게 가기로 결정을 했던걸까? 

나는 열정이 많은 사람이었다. 나를 기억하는 모든 사람이 그렇게 말해주고 있고 나 역시도 내 열정이 버거울 정도였다. 왜 나는 가만히 주어진 것에 안주하며 울타리 안에서 살아가지 못할까 궁금했다. 무언가 열정을 품은 이유가 있다면 알고 싶었다. 하지만 쉽게 찾아지지 않는 답을 얻기 위해 더 열정적으로 살았다. 뜨겁지만 "단정하게" 살기로 했다. 

새삼 궁금하다. 왜 "단정하게"일까?

현아처럼 살아가는 것이 두려웠을까? 감당할 자신이 없었을까? 왜 두려웠을까? 왜 감당할 수 없을거라 생각했을까? 이젠 관성이 붙어서 단정하게 사는 것이 편한 상태이다. 그래서 좀 아쉽다. 단정하지 않았더라면 지금 나는 얼마나 다른 삶을 살게 되었을까...

내 무덤에서 내가 일어나 나와서 벌초해야 되는 것처럼 암담한 일 같애. 누워서 소주병 보면서 그래. 아 인생 끝판에 왔구나. 다시는 돌아갈 수 없겠구나. 백만년 걸려도 못할 것 같던 일 오늘 해치웠다. 잠이 잘 올까 안올까.

꼬박 하루 걸려 방청소를 하고 나면 개운하고 뿌듯했다. 연중 행사로 일 년에 한 번씩은 가구를 재배치하기도 하고 책상정리를 하기도 하면서 깔끔을 떨곤 했었다. 5년이 넘게 가구배치는 변함이 없고 켜켜이 쌓인 책이나 당장 쓰이지 않는 물건들이 방 구석구석 쳐박혀 있다. "내 무덤에서 내가 일어나 나와서 벌초해야 되는 것처럼..."이라는 말이 머릿속에 꽂혔다. 드라마가 끝날 때가지 잊혀지지 않았다. 지금도 그렇다. 

자주 하던 일이다. 마음만 먹으면 너무 쉽게 해냈던 일이다. 그런데 할 수 없게 된 지금을 자각하게 된 것이다. 다시는 돌아갈 수 없고 돌아가고 싶지 않다. 그냥 앞으로 나아가면 된다. 지난날의 나와 다른 사람이 되면 되는 것이다. 그 뿐이다. 

드라마는 이미 종영을 했고 뒤늦은 감상을 적고 있는 것 같지만 아니다. 나는 이미 하루에 한 가지씩 버릴 것을 찾아내고 있고 눈 앞에서 치워내고 있다. 모으고 모아 봉투에 한 가득 차면 밖에 나가는 김에 내다 버리고 있다. 한 번 마음 먹으면 뚝딱 해치우던 예전의 나와는 달라졌지만 느리게라도 한 걸음씩 나아가고는 있다. 그러니 나쁘지 않다. 그대로 어둠 속에 침잠할 줄 알았는데 다시 빛을 들이고 있는 나다. 

무슨일 있었는지 안물어. 어디서 어떻게 상처받고 이동네로 와서 술만 마시는지 안물어. 한글도 모르고 에이비씨 도 모르는 인간이어도 상관없어. 술마시지 말란 말도 안해. 그리구 안잡아. 내가 다 차면 끝.

다 채워지기 전에 그는 떠났지만 그를 추앙했던 경험을 바탕으로 그녀는 스스로 채워나가고 있었더라. 마지막회를 보면서 뿌듯했던 이유다. 

실연, 모친상, 아버지의 재혼 등 겹겹의 상실감으로 "버려진 느낌"을 안고 살았지만 그래도 그녀는 홀로 강해지고 있었다. 돈을 갚지 않고 옛 애인에게 도망간 전남친을 여전히 끊어내지 못하고 있었지만 스스로를 지킬 힘은 충분했다. 

곁에 있는 사람에 대한 의존은 오히려 나를 갉아 먹는다. 오롯히 홀로 서 있어야 곁에 함께 서 있는 사람을 지켜줄 수 있는 것 같다.  

사랑을 너무 포장하지는 말자. 

누군가를 좋아한다는 것, 사랑한다는 것은 나의 외로움을 위로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수단이다. 그 감정을 이용해서 상대방을 해치지 말자. 조건없이 응원해주자. 추앙해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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