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라 먹는 재미? 아니, 골라 듣는 재미(2)

by 김종열

정형화된 곡들이 좀 지겹다 싶을 땐 재즈다. 재즈를 듣지 않아서 모르는 사람은 있어도, 재즈를 듣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다 안다는 Take Five를 얹는다.

수많은 뮤지션이 이 곡을 연주했는데 뭐니 뭐니 해도 Dave Brubeck의 연주가 가장 좋은 것 같다. 왜 리메이크가 원곡을 뛰어넘기 힘들다고 하지 않은가?


묵직한 드럼 연주로 시작하여 부드러운 색소폰 연주로 이어지다가, 다시 드럼 독주가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데, 멜로디를 연주하는 색소폰도 좋지만, 드럼 연주가 기가 막히게 좋은 곡이다. 작곡할 때부터 드럼을 염두에 두고 했다나. 어쨌다나.


뭔가에 각인되면 거기에서 벗어나는 건 정말 힘든 일이다.

예전에 음악을 지나치게 좋아하는 지인에게서 CD 한 장을 선물로 받았는데, 그게 보통의 정성이 들어있는 CD가 아니었다. LP로 재생한 곡을 디지털로 녹음하여 CD로 구워낸 것이었는데, 이 CD가 좋은 게 일단 음질이 LP스럽다. 잡음도 그대로고 소리도 LP를 듣는 것 같다는 거다.

거기에다 듣고 싶은 곡들만 쏙쏙 골라서 구웠기에 한번 플레이하면 CD 한 장을 끝까지 다 듣게 되는 이상한 일이 생긴다.


이 CD의 첫 곡이 Take Five이고 다음 곡이 Wayfaring Stranger이다. 그래서인지 Take Five를 듣고 나면 다음 곡은 당연한 듯이 이 곡이 되어 버린다. 영화 Cold Mountain에도 이 노래가 나오는데, 이 영화의 배경이 미국의 남북전쟁 때이니까 미국 전래민요라 할 만한 유명한 곡이다.

유명한 곡답게 정말 많은 가수가 노래했는데, 그중에서 Eva Cassidy의 곡을 가장 좋아한다. 인생의 끝자락을 노래하는 가사를 너무 경쾌하게 풀어내 버려서 그런 건가? 어쨌든 좋다. 이 곡.


허병국씨를 아시는지? 재즈 뮤지션 Herbie Hancock의 한국 이름이랍니다. 허비 행콕을 좋아하는 한국의 팬들이 발음과 비슷하게 부르는 이름인 거로 생각되는데, 그만큼 한국 사람들이 좋아하는 음악가가 아닌가 싶다.


듣는 곡은 Chameleon이다. 동동동 톡톡(이 게 맞나? 의성어니까 뭐)하며 시작하는 경쾌한 전자음이 일관성 있게 흐르면서, 다른 악기들과 어우러지는 소리가 지겨울 여지를 주지 않는다. 그래서 골라 듣는 거고.

마무리는 우아하게 클래식이다. 누가 정했는지는 모르겠으나, 베토벤, 브람스의 바이올린 협주곡과 함께 3대 바이올린 협주곡으로 평가받는 멘델스존의 바이올린 협주곡을 듣는다.


사실 귀가 아직 열리지 않았는지 클래식에는 아무래도 손이 덜 가고, 또 듣는다 해도 시작할 때가 가장 좋고 끝날 때가 좋은 게 클래식인데, 이 곡은 처음부터 끝까지 다 들을 수 있는 곡이다.

일단은 연주 시간이 짧다. 1,2,3악장 다 하여 LP 한 면을 차지하니까 25분 정도 되려나? 거기에다 작곡가가 부유한 집 출신이어서인지 음악에 어두움이 느껴지지 않아서 좋다. 그래도 뭐, 가끔은 중간에 졸기도 하지만.

거의 한 시간가량을 쿵쾅이며 보냈다. 이러고 나면 시원하다. 기분이 좋아진다. 좋아하는 곡이 이것밖에 안 되냐고? 그럴 리가. 왜 골라 먹는 재미가 있는 아이스크림 가게에 가면 31가지 맛이 있지 않은가? 아이스크림 살 때 31가지 다 사는 건 아니지 않나? 그런 거지. 골라 먹는 재미, 아니 골라 듣는 재미.


김현정-떨림.jpg 김현정-떨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