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의 전염

by 김종열

영화 ‘한산’을 보러 간다. 이런저런 입소문을 듣기도 했지만, 지금까지 개봉된 한국 영화 중에서 가장 많은 관객인 1천7백만 명을 동원한 ‘명량’을 만드신 감독의 후속작이라는 게 시네마로 발길을 끌게 한 더 큰 이유인 것 같다.


영화는 재미있다. 웃음 코드가 하나도 없는, 심하게 진지하게 만들어진 것임에도 불구하고, 웅장한 해상전쟁 장면과 웅장한 배경음악이 눈과 귀를 사로잡는다. 그런데 기억에 남는 장면은 따로 있다. 이순신 장군과 대적하여 패하고 도망쳐온 일본 병사가 자기 장수에게 조선 해군의 신출귀몰함과 거북선의 위력을 두려움에 가득 찬 목소리로 보고한다. 보고 받고 돌아서는 일본 장수가 “두려움은 전염되는 것이지”라는 말로 도망병들을 참하게 한다. 두려움이라는 감정이 정말 전염되는 것일까?


운동하면서 이어폰으로 라디오를 듣는다. 청취자가 보낸 재미있는 에피소드를 읽어주는 프로그램인데 혼자 하는 운동의 따분함을 줄여주기 때문에 자주 듣게 된다. 그런데 어떤 날은 진행자들이 약간 다운되어 있는 것이 느껴지고 그런 날은 재미있는 내용인데도 시큰둥하게 듣게 되고, 어떤 날은 진행자들의 흥이 전달되어 엄청 재미있게 느껴지기도 한다. 흥이라는 감정도 전염되는 것인가?


딸내미 결혼식 날이다. 요즘 결혼식은 대부분 주례라는 게 없다. 대신 양가 혼주의 인사말과 친구들의 축사가 주례사를 대신하는데, 간단한 인사말을 마치고 자리에 앉으니, 딸내미의 친구와 사위의 친구가 웃음 가득한 얼굴로 하객들의 환호 속에 공동 축사를 하러 나온다.


시작은 딸내미 친구, 자기소개를 마치고 본문으로 들어가기도 전에 눈가가 촉촉해지더니 목소리가 울컥한다. 친한 친구의 결혼식이라 감정이 격해진 건가? 그리곤 축사를 읽기 시작하는데 계속 울먹울먹 한 목소리에 연신 눈물을 찍어낸다. 슬플 일이 전혀 없는 결혼식인데…

그 모습을 본 하객들이 슬금슬금 웃기 시작한다. 그러자 이번엔 딸내미가 살짝 눈물을 보인다. 축사는 기쁘기 그지없는 내용인데 얘들 왜 이러나 싶다. 딸내미 우는 모습을 본 축사하는 친구는 울음을 주체하지 못하고, 하객들의 웃음소리와 격려의 박수가 쏟아진다.


위태위태하게 딸내미 친구의 파트가 끝나고 마이크가 사위의 친구에게로 넘어간다. 어라! 근데 이 친구도 말을 시작하자마자 울컥한다. 이제 하객석에서 폭소가 터진다. 그러자 또 어라! 사위가 눈물을 훔친다. 그렇게 결혼식 주인공들의 눈물과 하객들의 웃음이 공존하는 축사를 끝낸다.


다음날 ‘눈물의 축사 현장’이라는 제목의 유튜브 동영상이 전달되어 온다. 친구 중에 유튜버가 있었나 보다. 다시 봐도 재미있다. 눈물과 슬픔이 슬금슬금 옮아가고, 웃음과 기쁨이 퍼져나가는 게 보인다. 감정이라는 것이 전염되는 게 확실하다는 생각이 든다.

가지고 있는 기운이나 감정이 전달되어서인지, 함께하면 즐거운 ‘♬만나면 좋은 친구♪’ 형의 사람이 있고, 왠지 조금은 불편하고 기분이 가라앉는 ‘♬왜들 그리 다운돼 있어♪’ 형의 사람이 있다. 어떤 유형의 사람이 좋은지는 누구나 다 알 테니, 이왕이면 ‘♬만나면 좋은 친구♪’ 형의 사람이 되도록 해보자.


어제도 누군가를 만났고, 오늘도 누군가를 만나고, 내일도 누군가를 만날 것이니.


감정의 전염#.jpg